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교회에 대한 기획 연재를 보고 황영익 목사(서울남교회)가 원고를 보내 왔습니다. 2013년 11월 교회2.0목회자운동 월례 포럼 발제문입니다. 황 목사는 카페 교회의 선교적 기능의 가능성에 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전문을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카페 교회는 나름의 선교적 함의가 있다. 그것은 카페 교회를 통해 전도를 더욱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는 방법론적 가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카페 교회라는 형태와 그 공간의 활용 방식이 오늘날의 도시 문화 속에서 하나의 성육신적 교회 모델로서 평가받을 수 있는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즉 하나의 선교 모델로서 카페 교회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카페 교회는 지역 교회의 보편적 형태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최선의 선교 모델이라고 평가하기도 곤란하다. 카페 교회의 선교적 가치와 한계를 살펴봄으로써 카페 교회의 가능성과 역동성을 최대화하고, 그 한계와 내재된 위험을 파악하고 균형을 취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취지로 이 글을 쓴다.

카페 교회, 왜 그리고 어떻게?

사실 카페 교회는 2,00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확산된 고급 커피 문화와 도심에서의 카페 오픈 붐에 편승하여 세워진 것이다. 역사적으로 한국 사회의 경제적 문화적 변화와 맥락을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에서 중대형 교회에서 교회 내 교인들의 친교 공간으로서의 카페를 만드는 것이 일련의 유행처럼 번졌고 이 카페를 통해 교회의 이미지를 고급화하고 지역 주민과 접촉하려는 교회 성장형 동기가 가미되었다. 아울러 고비용으로 교회 개척이 힘들어진 상황에서 작은 카페 형태의 교회는 예배 공간 확보와 목회자 가족의 생존 기반으로서의 가능성이 모색되기도 하였다.

카페 교회를 분석하기 전에 카페형 교회를 탄생시킨 사회적 구조와 한국교회 내적 요인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역사적 시야를 가지지 않으면 향후 카페 교회의 흐름을 예견하며 전략을 세울 수도 없으며 그 역사적 한계를 파악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간 여러 교회와 목회자들이 각기 다양한 동기에서 카페 교회를 시도하거나 교회 건물 안에 카페를 오픈해 왔다. 그 일반적 동기와 유형을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생존형이다. 카페를 생업을 위한 수단으로 삼으면서 그 카페 공간을 활용하여 예배를 하고 목회를 하겠다는 생각이다.

둘째, 예배 공간 활용형이다. 도심 속에서 적절한 사이즈와 분위기의 예배 공간을 확보하기 힘든 상황에서 신선한 분위기의 예배 공간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동기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생존형 동기와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셋째, 친교 공간 활용형이다. 이런 이유로 교회 내 카페를 만드는 교회가 늘고 있다. 사실 교인들이 교회 내에서 자연스럽게 머물며 친교를 하거나 소그룹 모임을 할 만한 공간이 적절치 않은 환경에서 이는 코이노니아의 좋은 매개가 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넷째, 교회 이미지 개선 및 지역 주민과의 접촉 증대형이다. 교회당 1층에 북 카페 혹은 카페를 만든 대형 교회의 고급 이미지를 흉내 내면서 여러 중견 교회들이 교회당 1층을 과감하게 리모델링하여 카페를 만드는 것이 일련의 유행이 되었다.

사실 카페는 교회와 지역 주민을 이어 주는 교량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역 주민들이 카페에 찾아오면서 교회를 접촉하게 되고 이는 전도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은 매우 단순한 추측에 불과하다. 더욱이 교회 내 카페가 교회의 이미지를 높인다는 평가는 거의 허상에 가까운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카페 하나로 교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평가가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카페형 교회'는 개척교회나 미자립 소형 교회에서, '교회 내 카페'는 중대형 교회에서 주로 시도되고 있다. 이는 한국교회의 양극화 현상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카페 교회는 일련의 실험적 교회 개척 모델로서, 작은 교회의 생존 전략으로, 교회 내 교인의 친교 공간으로서, 교회와 지역주민의 접촉 공간으로서 다양한 동기와 방법으로 시도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카페 교회, '패션'에서 '미션얼'로

성경에서는 카페 교회를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카페적 이미지를 자아내는 상징적 단서들을 찾을 수 있다. 족장 시대의 우물, 구약성서 속의 엘림의 오아시스, 예수 그리스도의 밥상 공동체, 예수와 여인이 만난 사마리아의 우물, 초대교회의 성만찬 등이다. 

카페 교회를 교회가 모이는 하나의 공간 형태로 분류한다면 '카페 교회' 혹은 '카페로서의 교회'는 교회론적으로 지지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교회 자체가 선교적이듯이 카페 교회 역시 선교적으로 존재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 선교적 역동성을 최대화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카페 교회는 존립 기반을 잃고 일시적인 시대적 유행으로 지나가거나 흔하디흔한 교회 마케팅 전략의 하나로 머물고 말 것이다.

카페 교회가 그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건강하게 자리 잡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 차원에서의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첫째, 생존형에서 존재형으로의 전환이다. 목회 서바이벌 혹은 생계 수단적 동기가 우세하면 카페 교회는 일시적이 되고야 말 것이다. 그것이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스스로 문을 닫게 되거나, 다른 방법으로 생존이 보장된다면 스스로 폐기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카페 교회가 생명력을 지니기 위해서는 카페 교회의 존재를 구성하는 존재론적 신학적 기반을 가져야 한다. 카페로서 교회가 존재하는 그 자체로서 충족되고 행복하고 생존할 수 있는 '그 이유'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둘째, 도구로서의 카페에서 '삶으로서의 카페'로의 내면화이다. 도구는 언제가 바꿀 수 있고 변경 혹은 폐기될 수 있다. 카페를 일시적 도구로 생각하는 이상 그 카페 교회는 언젠가 심각한 동요를 겪게 된다. 카페 교회가 그 존재 자체로서 교회의 교회 됨을 이루어 가는 의미를 내면화하여야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카페 교회가 지니는 코이노니아(koinonia)와 디아코니아(diakonia) 차원에 대한 확신이다.

셋째, 성장형 목회에서 '성육신적 낮아짐'으로의 투신이다. 카페 교회의 최대의 장점은 다름 아닌 성육신적 만남의 차원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적으로는 지역 주민들과, 문화 세대적으로는 청년 그룹 및 청소년들과의 만남에 장점이 있다. 물론 소외된 이웃이나 사회의 밑바닥으로 들어가는 형태가 아니라는 면에서 일정한 한계가 분명하지만 도심 속에서는 여전히 성육신적 접촉의 의미가 분명하다. 보다 열린 공동체로서 그 열림의 공간을 자연스럽고 최대화하여야 하는 것이다.

넷째, 공간 활용 마인드에서 '카페+α 사역'이다. 평일에는 장사를 하여 돈을 벌고, 주말에는 예배를 드리는 공간이라면 사실 목회적으로도 비효율적이다. 사역하는 공동체로의 카페 교회를 추구하여야 한다고 본다. 문화 선교적 접근과 지역 봉사 센터로서의 기능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북 카페, 음악회 등 문화 행사, 청소년 프로그램, 지역 주민이나 여러 단체나 모임의 공간 대여 등 비영리적 섬김의 차원을 넓혀 나가야 한다. 교회 내적으로는 사역 센터로서의 구심력을, 외적으로는 복합 문화 공간이자 마을 주민의 센터로서의 원심력을 지녀야 하는 것이다. 유럽의 여러 나라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People's House'와 같은 콘셉트를 가진 카페 교회도 필요할 것이다. 사역 공동체로서의 카페로 전환하는 것이 카페 교회의 선교적 열쇠라고 할 수 있다.

카페 교회 목회자는 카페 교회의 선교적 역동성을 최대화하는 목회를 하는 데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설사 교회가 제법 성장하더라도 카페 교회의 형태를 유지하며 카페지기로서의 삶을 즐기고 목회를 할 수 있는 자유로움을 지녀야 할 것이고, 정반대로 카페 운영이나 교회 성장이 힘겨운 상황에서도 카페 교회로서 교회가 존재하고 사역하는 것이 보람되어 쉽게 포기하지 않을 자기 확신이 필요하다. 그런 마인드를 가진 목회자는 건강한 카페 목회 DNA를 품고 생명력 넘치는 카페 교회를 이루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카페 목회', 미션 임파서블?!

카페 교회의 자기 한계를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카페 교회는 보편적 교회 모델이 될 수도 없고 모든 목회자들이 선택해야 하거나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목회 방법이 아니다. 앞으로 5~10년 정도 흐름을 살펴보아야 하겠지만 카페 교회가 하나의 유행으로 지나갈  가능성도 점쳐진다. 한국 사회에서 이미 카페의 수는 수요와 공급의 균형선을 훨씬 지나 버렸고, 상당한 수준의 카페라고 할지라도 더 이상 사람들에게 특별한 감동이나 편의를 안겨다 주기 힘들다.

카페 경영의 노하우와 탁월성을 담보해 내지 못하면 파산할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게다가 목회자가 직접 카페 운영에 참여하면 목회와 카페 운영 양자 사이의 사역배분의 갈등을 겪게 되고, 교인 수가 많아지면서 목회적 돌봄의 요구가 높아질 때 이는 실제적인 교회의 문제로 대두되게 된다.

특히 카페 교회는 교회의 예전적 차원과 교육 목회적 영역과 영성 훈련에 매우 취약한 구조적·공간적 제약을 안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카페 교회 내에 어떤 구별된 공간으로서의 '성소'가 필요하다. 만일 카페 자체를 성소라고 생각한다면 지성소가 필요하다. 아울러 규모의 제약은 명확하게 인식하여야 한다. 작은 교회의 존재 형태로 적합할 뿐이다. 중대형 교회에서는 '교회 내 카페'로서 기능할 것이다.

가장 좋은 형태의 이상적 카페 교회는 아마 교회 공동체의 맴버만이 아니라 지역 주민과 손님들 모두가 교인이라는 마음으로 사역하는 것일 게다. 그러한 교회론적·목회적 지평을 품고 사역을 한다면 카페 교회가 지닌 선교적 역동성을 최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카페 교회는 일종의 '블루오션'이다. 그러나 이 블루오션이 전통적 교회라는 '레드오션'을 대체할 수는 없다. 언제나 블루오션은 끊임없이 자기를 변화시키며 그 기능을 극대화하여야 생존해 낼 수 있다.

카페 교회. 미션 임파셔블에 도전하고 있다. 작은 카페라는 공간 속에 영원한 교회를 담는 위대한 도전에 뛰어들었다. 카페 교회의 구조적 한계는 창조적 미션얼 마인드로 사역하는 행복한 목회자들이 극복해 낼 것이다. (*미션얼(missional) = 선교적, 선교 지향적인)

황영익 / 서울남교회 담임목사, 성서한국 이사, 교회2.0목회자운동 실행위원, 웨스트민스트신학대학원(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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