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 광장이 세월호 특별법을 요구하는 피켓으로 노랗게 물들었다. '유민 아빠'로 알려진 김영오 씨가 단식 40일째인 지난 8월 22일 병원에 후송되면서 많은 시민들이 광장을 찾았다. 세월호 가족대책위는 지금까지 4000여 명의 시민들이 '국민 단식'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시민들은 차광막도 없이 단식장을 지켰다. 여기에는 정치인과 종교인들도 있다. 새정치민주연합·통합진보당·정의당 등 각 당 의원과 당원이 번갈아 가며 광화문을 찾았고, 가톨릭·개신교에서도 릴레이 단식을 시작했다.

김영오 씨를 대신해 무기한 단식에 돌입하겠다고 나선 목사도 있다. 함께여는교회 방인성 목사(61)다. 그는 다른 유가족들이 김 씨의 뒤를 잇지 않길 바랐다. 자녀를 잃은 슬픔을 안고 있는 이들에게 또 다른 짐을 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방 목사는 종교계가 그 짐을 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예수의 가르침은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기독교인의 입에 오르내린 말씀 중 하나다. 방 목사도 마찬가지였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가장 슬퍼하고 있는 사람들인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 이들의 아픔에 동참하기 위해 광장을 찾았다고 말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목적도 있다.

"내가 만난 예수는 우는 자들과 함께 울던 분입니다." 

▲ 시민사회와 종교계는 광화문 광장에서 유족들의 빈 자리를 채우고 있다. 행인을 대상으로 서명운동을 벌이거나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한 종교 집회를 연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방인성 목사가 무기한 단식을 시작한 8월 27일, 그를 만난 곳은 광화문이 아닌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었다. 그는 재판을 앞두고 있었다. 6년 전 부시 방한 반대 시위가 격렬했던 날, 도로를 점거해 교통을 방해했다는 이유다. 당시 방 목사는 감리교 회관 앞에서 열린 시국기도회에 참석했다가 반대 집회가 과격해지는 것을 보고 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시위대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경찰은 시위대와 전투경찰을 달래는 방 목사와 동료 목회자들을 시위대와 함께 체포했다. 재판에서 검사는 100만 원을 구형했다.

방 목사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옳은 일을 하다가 입는 손해는 마이너스가 아니었다. 단식도 마찬가지였다. 가족과 동료 목회자들은 건강을 생각하라며 방 목사를 만류했다. 그때마다 최소한 40일은 버틸 거라고 말했다. 사실 걱정이 없는 건 아니다. 방 목사는 가족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어느 정도 각오를 했다고 했다.

28일 오전, 광화문에서 하룻밤을 보낸 방 목사는 뜻깊은 선물을 받았다. 김영오 씨가 단식을 중단하기로 발표한 것이다. 단식 46일째 만이었다. 이날은 방 목사가 환갑을 맞은 날이기도 하다. 세월호 참사가 없었더라면 가족들과 좋은 음식을 먹으며 즐겁게 보냈을 날이었다. 방 목사는 김 씨의 단식 중단 선언이 최고의 환갑 선물이 되었다고 말했다. 

▲ 단식장은 농성하는 기독인들과 이들을 위해 응원하러 온 사람들로 늘 북적거린다. 한 목사가 단식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유가족을 위해 목사들이 뜻을 모았다. 이들은 광화문에서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다. 왼쪽부터 방인성 목사(함께여는교회), 김창규 목사(나눔교회), 김병균 목사(고막원교회), 김홍술 목사(애빈교회)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한국교회 세속화 심각…예언자적 메시지 회복 필요

방인성 목사는, 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 실행위원장·희년함께 공동대표 등 여러 직함을 갖고 교회 개혁과 사회 변혁을 위해 활동해 왔다. 그는 한국교회의 세속화를 지적하고, 교회가 하나님나라 복음을 되찾아 사회문제에 참여하라는 목소리를 내 왔다.

"젊었을 때는 저도 성공적 목회를 꿈꿨어요. 대형 교회 목사가 되고 유명해지기를 바랐죠. 하지만 유학 생활을 하던 중 김북경 목사님을 만나면서 가치관이 달라졌어요. 목회자가 지녀야 할 섬김의 리더십, 순수함의 리더십, 낮아짐의 리더십을 배웠어요. 교회란 숫자와 크기와 상관없이 하나님나라 복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이룬 공동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한국교회는 세속적이고, 번영주의와 물량주의에 빠진 듯이 보였어요. 목회자들은 세속적 힘을 추구하고, 교인들은 제대로 된 예수의 삶을 배우지 못해 신음했습니다. 문제를 지적한 교인들이 도리어 목회자와 교회 기득권에 밀려 쫓겨나는 일도 봤어요."

유학 생활에서 깨달은 한국교회 문제는, 방 목사가 교회 개혁이라는 기치를 들고 반평생을 살게 하는 동인이 되었다. 방 목사는 교회가 하나님나라 복음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은 교회가 교회 안에서 개인 구원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문제를 직시하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 올해 환갑을 맞이하는 방인성 목사는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그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역할을 강조했다. 한국교회가 현장에 나와 유가족들의 손을 잡아 주고, 그들의 말에 귀담아 들어줄 것을 요청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하나님나라 복음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영역에 적용돼야지 교회 안에서만 맴도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해서 독생자를 주셨는데 교회가 교회 안에만 머물고, 사회를 외면하는 건 맞지 않아요. 교회는 예언자적 메시지를 갖고, 사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갔을 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야 합니다. 하나님나라 모습을 보여 주며,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살려 내야 해요."

세월호 사고 직후, 온 나라는 유족들과 함께 아파했다. 교회도 마찬가지였다. 교계 내에서는 한국교회가 유족들을 돕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안산 주변 교회와 대형 교회는 세월호 희생자 및 실종자 가족을 위해 기도회를 열고, 주요 교단에서는 모금 운동을 벌였다. 하지만 참사가 발생한 지 130여 일이 지난 지금, 유족들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광화문과 청운동 주민센터 앞에서 농성을 벌이는데 대다수 교회는 침묵하거나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교회가 세속화되었기 때문이에요. 사회문제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없어요. 정치 권력과 경제 구조에 순응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거죠. 예수님은 로마와 결탁하고 백성의 삶을 외면하는 종교 지도자를 비판하고, 로마의 평화가 아닌 하나님이 주는 평화를 말하며 자신의 길을 걸으셨어요. 이것은 당시 종교와 사회에 대단히 위협적이고 도전적이었어요. 그러한 예수를 믿는데 우리는 왜 그렇게 못할까요. 한국교회가 그만큼 세속화되어 있고 권력에 눌려 있기 때문이에요.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는 비전과 말씀 선포, 행동이 있어야 해요."

어떤 목사들은 '가난한 학생들은 불국사에나 갈 것이지', '유가족은 미개하다는 말이 맞다'는 등 부적절한 발언을 해, 논란이 인 적도 있었다. 방 목사에게 이런 사실을 어떻게 보냐고 물었다.

"대형 교회 목사들이 권력의 눈치를 보고 있어요. 공감 능력을 상실해 아파하는 이들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고 있어요. 이것은 기독교 목사들이 해서는 안 될 말이에요. 교회가 그만큼 예수의 심장을 상실한 것이죠. 그런 교회는 낮은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줍니다. 예수가 종교 지도자에게 향했던 지탄을 그대로 받게 될 겁니다."

방 목사는 한국교회의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아직은 희망이 남아 있다고 했다. 소외된 이들의 친구가 되고, 억울한 이들의 말을 듣고, 아픈 자들과 함께 우는 교회와 기독교인들, 그들이 새로운 교회의 모습이었다. 방 목사는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현장에 나올 것을 권했다.

"한국교회 교인들이 우는 자들과 함께 울었으면 좋겠어요. 세월호 유족의 아픔에 동참하고, 그들의 말을 사심 없이 귀담아 듣고, 현장에 나와서 한 번씩이라도 이들의 손을 잡아 주었으면 좋겠어요.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아픔의 현장을 찾고 눈물을 흘리는 이들을 위해 우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방인성 목사를 오래 붙들고 얘기하기란 쉽지 않았다. 농성장에는 지난 25일부터 일주일 단식에 나선 12명의 동료 목사들이 있었고, 또 이들을 지지하러 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는 자신만 특별히 인터뷰를 하는 것에 부담스러워 했다. 유가족들을 위한다는 진정성이 가려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방 목사는 예수가 보인 진정성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예수는 공생애를 오로지 가난하고 소외된 이를 위해 사셨다. 그러한 예수의 진정성이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십자가의 자리로 이끌었다. '유민 아빠'의 46일 단식이 보여 준 무언가가 방 목사와 사람들을 움직인 것처럼 말이다. 방 목사는 도중에 쓰러지더라도 김영오 씨와 자신을 대신해 동료 목회자들이 뜻을 이어 갈 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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