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8일 한국복음주의교회연합이 '2014년 한국 사회와 교회를 되돌아보다'라는 주제로 포럼을 개최했다. 손석춘 교수(건국대)와 김경호 목사(들꽃향린교회)가 각각 2014년의 정치·사회적 성찰, 목회·신학적 성찰을 주제로 발제했다. 허락을 받아 전문을 싣는다. (전체 기사: 올해 세상이 교회에 던진 과제)

1. 성찰의 열쇳말

주최 쪽에서 '2014년의 정치사회적 성찰'을 주제로 주요하게 다룰 세 가지를 제시했다. 세월호, 문창극, 프란치스코가 그것이다.

세 사안을 꿰뚫고 있는 열쇳말이 있다. '규제 완화'다. 이른바 '규제 완화'가 한국 정치사회의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세월호와 문창극, 프란치스코 현상 또한 그 흐름에서 파악해야 한다. 이 발제문은 먼저 규제 완화가 2014년의 대한민국을 어떻게 관통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 이어 세월호와 문창극, 프란치스코 현상에 그것이 어떻게 나타났는지 분석했다. 마지막으로 그 도도한 흐름에 우리의 대응 방안을 짧게 제안하는 순서로 구성되었다.

2. 2014년을 지배한 규제 완화의 논리

1) 박근혜 정부의 '원수'와 '단두대'

국무조정실을 필두로 시작된 올해 첫 업무 보고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강도 높은 주문을 쏟아냈다. 2014년 2월 '과감한 규제 개혁을 통해 경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불합리한 규제와 덩어리 규제를 발굴해서 획기적으로 개선하는데 힘을 쏟아주기를 바란다"며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면 투자자들이 알아서 일자리를 늘린다"고 설명했다.

더구나 규제 완화를 국정 과제로 제시하는 박 대통령의 발언은 통상적인 '대통령 문법'을 넘어서 있다. 이른바 '비정상적인 제도와 관행'을 뿌리 뽑는다면서 '진돗개 정신'을 요구했다. "불독보단 진돗개가 더 한번 물면 살점이 완전히 뜯어져 나갈 때까지 안 놓는다고 한다. 우리는 진돗개 같은 정신으로 한다"는 발언은 정가와 언론계 안팎에서 회자됐다.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은 아니다.

2014년 3월1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쓸데없는 규제는 우리가 쳐부술 원수, 암덩어리"라고 발언했다.

한 달 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곧이어 '문창극 참극'이 벌어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다녀가며 2014년의 한국 정치사회는 소용돌이쳤다. 한 해 국정을 정리해 가야 할 11월 25일에 박 대통령은 한 달만에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다시 '규제 완화'를 강조했다.

"일자리 창출과 투자를 가로막고 있는 규제들은 한꺼번에 단두대에 올려서 처리하게 될 것이다. 규제 길로틴을 확대해서 규제 혁명을 이룰 것이다."

정부 각 부처가 소명하지 못하는 규제들은 일괄 폐지하는 '단두대식 규제 개혁'을 요구하는 대통령의 어법은 다시 화제가 되었다. 요컨대 대한민국 5000만 국민의 생명과 행복을 책임질 '최고 의사결정권자'는 2014년 처음부터 끝까지 '규제 완화'를 강조했다.

2) 규제 완화의 이데올로기

박근혜 정부는 규제 완화가 '일자리 창출과 투자'를 불러오면서 경제 성장을 이끌고 그것이 국민의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논리를 '신봉'하고 있다. 그것은 이미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출마할 때부터 내세운 '줄푸세'의 논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규제 완화가 일자리 창출과 투자를 불러온다는 논리는 이미 이명박 정부 5년을 통해 허구임이 드러났다. '국민 성공 시대'를 내건 이명박 정부는 '부자 감세'를 비롯해 규제 완화를 통해 낙수효과를 내세웠다. 그러나 그의 '국민 성공' 공약은 실패로 끝났다. 부익부빈익빈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그의 집권 5년 동안 성장한 것은 소수 대기업뿐이다.

요컨대 대기업이 성장하면서 그 성과가 중소기업으로 다시 서민으로 흘러넘친다는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는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았다. 서민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하도급 중소기업, 영세 자영업자, 비정규직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을 개선하는 정책이 중요하고 바로 그것이 2012년 대선에서 '경제 민주화'로 제시되었다. 박근혜 후보까지 대선 내내 '경제 민주화'를 부르짖었다.

그럼에도 집권에 성공한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 민주화'를 외면하고 다시 '줄푸세'로 돌진하고 있다. 이미 한국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손꼽히고 있다. 한국은 2014년 '세계은행 기업 환경 평가(Doing Business)'에서 세계 189개국 가운데 5위를 차지했다(<동아일보>, 2014년 10월 30일 자). 한국의 기업 환경 순위는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 30위에서, 2008년 23위, 2010년 16위, 2012년 7위로 해마다 가파른 상승세를 보여 왔다. 2014년 10월에 발표된 한국 순위는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1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3위다. 1위는 싱가포르였으며 뉴질랜드, 홍콩, 덴마크가 뒤를 이었다. 한국은 전기 연결(1위), 통상 행정(3위), 퇴출(5위)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했다. 정부는 '규제 개혁 노력' 때문으로 풀이했다. 하지만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 온 한국 경제에서 서민들의 삶은 나아지지 못했다.

규제 완화가 투자와 일자리 창출, 국민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논리는 현실과 맞지 않는 이데올로기(허위의식)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그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신문과 방송에 의해 확대재생산되는 데 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바로 그 이데올로기 아래서 세월호 참사와 문창극 참극이 일어났다는 데 있다.

3. 규제 완화 논리와 대한민국의 현실

1) 세월호 참사

2014년 4월 16일, 잔잔한 바다에서 대형 여객선 세월호가 100분에 걸쳐 시나브로 침몰했는데도 300여 명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충분히 구조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데도 수학여행 길의 10대 청소년 300여 명이 '생수장' 당한 참사 앞에서 대다수 국민은 가슴앓이를 하며 미안해했다.

참사 공화국이 대한민국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으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자살 공화국, 학벌 공화국, 삼성 공화국, '빨리빨리 공화국' 따위의 대한민국 '별칭'에 부끄러운 하나가 더 늘어난 셈이다. 물론, 자학할 필요도 그럴 뜻도 없다. 다만 참사가 끝없이 이어지는데도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인식은 우리 모두 명확해야 옳다.

배가 침몰하는 상황에서 청소년들에게 '가만히 있어라' 방송하고 자신들은 탈출한 선장과 선원들 때문에 생때같은 10대들이 생명을 잃었다는 슬픔과 분노가 모든 국민 사이에 퍼져 갔다.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세월호를 불법으로 증축하고 기준 이상으로 화물을 선적함으로써 사고를 일으킨 청해진해운은 '구원파'가 운영해 왔다.

하지만 참사의 근본적 원인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들에 대한 규제 완화에 있다. 이명박 정부가 선박을 소유한 자본의 요청을 수용해 노후 선박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해 주지만 않았다면, 세월호는 운항할 수 없는 배였다.

이미 국회 국정감사에서 선령 제한을 '완화'하는 과정에 선박 안전을 위해 '선박 정비 평가'를 강화해야 한다는 선박 검사 기관의 의견을 정부가 묵살한 것도 드러났다. 당시 정부는 관계 부처 협의를 이틀 만에, 법제처는 법령 심사를 나흘 만에 끝냈다. 낡은 여객선에 대한 관리 방법에 대해 1년에 하루라도 교육받게 하자는 건의조차 정부는 "새로운 의무 부과"라며 수용하지 않았다. 결국 선령 제한 완화 뒤 선박 수입에서 15년 이상 된 노후 선박 비중은 2009년 이후 가파르게 치솟았다.

일본이 더 사용하지 않고 중고로 매각한 낡은 배의 어디서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선령이 10년을 넘으면 선체가 낡고 엔진에 고장이 잦아 매각할 때 단가가 낮아진다. 실제로 세월호의 전 선장은 "특별히 큰 결함은 없었지만, 작은 기계적 문제는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세월호를 한국에 판매한 일본 선사는 세월호가 "당시 18년 돼서 낡은 호텔 같았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가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는 규제 완화 정책과 이어져 있다는 인식은 국민 사이에 퍼져 있지 못하다. 여기에는 여론 시장을 독과점하며 정부와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신문사들과 정부 영향 아래 있는 공영방송사들의 책임이 크다. 세월호 참사가 '규제 완화'와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오히려 눈 홉뜨는 대학교수들도 적지 않다.

해양수산부는 "당시 선령 제한 완화는 법제처나 국민권익위에서도 국무회의에 보고할 만큼 공감대가 있었던 사안"이라고 해명 아닌 '해명'을 언죽번죽했다. 하지만 그 '공감대'는 당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내건 이명박 정권의 규제 완화 정책과 그를 적극 두남둔 독과점 신문과 방송 때문에 형성됐을 따름이다.

언론과 대학만이 아니다. 종교도 세월호 참사의 본질을 흐리는 데 큰 몫을 했다. 대형 교회 가운데 하나인 명성교회 김 아무개 목사는 "하나님이 공연히 이렇게 (세월호를) 침몰시킨 게 아니다. 나라가 침몰하려고 하니 하나님께서 대한민국 그래도 안 되니, 이 어린 학생들, 꽃다운 애들을 침몰시키면서 국민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설교했다. 그는 또 선박 규제 완화와 긴급 구조 실패의 책임을 묻는 국민을 되레 비판하며 "세월호는 우리 나라의, 우리 국민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우리 전체 국민의 수준이 이런 거다"고 말했다. 심지어 사랑제일교회 전 아무개 목사는 주일예배에서 "세월호 사고 난 건 좌파, 종북자들만 좋아하더라. 추도식 한다고 나와서 막 기뻐 뛰고 난리야"라고 설교했다. 사랑의교회 오 아무개 목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남가주 사랑의교회에서 재벌 가문의 정몽준 아들이 세월호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들을 겨냥해 '미개하다'고 한 발언이 "틀린 말이 아니"라고 두둔했다.

바로 그래서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규제 완화'를 '신주'처럼 모시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교훈을 잊고 규제 완화만 부르대는 박근혜 정부에게 2014년 12월 1일의 오룡호 참사는 또 다른 경고다. 러시아 앞바다 베링 해에서 침몰해 수십 명이 사망·실종된 오룡호는 1978년 스페인에서 건조된 뒤 사용되다 2010년 사조산업이 인수한 선박이다. 현재 국내 원양어선은 2013년 말 기준으로 모두 342척인데 21년 이상의 노후 선박이 312척으로 91.2%에 달하고, 31년 이상 된 것도 132척으로 38.6%에 이른다. 한국해양대학교 공길영 교수는 "오래된 선박은 배수구가 좁아지기 때문에 자그마한 이물질에도 배수가 막히게 된다"며, 배수구가 막히다 보니까 물이 넘쳐 "배가 무거워지고 물이 고인 쪽으로 배가 기울게 되고 그 속에서 바람과 파도가 높이 차오르게 되어 더더욱 물이 차오르게 되면 결국은 침몰"한다고 분석했다.1)

물론, 원양어선들은 국제적인 기준에서도 선박의 안전을 선주나 선장에게 맡겨 놓고 있다. 하지만 그 어떤 나라도 한국처럼 낡은 배들이 '주종'을 이루지는 않고 있다. 한국에서 자본에 대한 통제(규제)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2) 문창극 참극2)

'세월호 참사'에 이어 '문창극 참극'이 일어났다. 세월호 침몰이 '하나님 뜻'이라는 '개신교 지도자'들의 '설교'에 대다수 국민이 어이없어 할 때,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총리의 후임으로 지명된 문창극도 '하나님의 뜻' 강연으로 충격을 더했다.

교회 장로인 그는 온누리교회 강연에서 "조선 민족의 상징은 아까 말씀드렸지만 게으른 거야.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지는 거 이게 우리 민족의 DNA로 남아 있었던 거야"라고 주장한 뒤 "하나님은 왜 이 나라를 일본한테 식민지로 만들었습니까, 라고 우리가 항의할 수 있겠지, 속으로. 아까 말했듯이 하나님의 뜻이 있는 거야. 너희들은 이조 500년 허송세월 보낸 민족이다. 너희들은 시련이 필요하다" 운운했다. 그는 식민지만이 아니라 남북 분단과 전쟁까지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했다.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문창극의 발언에 국민적 비판 여론이 일어나자 한국 개신교의 대형 교회 '원로 목사'들과 '원로 언론인'들은 물론, 교수들까지 '기독교적 시각으로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옹호하고 나섰다.

그들은 문창극이 "조선 민족이 게으르다고 한 게 아니다"라며 "아전들이 착취하니 일할 의욕을 잃은 것이다. 게으른 줄 알았는데 연해주에 가 보니 다른 민족보다 더 부지런하더라. 문제는 위정자다"라고 말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문창극은 강연 내내 '조선 민족의 게으름'을 여러 차례 반복했고, 윤치호 일기를 인용하면서도 그를 비판하는 말은 전혀 덧붙이지 않았다. 그의 주장은 "우리나라 이조 말기의 우리 민족들의 피에는 공짜로 놀고먹는 게 아주 그냥 몸에 박혀 있었다는 것이다. 하여튼 이런 나라였다. 게으르고 일하기 싫어하고. 그런데 그런 나라에 선교사들이 와서 변화를 주신 것"이라는 대목에 압축되어 있다.

요컨대 "게으른 나라의 피를 타고 난" 조선 민족이 "공짜로 놀고먹는 게 아주 그냥 몸에 박혀 있었"지만, 선교사가 오고 그 덕분에 달라졌다는 주장이 강연의 핵심 주제이자 일관된 '논리'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식민사관의 핵심 이론인 정체성론과 타율성론이다. 두루 알다시피 식민사관의 이론적 핵심은 사회발전이 정체되어 있었다는 '정체성론'과 자주적 발전은 불가능했기에 외부 '도움'이 필요했다는 '타율성론'이다. "이조 5백년 허송세월"하고(정체성) "공짜로 놀고먹는 게 아주 그냥 몸에 박혀" 있던 나라에 "선교사들이 와서 변화를 주신 것"(타율성)이다. 정체되어 있던 나라와 민족이 외국 영향으로 각성했다는 논리가 강연 전반에 관철되고 있다.

하지만 식민사관에 젖은 지식인들이 제 민족을 불신하며 외세에 의존하거나 그들의 '개입'을 기다리고 있을 때, 이 나라의 민중은 주체적 실천에 나섰다. 문창극이 인용한 윤치호가 우리 민족이 자립심이 없다고 단언할 때3), 이 땅의 민중은 갑오농민 전쟁에 이어 의병 전쟁을 일으켜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을 만큼 자주적으로 역사 발전에 최선을 다했다. 숱한 '윤치호'들이 민중을 멸시하고 억압하며 외세에 가담했을 때도, 3․1운동으로 석 달 동안만 7000여 명이 숨졌고, 그 뒤에도 6·10만세운동과 광주학생운동이 상징하듯이 청장년들이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 독립운동에 뛰어 들어 일제와 줄기차게 싸웠다. 민중이 주체적 결단으로 역사에 참여하고 있을 때, '지식인'들은 민중이 게으르고 공짜만 좋아한다고 '훈계'하다가 친일의 길로 걸어갔다. 일본이 기록한 통계만 보더라도 1907년에서 1909년까지 무장투쟁에 나선 의병은 14만 명에 이르며 일본군과 국내 교전 횟수도 2700차례에 달한다.

식민사관의 두 이론인 정체성론과 타율성론에 따르면, 한국인(조선민족)은 '게으르고 퇴보적이고 심지어 공짜를 좋아하는 무리'에 지나지 않는다. 문창극의 강연 가운데 '공짜'를 좋아하는 '게으름'과 '선교사들의 변화'라는 외적 요인에 대한 강조는 단순히 일제강점기만이 아니라 2010년대에도 나타난다. 이른바 '공짜'를 좋아하는 '게으름'과 관련된 식민사관이 그것이다.

문창극은 그가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에서 강의할 때 '수업 자료'로 나눠 준4) '공짜 점심은 싫다' 제하의 <중앙일보> 기명 칼럼(2010.3.30)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무료 급식은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고 싶다.… 말이 좋아 포괄적 복지이지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다른 한편 무료 급식은 배급 장면을 연상케 한다. 좀 심하게 비유하자면 우리 아이들이 공짜 점심을 먹기 위해 식판을 들고 줄을 서 있는 것과, 식량 배급을 타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북한 주민이 그 내용 면에서는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무상 급식이 쟁점으로 떠오른 2010지방선거 국면에서 쓴 칼럼이다.5) 학교 무상 급식을 놓고 '공짜 점심을 먹기 위해 식판을 들고 줄을 서 있는 것'과 '식량 배급을 타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북한 주민'이 "다르지 않을 수 있다"라는 그의 시각은 식민사관의 연장선에 있다.

문창극은 "의식주를 포함해 모든 것을 국가가 책임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 때 독립적인 개인은 사라지고 의타적인 인간만이 넘치게 된다. 이에 비례해 국가의 간섭은 심해진다. 개인의 자유와 존엄은 시혜를 베푸는 국가에 반납할 수밖에 없다. 우리도 북한처럼 나라에서 먹여 주고 입혀 주는 대로 살 것인가" 물은 뒤 "그렇게 만들어진 국가 의존형 인간들이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지켜 낼 수 있을까? 그런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가능할까? 결국 전체주의, 공산주의형 인간을 만들어 내지는 않을까?" 물음표를 던진다. 그런데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지켜" 내려고 많은 사람들이 희생하며 군부독재와 맞서 싸울 때, 정작 문창극은 군부독재 체제를 노상 찬양했던 신문사의 기자로 내내 활동한 반면, 무상 급식을 비롯한 보편적 복지 운동에 나선 사람들이야말로 독재에 맞서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지켜 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문창극의 '국가의존형 인간'이나 '민주주의' 주장이 전혀 신뢰를 주지 못하는 이유다.

문창극은 심지어 "부패보다 무서운 병" 제하의 칼럼(2011.6.28.)에서 "(복지는) 부패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 바로 '공짜병'이다. 사회 복지병이다. 이 병에 걸리면 사람들은 노력한 것보다 더 큰 대가를 바라고, 심해지면 일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 모든 걸 국가가 대신해 주겠다는데 누가 일하려 하겠는가. 기생(寄生)을 당연한 것으로 여길 것"이라고 매도한다.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보편화된 복지에 견주면 참으로 미미한 수준의 복지를 바라는 여론에 대해 문창극은 "지금 분위기는 부자들은 당연히 더 내야 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받을 권리가 있다고 부채질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라면 한쪽에게는 자기의 정당한 몫을 빼앗긴다는 박탈감만 주고, 다른 쪽에게는 타인의 노력에 의존해 살아 가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뻔뻔함만을 키워 준다"고 주장한다("그들 손에 맡기지 말라", 2011.1.25).

자기 성찰을 전혀 찾을 수 없는 문창극의 '공짜 인간' 비판은 그의 저널리즘을 관통한다. 가령 "복지라는 이름으로 국가에 의탁하는 병든 인간을 만들기 바쁘다. 내 책임보다 남의 탓으로 돌리기에 급급했다. 이런 병든 문화는 사회 곳곳에 퍼져 있다"는 '선동'을 서슴지 않는다('병든 문화, 시드는 나라', 2006.9.5). 식민사관에 나타난 주체적 국민에 대한 외면과 무시가 관철되고 있다.6) 더 놀라운 것은 부익부 빈익빈의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 앞에 내놓은 '해법'이다. '가난에 대하여' 제하의 문창극 칼럼(2006.2.21)은 "상대적 빈곤감은 정부가 나서서 분배에 앞장선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그것은 마음의 문제"라고 쓴다.

문창극은 친일을 비롯한 과거사 청산 움직임이 벌어질 때도 "과거 청산이라는 말을 들은 지 벌써 십 수 년이 지났다. 그런데 이제는 60년 전의 친일을 청산하자고 나서고 있다. 친일을 용납하자는 말이 아니다. 이러한 과거 허물기가 우리의 미래와 무슨 연관을 가지고 있느냐를 돌아보자는 것이다. 과거 청산이 좋은 틀을 짜는 데 어떤 도움을 줄 것인가를 의식하며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7)

친일 세력 후손들이 감동할 만한 주장이다. 하지만 식민사관의 틀에 갇힌 그의 언론 활동과 그를 지지하는 언론인, 교수, 종교인들이 적지 않았다는 사실이야말로 과거 청산이 얼마나 절실한가를 웅변해 준다. 식민사관은 민중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다시 복지 정책이 공짜 인간을 양산한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3) 프란치스코 신드롬

2014년 8월 14일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4박 5일 동안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비롯해 고통받고 있는 약자들을 따뜻하게 다독여 주었다. '프란치스코 신드롬'이 일어난 이유다.

이웃은 경쟁에서 밟고 올라서야 할 대상이 아니라 서로 도우며 함께 가야 할 연대의 대상임을 교황은 내내 강조했다. 무엇보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신봉'하고 있는 '낙수효과'에 대해서도 질타했다.

2013년 3월 교황으로 선출된 그는 1200년 만의 비유럽 출신 교황이다. 서기 731년 시리아 출신으로 교황에 오른 그레고리우스 3세Gregorius III 이후 처음이다. 그레고리우스 3세의 지역도 당시 동로마제국이었던 사실에 주목한다면, 의미는 더 크다. 라틴아메리카와 북아메리카를 통틀어 아메리카 대륙 출신으로는 기독교 2000년 역사상 최초의 교황이다.

이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기독교의 중심이 더는 유럽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러 주기 때문이다. 선출에 참여한 추기경들 사이에서도 유럽 중심의 가톨릭교회로는 시대의 요구를 감당할 수 없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다고 한다.

더 주목할 점은 역대 교황들과 달리 그가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아르헨티나로 이민한 이탈리아계 철도 노동자 가정의 5남매 가운데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역사상 처음으로 진정한 '노동자 계층'의 교황이 탄생했다는 평가가 나온 이유다. 그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교구를 이끌던 대주교 시절에도 시내버스를 이용하고 식사를 손수 만들어 먹는 청빈하고 겸손한 생활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두터운 사랑을 받았다. 대주교가 된 뒤에도 관저에 머물지 않고 작은 아파트에서 생활하면서 '늘 사람들과 가까이 어울린 소박한 성직자'였다.

교황이 된 뒤에도 스스로를 '교황' 대신 '로마 주교'라 부르며 교황에게 따르는 특권들을 모두 거부했다. 교황으로 선출된 날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군중과 인사한 뒤 추기경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저녁 만찬장으로 갔다. 신임 교황을 위해 기사가 딸린 리무진과 경호원이 대기하고 있었지만 사양했다. 교황의 공식 거처인 교황궁에 머물지 않고 일반 사제들이 오가는 바티칸의 게스트하우스에 숙소를 정했다. 관용차로도 값비싼 방탄차를 물리치고 소형차를 선택했다. 언제나 제기되었지만 용두사미로 끝난 교황청 개혁을 위해 민간인들이 참여하는 위원회도 구성했다. 그가 취임 뒤 첫 추기경 선임에서 19명 가운데 10명이 비유럽권 출신이듯이, 가톨릭의 유럽 중심주의를 넘어서려는 데도 적극적이다

무엇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회'라는 그의 믿음을 차근차근 현실로 구현해 가고 있다. 교황은 권고문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을 선포함으로써 현대사회에서 가톨릭이 어디로 가야 옳은가를 또렷하게 담았다.

"저는 자기 안위만을 신경 쓰는 폐쇄적이고 건강하지 못한 교회보다 거리로 나와 다치고 상처 받고 더럽혀진 교회를 더 좋아합니다."(49항).

틈날 때마다 가난과 불평등 문제 해결을 위한 교회 구실을 강조했다. 이탈리아에서 실업 문제가 가장 심각한 지역을 방문해 즉석 강론을 하면서 "주여, 우리에게 일자리를 주십시오. 우리에게 일자리를 위해 싸우는 법을 가르쳐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 "내 설교가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 아무 의미가 없음을 잘 알지만 그럼에도 용기를 내라고 말하고 싶다. 여러분 마음 깊은 곳에서 용기가 솟아날 수 있도록 사목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겠다"는 겸손함도 보였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교황이 '황금만능주의'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대목이다. 교황은 글로벌 경제 체제를 '돈에 대한 숭배'라고 비판하며 '규제 없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라고 천명했다.

"어떤 사람은 아직도 자유시장경제만이 경제 성장을 보장하고, 그 성장이 세상을 더욱 정의롭고 평등하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런 것은 시장에 대한 너무 유치하고 순진한 믿음"이라면서 "이런 경제는 사람을 사회에서 쫓아낼 뿐 아니라 사용하다가 소모품처럼 버리고 죽이는 경제다. 이런 배척과 불평등의 경제는 안 된다고 말해야 한다."

"우리는 새로운 우상을 만들어 냈다. 구약의 황금송아지 숭배가 오늘날 돈 숭배와 어떠한 인간적 목표도 갖지 않는 정체불명의 경제 독재 속에서 새롭고 냉혹한 이미지를 갖고 다시 나타난 것이다."

무엇보다 교황은 세금과 규제를 완화하자는 '보수주의자들의 경제 이론'을 다음과 같이 명토박아 비판했다. "어떤 사람들은 낙수효과 이론을 옹호한다. 그들은 자유 시장으로 이룩한 경제 성장이 궁극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고 정의를 구현하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는 사실로 증명된 적이 없다. 경제적 힘을 휘두르는 사람들의 선함이나, 기존 경제 체제의 성스러운 작동을 순진하게 믿는다는 표현에 불과하다."

4. 무엇을 할 것인가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세월호 참사, 문창극 참극, 프란치스코 신드롬에서 우리가 성찰해야 할 것은 규제 없는 자본주의, 황금만능주의가 지닌 문제점이다.

굳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새로운 독재' 개념을 빌리지 않더라도, 오늘의 한국이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있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터이다. 이승만에서 박정희를 거쳐 전두환으로 이어진 폭압적 독재 정권은 물러갔지만, 여론 시장을 독과점한 신문과 방송 들이 날마다 규제 완화의 논리, 시장과 자본에 모든 것을 맡기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과 언론이 제 구실을 못할 때, 그 시대의 민중이 기댈 마지막 언덕은 종교다. 규제 완화의 신자유주의가 복지국가를 잠식해 가는 현실에서 종교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진실을 일러 줄 의무가 있다.

종교인들이 신도들과 더불어 성경만이 아니라 정치사회를 학습하고, 토론하고, 소통하는 모임을 만들어 나가길 간곡히 제안한다.

"주님이 너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정의롭게 행동하고 자비를 사랑하며 신과 함께 겸손히 걸어가라"(What does the LORD require of you? To act justly and to love mercy and to walk humbly with your God. 미가 6:8).

손석춘 /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주

1)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2716533&plink=ORI&cooper=NAVER. 2014년 12월 2일 확인.
2) 손석춘, <식민사관의 확대 재생산과 한국 언론>, <<역사비평>>, 2014년 겨울호.
3) 윤치호는 "조선이 지금의 야만적 상태에 머무느니 차라리 문명국의 식민지가 되는 게 낫겠다"(1890년 5월 18일 일기)며, "만약 내가 마음대로 내 고국을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일본을 선택할 것이다. 오, 축복받은 일본이여! 동방의 낙원이여!"(1893년 11월 1일 일기)라고 토로한다. 조선의 명문에서 태어난 윤치호는 약육강식의 국제 사회에서 조선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일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믿은 '확신범'이었다(윤치호, 김상태 엮음, <윤치호 일기- 1916~1943>, 역사비평사, 2001).
4) 고은지, '문창극 총리 후보 수업받았던 서울대생들 평가는', <연합뉴스>, 2014.6.11.
5) 당시 서울대 학생 커뮤니티(스누라이프)에는 언론정보학과 전공 선택과목 '저널리즘의 이해'를 수강 중이라고 밝힌 학생이 "무상 급식과 관련해 작성한 '문창극 칼럼'이 사회적·정치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는데도 수업 시간 자료로 썼다며 불만을 토로"한 글이 올라왔다. 서울대 학생들이 만든 강의 평가 사이트인 '스누이브'(SNUEV)에서 문창극 강의를 들었던 학생 중 평가에 참여한 10명은 10점 만점에 평균 3.0점을 줬다. 난이도는 매우 쉬운 수준인 1.2점이다. 문창극은 2010년 봄학기 '저널리즘의 이해'를 가르쳤고, 2014년에는 초빙교수로 임명돼 '언론사상사'를 강의했다(고은지, 위 기사).
6) 그 시각으로 세상을 보기에 문창극은 서울 용산의 철거민 참사 앞에서도 과잉진압을 지시한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을 적극 옹호할 수 있었다. '김석기를 살려야 한다' 제하의 칼럼(2009.2.3)은 "경찰청장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두고두고 이 나라에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며 "앞으로 경찰청장의 목은 데모대가 쥐게 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7) 문창극, <문창극 칼럼:자유와 공화>, 을유문화사, 2008, 200쪽.

* 참고 문헌
손석춘, <무엇을 할 것인가>, 서울: 시대의 창, 2014.
손석춘, <10대와 통하는 기독교—청소년과 예수의 커뮤니케이션>, 서울: 철수와 영희, 2014.
손석춘, <네가 정말 나를 사랑하느냐?—크리스천도 모르는 기독교 바로 알기>, 서울: 시대의창, 2014 (12월 24일 출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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