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술·방인성 목사는 벌써 33일, 31일째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낮에는 의자에 앉아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밤에는 작은 텐트에서 잠을 청한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하루가 지날수록 눈에 띄게 야위어 가는 김홍술·방인성 목사. 그들이 단식을 시작한 지도 벌써 33일, 31일째다. 약 2평 남짓한 공간에서 두 목사는 하루를 보낸다. 아침에 잠깐 목욕탕에 다녀오기 위해 자리를 비우는 것 빼고는, 대부분 이곳에서 사람들을 맞이하거나 진료를 받고 책을 읽는다. 많은 사람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유가족과 약속한 40일을 지키겠다는 이들의 의지는 확고하다.

기독교 단식 천막에서는 7개 교회가 3일씩 돌아가면서 릴레이 단식에 참여하고 있다. 지금은 하.나.의.교회(김형원 목사) 차례이다. 어제는 교회에서 공동육아를 하는 엄마와 아이들이 방문해서 천막의 분위기가 한층 밝아졌었다. 오늘도 어린 방문객이 광화문광장을 찾았다. 김인정 씨는 7개월 된 배서은 양과 함께였다. 서은이는 교회에서 맞춘 '엄마들을 슬프게 하지 마세요'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김은정 씨는 엄마의 마음으로 뭐라도 해야지 하는 생각에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고 했다.

25일부터 27일까지 하.나.의.교회(김형원 목사)가 단식 천막에서 함께 릴레이 단식을 진행하고 있다. 25일에는 교회에서 공동 육아를 하는 엄마와 아이들이 천막을 방문했다. 아이들의 방문에 두 목사의 얼굴이 더 밝아졌다. (사진 제공 지승룡)

세월호참사를기억하는기독인모임(세기모)에서 주관하는 일인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오는 사람도 있다. 세기모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가서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오늘 일인 시위를 한 김윤진 씨는 매주 월요일 청계천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리는 세기모 추최 촛불 기도회에 매번 참석했다고 했다. 일인 시위에는 처음 참여하게 되었는데 기도하는 마음으로 들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원래 사랑의교회(오정현 목사) 대학부에서 활동했는데, 교회에서 일이 터진 것이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그는 지금은 교회를 옮겨 나들목교회(김형국 목사)에 출석하고 있다고 했다.

삼삼오오 모여 얘기를 나누던 천막에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2학년 3반 고 유예은 양의 할머니가 김홍술 목사를 만나기 위해 단식 천막을 찾은 것이다. 마침 천막을 방문 중인 김경호 목사(들꽃향린교회)와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99회 총회 얘기가 이어졌다. 기장은 지난 24일 세월호 유가족 20여 명을 총회가 열리는 변산으로 초대해 함께 예배를 드렸다.(관련 기사: 목사에게 상처받고 목사에게 위로받다) 여기에는 예은 엄마 박은희 전도사도 함께했다.

2학년 3반 고 유예은 양의 할머니도 천막을 찾았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가 세월호 유가족을 초청해 예배를 드린 것에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김경호 목사(들꽃향린교회)는 모두가 큰 은혜를 받은 감동의 시간이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예은 할머니는, 변산에서 정말 좋은 시간을 보냈고 많은 은혜 받았다는 며느리의 말을 전했다. 특별히 기장 측이 준비도 잘해 주고 모든 총대가 기꺼이 함께 예배하고 눈물 흘려 주셨다며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예은 할머니는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세상이 조금 제대로 보인다고 했다. 모든 것이 기성세대의 잘못이라며 방인성 목사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할머니가 떠나고 교복 입은 학생 다섯 명이 쭈뼛쭈뼛 천막 쪽으로 걸어왔다. 천막 밖 의자에 앉아 쉬고 있던 방인성 목사를 보더니 꾸벅 인사를 했다. 자신들을 동성고등학교 1학년이라고 소개한 학생들은 노란 리본을 목에 걸고 가방에도 달고 있었다. 그런 거 달고 다니면 학교에서 혼나지 않느냐는 방 목사의 질문에 학생들은 그래서 아예 팔등에 일회용 문신을 하고 다니는 학생들도 있다면서 함께하는 학생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 달라고 했다. 방 목사는 이들에게 "어른인 우리가 미안하다. 이렇게 와 줘서 고맙다. 꿈을, 멋진 꿈을 꾸자"고 했다.

뜻밖의 손님도 있었다. 동성고등학교 1학년 학생 5명은 단식 천막을 찾아 두 목사에게 인사했다. 아이들은 뜻을 함께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을 꼭 알아 달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이렇게 일일 방문을 하고 가는 사람도 있지만 꾸준하게 단식 천막을 방문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이 가진 사연은 다양한데 그중 매일 비슷한 시간에 광화문에 오는 사람이 있다. 알고 보니 방인성 목사가 시무하는 함께여는교회 고일석 집사라고 했다.

함께여는교회 고일석 집사는 매일같이 광화문광장을 찾는다. 오랜 세월 방인성 목사와 함께한 그는 "와서 목사님 얼굴을 보고 가야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고일석 집사와 방인성 목사. ⓒ뉴스앤조이 이은혜

그는 방 목사가 '96년 성터교회(구 재건서울교회)에서 사역할 때부터 그와 인연을 맺었다고 했다. 술에 찌들어 고생하던 그를 잡아 준 것은 방 목사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함께해 온 세월이 그를 광화문광장으로 이끈다고 했다. "특별한 약속 없으면 매일 나오려고 한다. 목사님 얼굴 보면 안심이 되니까. 와서 특별히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괜찮다. 목사님 표정을 보면 어떤 상태인지 다 알 수 있다." 오랜 세월을 함께해 온 사람들만 느낄 수 있는 감정 같았다.

▲ 지승룡 목사는 매일 아침 단식 천막을 찾는다. 그는 두 목사님과 동년배라 그런지 더 걱정이 된다고 했다. 목사님들이 단식을 끝낸 후에도 이 운동이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고 집사 외에도 먼발치에서 김홍술·방인성 목사 곁을 지키는 목사들이 있다. 민들레영토 대표 지승룡 목사는 매일 아침 11시경에 광화문광장을 방문한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천막을 지키다가 5시쯤 자리를 뜬다. 지 목사는 단식 천막을 방문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목사들의 건강 상태를 가까이서 살피기 위함이 크다고 했다. 그는 두 목사가 이번 단식으로 몸이 상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지 목사는 광화문광장이 지금 한국에서 가장 아프고 억울한 곳이라고 했다. 방인성·김홍술 두 목사가 단식하는 것이 개신교가 사회에서 올바로 서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두 목사를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사람이 잡는 삐져나온 줄기 같은" 분들이라고 표현했다.

지승룡 목사는 천막 안에 있다가 이현우 목사가 오면 그와 바통 터치를 한다. 이현우 목사는 현재 여러 신학 대학교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다. 강의가 끝나고 매일 광화문광장에 나와 두 목사가 잠자리에 들 때까지 기다린다. 천막을 지키는 사람이 없으면 기꺼이 노숙도 자처하는 그다.

"광화문광장에 나온 것은 교회2.0에서 하는 천막 카페 때였다. 유가족들과 함께하고 싶어서다. 입장을 바꿔 놓고 내가 그 처지에 있다고 생각하면 그들처럼 억울하고 슬프고 화가 날 것이다. 함께 울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가장 큰 원동력이다. 또 두 목사님 곁에 있어 드리고 싶다. 생업으로 24시간을 함께할 수는 없지만 일주일에 5끼 먹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이현우 목사는 늦은 오후 천막을 찾는다. 두 목사가 하루 일과를 마치면 그는 늘 목사들의 잠자리를 준비한다. 걷혀 있던 천 가리개를 내려서 목사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돕는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오늘도 김홍술·방인성 목사를 찾는 사람은 많았다. 그러나 방인성 목사는 모두가 와서 자신의 건강을 걱정하는 것은 고맙지만 그것으로 그치면 안 된다고 했다. 자신이 이렇게 금식하는 것은 작은 디딤돌이 되고 싶어서라고 했다.

"나한테 미안한 마음이 있으면 그 마음을 더 발전시켜서 유가족에 대한 관심으로 돌려야 한다. 유가족들의 고통과 아픔에 비하면 내가 단식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초점을 흐리지 않는 단식이 되어야 할 텐데 걱정이다. 물론 내가 걱정이 되어서 그러는 것은 알지만 그 걱정을 유가족과 사회를 향해 승화시켜야 한다. 진상 규명을 향한 운동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

26일 저녁에는 실종자들을 위한 촛불 기도회가 진행되었다. 아직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며 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밝혔다. 내일 27일 토요일 오후 5시에는 서울광장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국민대회'가 열린다. 

26일 저녁에는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들을 위한 촛불 문화제가 열렸다. 함께한 사람들은 실종자들의 이름을 함께 외쳤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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