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5일이면 유민 아빠 김영오 씨의 뜻을 이어 시작된, 방인성 목사의 단식기도가 40일째 된다. 언제나 그렇듯 10월 4일에도 조계성 원장은 출근 전 단식장에 먼저 들러 두 목사의 건강 상태를 확인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단식장의 아침은 차들이 내뿜는 굉음과 함께 시작한다. 오전 7시가 넘어서면 광화문광장은 머리를 울리는 소음 때문에 잠을 자고 싶어도 잘 수가 없다. 견디기 힘든 건 시끄러운 소리만이 아니다. 차량 유동량이 워낙 많아 단식장에 앉아 있으면 땅이 울린다. 화물차나 버스가 지날 때는 단식장 천막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휘청거린다. 7시 30분께 차 소리에 잠을 깬 방인성 목사가 텐트 밖으로 나왔다. 잠은 잘 주무셨느냐고 묻자, 차 소리가 너무 커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고 했다. 음식을 못 먹는 건 참을 만하지만 소음은 도저히 못 견디겠다고 했다.

10월 4일 아침 날씨는 어제보다 한결 포근했다. 새벽 날씨가 너무 차 노숙했던 시민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행히도 따뜻한 햇살이 비쳐 간밤의 찬 기운을 어느 정도 몰아냈다. 하지만 체온이 급격히 떨어진 두 목사는 여전히 겨울 점퍼와 내복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조계성 원장(일신연세가정의원)은 여느 때처럼 아침 일찍 단식장에 들러 두 목사의 건강 상태를 확인했다. 두 목사 모두 혈압은 정상이었지만, 혈당량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조 원장은 혈당이 70 아래로 떨어지면 위험하다고 했다. 영양분을 섭취하면 혈당은 다시 오를 수 있지만, 두 분은 단식 중이기 때문에 혈당량이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홍술 목사가 특히 위험하다며 효소를 충분히 섭취하라고 당부했다.

▲ 조계성 원장의 진찰이 끝나갈 무렵, '유민 아빠' 김영오 씨 진료를 담당했던 이보라 선생(오른쪽)이 종교인 단식장을 찾았다. 이보라 선생은 조계성 원장과 나란히 앉아 두 목사의 건강 상태를 전해 들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아침부터 반가운 손님이 단식장을 찾았다. 46일간 단식 농성을 했던 '유민 아빠' 김영오 씨의 주치의 이보라 선생이었다. 그는 두 목사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너무 늦게 찾아봬 죄송하다고 말했다. 두 목사는 밝게 웃으며, 이렇게 찾아와 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했다. 이 선생은 김영오 씨의 얘기를 꺼내며 두 목사에게 건강관리에 유념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영오 씨 역시 40일이 넘어가자 혈압과 혈당이 많이 떨어져, 8월 28일 새벽에 쓰러졌다고 했다. 이 선생은 단식 30일이 넘은 시점에서는 언제 쓰러질지 모른다고 했다. 몸에 이상이 생기면 자신이나 광화문에서 대기하는 소방대원에게 즉시 알릴 것을 부탁했다.

이보라 선생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지를 통해 김홍술 목사 소식을 들었다. 김 목사가 단식한 지 40일이 됐다는 얘기를 듣고 수액을 준비해 왔다. 하지만 김홍술 목사는 단식을 정식으로 마친 후에 수액을 맞겠다며 정중히 사양했다. 이 선생은 두 목사에게 단식 종료 후 회복 방법을 꼼꼼히 설명해 줬다. 이 선생은 두 목사가 염려돼 단식장을 찾았지만, 두 목사는 오히려 이 선생을 염려했다. 방인성 목사는 여당과 언론의 공격을 꿋꿋이 이겨 내라고 했다. 김홍술 목사는 의사로서 약자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훌륭하다며 불의한 권력 앞에 굴복하지 말라고 했다. 일부 보수 언론과 여당은 이보라 씨의 정당 활동 등을 근거로, 김영오 씨의 주치의를 맡은 것에 대해 '불순한 의도'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김홍술·방인성 목사, 20kg 가까이 몸무게 줄어

김홍술·방인성 목사는 매일 아침 인근에 있는 사우나로 향한다. 사우나는 성인 걸음으로 약 5분 거리에 있다. 단식 초기에는 광화문역 화장실에서 씻기도 했지만, 날로 쌓이는 피로를 풀 겸 아침마다 사우나를 찾는다. 씻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단식장은 주변 소음이 워낙 심해 쉬어도 쉬는 게 아니다. 샤워를 마친 두 목사는 사우나에 마련된 장의자에 앉아 40분간 휴식을 취한다. 이동부터 씻는 것까지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깨끗이 씻고 나면 기분이 한결 낫다고 했다. 두 목사는 샤워를 마친 뒤 체중계에 올라 몸무게를 쟀다. 두 목사는 단식 시작 전보다 20kg 가까이 몸무게가 줄어 있었다.

▲ 아침 진찰이 끝나면 두 목사는 광화문 인근 사우나로 향한다. 이동부터 씻는 것까지 남의 손을 빌려야 하지만, 쌓인 피로를 조금이나마 풀기 위해 두 목사는 매일 잊지 않고 사우나에 들린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사우나를 마치고 돌아오니 단식장 안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두 목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은 예배가 있었다. 양재성(녹색가재울교회)·김경호(들꽃향린교회)·김창규(청주 나눔교회) 목사 등이 두 목사를 중심으로 둘러앉았다. 사회를 본 양재성 목사는 방인성 목사에게 간단한 소회를 부탁했다.

"내일이 마지막 날입니다. 처음에 유가족들과 얘기했을 때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40일 단식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20일 정도 단식을 진행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의 기도와 격려로 40일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광화문광장에는 특별한 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40일 단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40일간의 단식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우리의 간절한 뜻이 모여 유가족들이 원하는 특별법에 제정되고 진상 규명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수의 겸손한 모습을 본받자는 기도 제목을 정하고 40일간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지역의 약자와 소외된 자에게 한없이 낮아지셨습니다. 그게 바로 겸손의 모습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불의 앞에 당당하고 약한 자 앞에 낮아지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운동 세력·정치 세력에 의지할 필요 없습니다. 위선과 거짓을 벗고 예수의 삶을 살아 내는 교회가 됩시다. 생명을 살리는 새로운 공동체로 한국교회를 회복해 나갑시다."

▲ 종교인 단식장에서 조촐한 예배가 진행됐다. 설교를 맡은 김경호 목사는 이사야서를 언급하며, 금식은 종교적 경건을 자랑하기 위함이 아닌 멍에 맨 자들의 멍에를 풀 수 있는 압제당하는 이들의 마지막 저항 수단이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세월호 유족 김기현 씨 방문…방인성 목사와 눈물의 악수

오후 3시께 고 김재현 군의 아버지 김기현 씨가 단식장을 방문했다. 김기현 씨는 10월 3일에도 청운동에서 열린 촛불 기도회에 참석했다. 그는 방인성 목사에게 안수를 청했고, 방 목사는 김기현 씨의 두 손을 마주 잡았다.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의 손을 어루만졌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새 그들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김기현 씨는 아들이 반장이 돼 수학여행을 떠났지만, 결국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방인성 목사는 김기현 씨의 손을 꼭 붙든 채 "끝까지 유가족과 함께하겠다. 조금만 더 힘을 내 달라"고 했다.

▲ 종교인 단식장을 방문한 김기현 씨는 두 목사에게 가장 먼저 인사를 건넸다. 두 목사는 김기현 씨의 손을 어루만지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두 목사는 우리가 끝까지 함께할 테니 유가족들이 조금만 더 힘을 내 달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김기현 씨는 유가족들의 상황을 전했다. 유가족들은 팽목항에서 열린 '팽목항, 기다림의 문화제'에 참여하기 위해 10월 2일 진도에 내려갔다고 했다. 아직 10명의 실종자 가족이 진도에 머물러 있지만, 날씨가 점점 추워져 우려가 크다고 했다. 최근 진도군민들이 진도체육관을 비워 달라고 해 걱정이라고 했다. 진도군민들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진도체육관은 세월호 사건을 상징하는 곳이라고 했다. 거처를 다른 곳으로 옮기면 세월호 사건이 지금보다 더 빨리 잊힐 거라고 했다.

"평일에는 아내(이지현 씨)가 청운동 농성장을 지켜요. 저는 평일에 직장 때문에 주말에만 서울에 옵니다. 아내 건강이 좋지 않습니다. 9월 2일 삼보일배를 진행할 때 발목을 다쳐 장시간 걷지 못합니다. 아내는 독실한 가톨릭교인이에요. 나는 부인과 결혼한 뒤 성당에 다녔어요. 아내는 진도에 있을 때도 가톨릭 미사에 자주 참석했어요.

휴일이라 청운동과 광화문이 썰렁할 거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생각 외로 시민들이 많이들 오셨어요. 서명운동을 벌이는 자원봉사자들, 단식장을 지키는 시민들, 40여 일 가까이 단식기도 중이신 김홍술·방인성 목사님 등 모두가 정말 감사해요. 기독인들은 광화문광장뿐 아니라 청운동에도 여러 분이 상주하고 계십니다. 유가족 곁을 지키며 우리의 고통을 분담하고 있어요.

유가족 중 아픈 분들이 많아요. 대부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장이 안 좋습니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합니다. 수면제와 소화제에 의지해 하루하루 버티고 있어요. 오전에는 청운동에 있다가 고등학생들이 광화문광장에 모인다는 소식을 듣고 광화문에 왔습니다. '세월호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청소년 행동' 조직의 학생들이 오늘 첫 만남을 가집니다. 어린 학생들이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해 마산·용산·대전 등지에서 올라왔어요. 고마울 따름이죠."

김기현 씨와 대화를 나누던 중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폭언을 서슴지 않는 두요한 선교사 일행이었다. 두요한 선교사 일행은 "대한민국은 하나님의 나라"라는 현수막을 들고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말들을 내뱉었다. 화가 날 법도 하지만 김기현 씨는 침착했다. 모든 사람의 생각이 같을 수는 없다며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하지만 반대를 하더라도 어느 정도 선을 지켰으면 한다고 했다.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회원들의 광화문광장 폭식 퍼포먼스로 상처받은 유가족들이 많다고 했다.

방인성 목사 해단식 예배…진실 규명 촉구

10월 4일은 방인성 목사가 단식을 시작한 지 40일째 되는 날이다. 민주쟁취기독교행동·세월호참사를기억하는기독인모임·예수살기·촛불교회·평신도시국대책위원회의 주최로 오후 4시 광화문광장에서 해단식 예배를 진행한다. 예배는 김홍술·방인성 목사의 발언과 함께 '세월호 특별법 제정 및 안전 사회를 촉구하는 기독인 연합 예배'로 진행될 예정이다. 설교자는 새맘교회 박득훈 목사다. 

▲ 김기현 씨는 청운동에 머물다 '세월호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청소년 행동' 이란 조직의 학생들을 만나기 위해 광화문에 잠시 들렀다. 10여 명의 학생은 진실 규명을 위한 청소년들의 역할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김기현 씨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봤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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