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윤선 목사의 조카사위가 <목사의 딸>(아가페북스)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습니다. <뉴스앤조이>에 기고한 글을 전문 그대로 싣습니다. <뉴스앤조이>는 3월 20일 <목사의 딸>의 저자, 박윤선 목사의 딸 박혜란 씨를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보도할 예정입니다. - 편집자 주 

<목사의 딸>(아가페북스)이라는 책도 책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 책의 추천자들은 교회의 지도자가 되려면 반드시 일독(一讀)해야 할 책이라고 추천했다. 출판사는 많은 사람들이 보아야 한다는 뜻으로 출간했다.

딸은 자기 아버지를 세상에 바로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으로 글을 쓴다고 했다(12쪽). 그러나 사촌 형부인 필자로서는 처제의 글이 더 이상 교계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명감에서 쓴소리를 할 수밖에 없다. 처제는 열네 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도 외국에 계시는 상황에서 친모의 별안간의 죽음으로 큰 상처를 입고 평생 가슴 아프게 살면서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런 그가 아버지와 새어머니에 대한 어떤 고착된 시각으로 그려낸 서술이, 그들의 진면목은 아니다.

박 목사님 가정을 12년간 드나들다

필자는 일정 기간 동안 박윤선 목사님이 섬기던 동산교회의 성도였고(1962~1969년), 또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조카사위가 되어(1964년) 필자가 미국으로 유학 가기 전(1975년) 12년간 그의 집을 드나들며 주석 집필을 도왔고, 그 후 신학교에 들어가 그의 강의를 3년간 들었으며(1969~1971), 또 그분이 시무하시는 관악구 모 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했기 때문에 박 목사님과 그분 가정을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딸은 사춘기의 어린 나이에 친모를 잃고(자동차 사고에 의한 별세) 새어머니를 맞으면서 아버지와 새어머니를 다만 질시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새어머니를 악녀(惡女)로 보게 되었으며 아버지를 자기의 불행을 만든 장본인으로 몰아붙였다.

딸은 자기 아버지가 "태생적인 신앙의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고 주장한다(12쪽). 그러나 "사람이 구원을 받으면 결사적으로 하나님만 위하여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 것이 틀린 말인가? 한국교회가 이렇게 된 것이, 실은 박윤선 목사님의 가르침대로 결사적으로 하나님만 위하여 살지 못해서 생긴 문제들이지, 박윤선 목사님의 가르침 때문인가? 딸은 한국교회의 잘못된 점을 거의 모두 박윤선 목사님에게 뒤집어씌워 놓았다.

딸은 박 목사님이 "죽기 내기로 기도하고 죽기 내기로 믿으라"고 한 말이 잘못된 결과를 초래했다고 주장한다. 딸의 말은 아버지의 주장이 아버지를 힘들게 만들었고, 남들도 힘들게 만들었다는 논리이다. 그가 신앙생활을 이런 식으로 하고 있는 줄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사사건건 아버지를 꼬집어 뜯느라 얼마나 힘든 세월을 살아왔을까!

'고달팠던 가정'(33~44쪽)이라는 부분에서 딸은, 자기의 친모(親母)에 대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동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데 반해 아버지에 대해서는 친모에게 계속해서 임신만 시키는 분이라고 부각시킨다.

딸은 '새 가족'이라는 제목 아래(69~77쪽)에서, 친모가 별세하고 난 후 박 목사님께서 화란에서 돌아와 맞은 새 부인에 대해서는 너무 달라진 모습을 보여 참으로 이상하게 느꼈다고 한다. 아버지가 새어머니를 대접할 때는 친모를 대하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딸은 자기 아버지가 전처의 별세에 대해 전혀 슬픔을 보이지 않았고 자녀들에게까지 위로의 말씀이 없어서 아주 무심한 아버지로 보였다고 했다. 그리고 새어머니는 전처 자녀들에게 전혀 사랑도 없는 차디찬 인간이라 묘사해 놓았다. 독자들이 이 글을 읽고는 누구든지 딸에 대해 동정할 것으로 보인다.

▲ 필자는 고 박윤선 목사의 딸이 박 목사를 왜곡하고 있다고 말한다. <목사의 딸>에 나온 새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은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사진 왼쪽에서 세 번째가 박혜란 씨. 새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사진 제공 아가페북스)

그러나 새어머니는 박혜란 처제가 말하는 그런 분이 아니었다. 후처로서 전처 자녀들에게 그만큼 잘한 분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는 북한에서 넘어온 실향민이었고 또 간호사였으며 고신에서 공부한 신학도였고 또 교회 전도사였으며 부흥회를 인도하던 이로 참으로 훌륭한 신앙인이었다.

많은 이들이 새어머니의 믿음이 박윤선 목사님의 가정을 넉넉히 이끌고 갈 수 있다고 판단했기에, 사모님 자신이 원하지 않았는데도 주위의 강력한 권유를 뿌리치지 못하고 결혼한 것이다. 딸은 새어머니의 결단에 감사를 했어야 했는데 정반대의 입장에 섰다.

이 책에는 사실과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많다

딸은 '사랑을 몰랐던 목회자'라는 단락(77~89쪽)에서 아버지와 새어머니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40세까지는 죽어지냈다고 말한다.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른 말이다. 40세 이전, 즉 자신의 결혼 이전에(25세 이전) 얼마나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했는지 모른다. 결혼을 반대하시는 아버지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반항했다.

박 목사님이 결혼을 반대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사위 될 사람이 박 목사님이 원하는 신앙의 소유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박 목사님은 전처 자녀들에게 참으로 놀라운 사랑을 품고 산 분이었다. 우리 증인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다만 그 사랑을 딸이 원하는 식으로 표현하지 않으신 것뿐이었다.

처제는 '갑작스러운 결혼'이라는 단락(89~96쪽)에서 자신의 결혼은 아버지의 권유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했으나, 이는 전혀 사실과 다른 이야기이다. 두 사람은 아주 대단한 열애 끝에 결혼에 이르렀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대로 박 목사님이 부산으로 가면서 마지막에 결혼을 혹시 허락하셨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두 사람은 결코 떨어질 수 없는 열애를 한 것은 사실이다.

박혜란 처제는 또 새어머니의 아들 박은성(가명, 지금 미국에서 신경내과 의사로 수고하고 있다)이 중학교 입시를 위해 서울 큰아버지(필자의 장인, 그 당시 장인과 장모를 모시고 살았다) 집에 있을 때 새어머니는 일주일이 멀다 하고 부산과 서울을 왕래했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는 박은성을 큰아버지 집에 데려올 때에 한 번쯤 오셨을 뿐 거의 오실 수가 없으셨다. 처제가 왜 이렇게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이유를 우리는 뻔히 알고 있다. 전처 자녀와 후처 자녀를 달리 대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딸은 또 '날아가 버린 마지막 기회'(107~122쪽)라는 제목하에서 그의 아버지와 새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면서 회개를 촉구했다. 딸은 "아버지가 자식인 저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데 큰 방해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 회개하시기 바랍니다"라고 한 말들에 대하여 박윤선 목사님 댁의 분위기를 모르시는 분은 박혜란 처제의 말이 사실일 거라 느끼겠지만 우리는 그 주장이야말로 쓴웃음을 자아내는 주장이라는 것을 얼른 알아차린다.

딸의 성경에는 몇 가지 진리가 빠진 것 같다. 아버지(노아)가 술에 취해 벗었음을 알고 아들 함은 다른 사람들에게 아버지 노아가 벗었음을 떠벌렸으나, 다른 두 아들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하체를 가릴 옷을 가지고 뒷걸음쳐 장막으로 들어가 그의 아버지를 가려드렸다는 이야기가 딸의 창세기 성경에는 빠져 있는 것 같다(창 9:20-27). 성경을 다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행위를 '가증한 것'(117쪽)으로 매도했고, 아버지는 '장님이 되신 분'으로 말하고 있다. 세상에 이런 불효가 어디 있는가?

딸은 또 '용서받지 못한 분'(122~130쪽)이라는 제목하에서 자기 아버지가 가족 간의 틈을 회복하려는 의지가 없었다고 했으나 실은 아버지는 자녀들을 위하여 많은 기도를 드리셨고 또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다. 한번은 박 목사님께서 딸이 살고 있는 콜로라도 덴버로 찾아가 회개하라고 권유했으나 딸이 완강히 거부하여 박 목사님은 끝내 눈물로 발길을 돌리시고 말았다.

딸은 '아버지의 신앙, 아버지의 교훈, 그러나 사랑이 필요했던 가족'(145~164쪽)이라는 제목하에서 아버지가 매일 아침 "아버지께 나아왔사오니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녀의 기도는 아니라고 했다. 필자도 박 목사님의 이 기도를 많이 들었다. 하나님의 긍휼을 호소하는 기도야말로 가장 바람직스러운 기도이다. 이런 기도는 겸손한 자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복된 기도이다. 필자도 이런 기도를 자주 드리는 중에 특별히 그 기도를 드린 날은 더욱 복됨을 느끼곤 한다. 박 목사님의 기도는 단순한 반복 기도(마 6:7)가 아니라 형언할 수 없는 애절한 기도였다.

딸은 "아버지는 아주 현실감각이 없고 게다가 용기도 부족하다 보니 본인의 내면에 깊이 뿌리박힌 유교사상을 냉철하게 도려내지 못한 채 인생을 마감하셨다"고 진단했다. 그래서 남존여비 사상을 가지고 자기의 아내(딸의 친모)를 학대했고, 유교의 효도 개념을 성경에 그대로 옮겨 당신의 자녀가 당신에게 무조건 복종할 것을 강요해서 자녀에 대한 사랑을 모른 채 살아갔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만 기도해도 유교사상 같은 것은 쉽게 없앨 수 있는 사상이 아닌가? 우리는 박 목사님께서 남존여비 사상도 유교의 충효 사상도 전혀 가지고 계시지 않는 것을, 강의 시간에서나 교회 설교 시간에서나 또 그의 책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공연히 유교에서 무엇을 끌어내서 아버지를 공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박 목사님은 목사님 식으로 자녀들을 사랑하셨다

글솜씨가 좋은 필치로 딸은 글을 써 내려갔기에 그 가정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많이 동정하게 되고 박 목사님이 그런 분인 줄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는 식의 말을 하게 될 것이다. 딸은 "아버지는 곁에 있던 수많은 이웃과 당신의 연약한 아내(저자의 친모)와 자녀들을 하나님이 사랑하셨다고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았을까"라고 의문했지만 박 목사님은 오늘 몇몇 증인들이 보기에도 그들을 참으로 사랑하셨다. 아버지를 곡해해도 너무 지나친 것임을 알 수 있다.

처제는 미국 덴버에서 14년이라는 세월 동안 하나님의 마음에 더 가까이 다가가면서 한국의 기독교는 유교와 조상숭배, 그리고 미신으로 혼합된 종교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193쪽). 이런 말은 한국교회를 너무 지나치게 폄하하는 말이 아닌가?

처제는 또 '하나님의 재발견'(205~216쪽)이라는 제목 아래서 박 목사님이나 한국의 많은 신학자들과 목사님들이 남성우월주의자인 것처럼 말하면서 마치 콜로라도 덴버신학교 신학자들만이 바른 신앙을 가지고 있는 듯이 말한 것은 기막힌 말임을 알 수 있다. 박 목사님이나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의 참된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결코 남성우월주의를 가지고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갈 3:28). 박 목사님은 갈라디아서 3장 28절을 가지고 결코 남성이 우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며, 단지 역할에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항상 강조하시곤 했다.

딸은 '이별이 준 아픔'(217~233쪽)이라는 제목하에서 아버지가 별세하실 때 병원 침대에 누워서 "그래도 제가 정직한 마음으로 주의 일을 열심히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불편한 형편에 두시나이까? 속히 나를 불러 가시옵소서"라고 기도하신 것을 가지고, 딸은 "아버지의 마지막 기도는 주님이 붙들고 계심을, 주님 품 안에 안기어 있음을 찬양하는 기도가 아니었다. 나는 지금 괴로우니 데려가 달라고 조르고 조르는 어린아이의 이기적인 기도였다"라고 말하며 아버지의 삶은 항상 이러했다고 아버지를 꼬집는다. 딸은 어찌 아버지의 그런 점만 보았는가?

박 목사님은 사실 병원에 18일간 누워 계시면서 수많은 놀라운 기도를 드리고 가셨다. 신학교를 위해, 교계를 위해, 또 자녀들을 위해 눈물겹도록 기도하셨다. 필자도 아내와 함께 미국에서 나와 병원에 머물면서 목사님을 지켜보았다. 많은 성도들이 기도해 드리려고 왔다가 오히려 기도를 받고 돌아가지 않았는가? 필자는 마지막 임종의 자리에서, 또 많은 사람을 임종에 동참하게 만들면서 참으로 박 목사님의 훌륭한 점을 발견하고 눈물겨웠었다.

딸은 아버지를 너무 폄하했고 우리 교계도 그랬다

딸은 '태생적 약점'(240~244쪽)이라는 제목하에서 "생전의 아버지는 늘 자신이 죄인이라는 기도를 드렸고 죄로 뭉쳐진 인간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하셨다"고 말하고, 이런 자세가 한국교회에 아주 나쁜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한다. "아버지는 하나님께 큰 은혜를 받았으니 이를 갚아야 마땅하므로 죽기까지 충성을 다하라고 부르짖었다. 이는 우상을 섬기던 습관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딸은 한국교회의 기도를, 우상 섬기던 습관에서 나온 것이라고 악평하고 있다. 우상숭배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있고 기도가 있단 말인가? 딸은 아버지를 너무 폄하했고 우리 교계에도 그랬다.

모세도 모압 평지에서 설교하면서 이스라엘은 과거에 지은 죄를 철저히 기억하여 교만하지 말라고 부탁했으며(신 9:7-21), 다베라, 맛사, 기브롯 핫다와 사건을 기억하라(신 9:22-24)고 호소했다. 바울 사도는 자기가 "죄인의 괴수"라고 말하며 우리가 죄인임을 기억할 때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된다고 말했다(딤전 1:12-17).

딸이 그의 글에서 제일 많이 드러낸 말은, 아버지가 하나님을 죽도록 사랑하라고 말했는데 아버지가 왜 자식들을 사랑하지 않았느냐는 말이다. 그러나 목사님은 목사님 식으로 자녀들을 사랑하셨다. 딸이 그처럼 아버지를 불순종하는데 어느 부모가 어떤 방법으로 자식을 살뜰하게 사랑할 수 있겠는가?

딸은 '죽도록 충성하기의 덫'(255~263쪽)이라는 제목하에서 '지사충성'이라는 휘호까지 문제 삼았다. 이는 유교의 군신 관계에서 신하는 늘 목숨을 다해 군주를 섬겨야 한다는 사상과 맞먹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딸은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 써 붙인 그 휘호도 떼어 버려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은 자들이니 죽을 지경에 이르기까지 충성하는(계 2:10, Be faithful, even to the point of death)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딸은 바울 사도가 서신 첫머리에 자주 쓴 '종'(롬 1:1; 빌 1:1)이라는 말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박 목사님은 강의실에서나 교회에서나 어디서나 항상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이었다. 딸은 아버지가 '83년 묵은 죄인'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두고도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조롱한다. 아버지의 이 의식은 겸손을 가져왔고 온유를 가져다주었으며 권위주의를 배척하게 만들었다. 바울 사도께서 구원을 받지 못해서 자신이 "죄인의 괴수"(딤전 1:15)라고 말한 것이 아닌 것과 같다.

딸은 아버지와 새어머니께서 생존하신 동안 책을 내지 않고 있다가 두 분이 별세하신 때(1988년, 2014년 각각 별세)를 맞이하여 아버지에게 복수를 결심하고 책을 펴냈다. 그러나 그는 우리 생존한 증인들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감안하지 않고 용감하게 책을 펴낸 것이다. 만일 우리가 잠잠히 입을 다물고 있다면 돌들이라도 소리 지를 줄 알았어야 할 것이다(눅 19:40). 우리는 아직 살아서 딸의 책이 허구라는 것을 밝히는 바이다.
 
이 책이 출판된 것은 이 시대의 슬픔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사실에 입각한 정보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는 것이 많으며, 아버지와 새어머니를 거의 줄곧 비난하고 폄하하는 것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이 책의 이야기가 모두 옳다면 그의 아버지는 비난받아 마땅하겠으나 아직도 교계의 많은 분들이 박 목사님을 존경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하려는가? 아버지는 성숙한 신자가 아닌 위선자일 뿐이요 그들의 존경도 다 위선이고 거짓이라고 말할 작정인가?

따라서 형식은 책이지만 내용은 도무지 균형 잡힌 책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독자들을 혼란케 하고 교계를 어지럽히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아무튼 이 글을 쓴 저자나 추천한 사람들이나 출판해 준 출판사가 있다는 것은 이 시대의 슬픔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책을 선전하느라 출판사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이름 뒤에 감춰진 슬픈 가족사'라는 부제를 달기도 했다. 무슨 슬픈 가족사가 있다는 말인가? 그 책에는 딸이 자기의 느낌을 쓴 것 이외에 별다른 것은 없다. 또 그 출판사는 '고(故) 박윤선 목사의 딸이 이제야 말하는, 아버지의 신앙적 오류와 순전한 복음'이라는 설명을 붙여 놓았으나 박윤선 목사님에게 무슨 신앙적 오류가 있다는 말인가?

또한 딸의 글에 무슨 순전한 복음이 있다는 말인가? 그 글에 무슨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이 있다고 그런 설명을 붙여 놓았는가? 약간의 지면을 사용하여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다는 말을 한 것뿐이다. 물론 그가 깨달은 "Beholding is a way of Becoming"(하나님을 계속해서 주시하면 하나님을 닮아 간다는 말), Seperation not by Isolation but by Distinction"(믿는 사람들이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어야 하는데, 물리적인 거리를 둠으로써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 있되 질적 차이로 거리를 두면 된다는 말)이란 말 같은 것은 바른 말이다(17~19쪽).

또 출판사는 '권위주의, 기복주의, 왜곡된 율법주의에서 벗어나 순전한 복음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우리가 살고 한국교회가 살 길입니다'라는 선전 문구를 달아 놓았다. 필자는 이 선전문을 보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박 목사님에게 무슨 권위주의가 있고 기복주의가 있으며 율법주의가 있다고 이런 문구를 내놓았는가? 몰라도 너무 모르니 이런 문구를 써 놓은 것이다.

비록 열네 살의 사춘기 시절에 친모가 별세함으로써 입은 큰 상처와 친모의 부재로 인한 가정의 갈등이 있었다 하지만, 노년에 이르기까지 믿음으로 화해하지 못하고 오랜 세월 동안 가슴에 큰 응어리를 품고 산 것이 과연 성숙한 신자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 처제가 주장하는 아버지와 새어머니의 모습이 그분들의 진면목이겠는가? 아버지의 별세 26년이 지난 시점에 이런 책을 출판하게 되었다니 불효 중에 이런 막심한 불효가 어디 있으랴! 다만 필자는 지금이라도 박혜란 처제가 하나님의 무한하신 긍휼과 사랑을 깊이 깨닫고 여생을 주님이 주시는 참평안을 누리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필자는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 언어학과와 총신대 신대원(65회)을 졸업했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신학 석사과정 수료), Biblical Theological Seminary(성문학 석사)를 졸업한 후 Pensacola Christian College & Pensacola Theological Seminary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뉴욕동부개혁장로회신학교에서 주경신학을 강의하였고 현재 필라델피아 삼일장로교회 원로목사이다. 필자는 성경 주해에 큰 관심을 가지고 <마태복음 주해>(도서출판 목양)를 비롯한 신약 전권 주해서(13권)와 <창세기 주해>(도서출판 언약)를 비롯한 구약 4권 주해서를 출판한 바 있다. - 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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