SNS에서 웬만한 연예인보다 인기 많은 목사가 있다. 20세기 최고의 부흥사라 불리는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 목사의 아들 프랭클린 그레이엄(Franklin Graham). 기독교 선교 단체 사마리아인의지갑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자신의 계정에 자주 글을 올린다. 대부분 이슬람교 비판, 동성애자 비판, 미국의 종교 자유 수호 등 보수적인 내용이다. 방송에 나와 오바마가 기독교인임을 믿지 못하겠다는 투로 말을 하고, '이슬람은 전쟁의 종교'라고 한다.

▲ 프랭클린 그레이엄(Franflin Graham)은 시대의 부흥사로 불리는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의 아들이다. 그는 현재 기독교 구호 단체인 사마리아인의지갑(Samaritan’s Purse)과 빌리그레이엄전도협회(BGEA)의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평소 기독교 근본주의 사상이 담긴 글을 자주 썼다. 지난 3월 중순, 미국에서 인종차별을 없애려면 경찰의 권위에 ‘복종’하면 된다는 글을 남겼다가, 복음주의 목사 31명이 서명한 공개서한을 받았다. (프랭클린 그레이엄 페이스북 갈무리)

얼마 전 그는 인종차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썼다가 동료 목사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3월 12일 자신의 SNS 계정에, "들어라, 흑인·백인·라티노 그리고 나머지들"로 시작하는 글을 올렸다. 거기에 최근 일어난 경찰과 흑인들 간의 사고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문제라며 해결책은 '간단'하다고 했다.

"경찰이 멈추라고 얘기하면, 멈추면 된다. 경관이 손을 머리 위로 올리라고 하면, 그대로 따라 하면 된다. 양손은 뒷짐을 진 채 얼굴을 땅에 대고 누우라고 하면 그렇게 하면 된다. 아주 간단한 일이다. 아무리 경관이 잘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할지라도 당신은 복종하라."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부모에게 아이가 권력에 복종하는 법을 가르치라고 충고했다. 경찰이 쏜 총에 자식을 잃은 흑인 부모들에게, 자녀가 죽은 것은 당신이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뉘앙스가 풍기는 글을 남겼다.

성경의 가르침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히브리서 13장 17절의 일부인 "그들은 자기들이 한 일을 하나님께 보고해야 할 사람들이므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여러분의 영혼을 보살핍니다"를 인용했다. 권력을 가진 경찰은 여러분의 영혼을 보살피는 이들이니 복종하라는 것이다.

글이 올라오고 그의 추종자들은 20만 명이나 '좋아요'를 눌렀다. 이 글을 공유한 사람만 해도 8만 명이나 됐다. 댓글에는 맞는 말이라고 프랭클린 그레이엄을 추켜세우는 사람들과 무례한 말이라고 나무라는 글이 엉켜 한바탕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논란이 된 글에 전혀 동의하지 못하는 이들 중에는 목사들도 많았다. 오클랜드 시에서 목회하고 있는 도미니크 길리어드(Dominique Gilliard) 목사는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복음주의 목사들의 모임에 이 글을 공유했다.

목사들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게 프랭클린 그레이엄의 글을 받아들였다. 이들은 논의 끝에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 공동으로 공개서한을 보냈다. 사회정의 구현 단체 소저너스의 리사 섀론 하퍼(Lisa Sharon Harper)는 "더 이상 유명 기독교인이나 목사들이 자신이 가진 이름값을 이용해 사회의 중요한 이슈에 대해 막말하는 것을 묵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 편지를 읽는 사람들에게는 교회에서 이 문제를 놓고 토론하며 꾸준하게 대화를 이어 가 달라고 당부했다.

하퍼와 30명의 목사·신학자들은 A4 두 장 분량의 편지에서 프랭클린 그레이엄의 글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처럼 영향력이 높은 사람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그런 글을 올린 것이 왜 경솔한 행동인지, 그 글이 어떻게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분열시킬 수 있는지 상세하게 설명했다.

편지는 '간단(simple)'이라는 단어에 의문을 제기했다. 미국에서 인종차별은 전혀 간단하지 않은 문제라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 역사에서 꾸준히 나타나 온 현상이고, 해결되지 않은 불의의 상징이라고 했다. 그 근거로 법을 집행할 때, 아직도 인종이 중요한 판단 근거로 작용하며, 유색인종 특히 흑인은 다른 인종에 비해 더 쉽게 체포되고 마구잡이로 감금되고 있는 현실을 언급했다.

공개서한은 그가 인용한 성경도 적절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목사들은 이 성경 말씀은 시저의 세속적인 리더십을 위한 말이 아니라 교회 안의 리더십을 가리키는 말이라며, 프랭클린 그레이엄이 자신의 말을 정당화하기 위해 성경 구절의 일부분을 떼어다가 쓴 것이라고 했다.

또 편지는 그가 얼마나 역사의식이 부족한지도 꼬집었다. 무조건 복종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미국 역사뿐만 아니라 성경의 인물들이 불의에 저항했던 사실조차 무시한 것이라고 했다. 불의한 이집트 권력에 불복종한 모세, 아기 예수의 안전을 위협한 헤롯 왕의 권력에 불복종한 요셉과 마리아, 로마제국에 저항하다 결국 감옥에서 로마서 13장을 쓴 바울을 예로 들었다.

▲ 빌리 그레이엄과 아들 프랭클린 그레이엄(맨 오른쪽)은 지난 2012년 미국 대선 당시, 몰몬교 신자인 공화당 후보 미트 롬니(Mitt Romney)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빌리 그레이엄은 투표 전 신문 지면 광고를 통해, 기독교 가치에 투표해 미국이 하나님 아래 한 국가(America is one nation under God)라는 것을 더 견고히 하자고 했다. 그는 기독교인이 몰몬교 신자에게 투표하는 것이 별 문제 없는 일이라고도 했다. (abc뉴스 기사 갈무리)

마지막으로 목사들은 프랭클린 그레이엄이 왜 시민들에게만 복종을 강요하는지, 그의 주장이 얼마나 모순인지 지적했다. 시민들이 권력에 복종해야 한다면, 경찰들도 법에 복종해야 한다고 말이다. 미국 헌법은 법 아래 모든 사람이 동일한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데도, 경찰과 사법부는 법을 집행할 때 무의식적으로 '인종'을 먼저 고려한다는 한 연구 결과를 인용했다.

편지를 쓴 목사들은 경찰에게 적대감을 표하는 것이 공개서한의 목적이 아님을 분명하게 밝혔다. 경찰들을 지지하고,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또 경찰들이 얼마나 어려운 환경에서 완벽하게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

목사들이 원하는 것은 프랭클린 그레이엄이 미국의 인종차별 문제를 조금 더 심각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전문가의 수준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고 했다. 다만 인종차별을 실제 삶에서 겪은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듣고, 이 분야의 전문가들에 조언을 받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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