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흘간의 방한 일정을 마친 프란치스코 교황이 8월 18일 바티칸으로 돌아갔다. 교황은 빡빡한 일정 속에서 세월호 유가족을 여러 차례 만나고,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했다. 그의 행보에 신자뿐 아니라 일반인도 열광했다. 그는 한국교회와 사회에 어떤 것을 남겼을까. (사진 제공 교황방한준비위원회)

나흘간의 방한 일정을 마친 프란치스코 교황이 8월 18일 바티칸으로 돌아갔다. 교황은 빡빡한 일정 속에서 세월호 유가족을 여러 차례 만나고,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했다. 그의 행보에 신자뿐 아니라 일반인도 열광했다. 무신론자 친구부터 구둣방 할아버지, 중년의 택시기사까지 최근 기자가 만난 이들은 프란치스코 교황 이야기부터 꺼냈다. 사람들이 교황을 지지하는 이유에 대해 가톨릭 평신도 신학자 김근수 씨는 "교황이 예수의 행동과 말을 그대로 전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교리에 연연하지 않았다. 예수가 그러했던 것처럼. 8월 17일,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이호진 씨에게 직접 세례를 베풀었다.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을 위해 나무 십자가를 메고 800Km 도보 순례를 마친 이 씨가 교황에게 세례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교황은 거절할 경우 상처 입은 한 사람에게 또 다시 상처를 줄 수 있다면서 받아 줬다. 일반적으로 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6개월 정도의 교육 과정을 거쳐야 한다. 과거 프란치스코 교황은 추기경 시절, 교리상의 이유로 미혼모 자녀에게 세례를 주지 않은 성직자를 향해 위선자라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교황은 사회적 약자와 고통의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보듬었다. 세월호 유가족을 지속적으로 만나 위로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마지막 날 명동성당에서 열린 '화해와 평화를 위한' 미사에 강정·밀양 주민을 비롯해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위안부 할머니를 초대했다.

 

▲ <뉴스앤조이>는 8월 19일,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한국교회와 사회에 무엇을 남겼나'를 주제로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김진호 실장, 가톨릭 우리신학연구소 박영대 전 소장과 대담을 진행했다. ⓒ뉴스앤조이 정한철

<뉴스앤조이>는 8월 19일,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한국교회와 사회에 무엇을 남겼나'를 주제로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김진호 실장, 가톨릭 우리신학연구소 박영대 전 소장과 대담을 진행했다. 참고로 우리신학연구소는 박영대 전 소장 등의 평신도가 중심이 되어 세운 한국 가톨릭 신학 연구 공동체이다. '우리신학' 연구와 보급을 통해 교회 쇄신을 지향하고 사목(목회) 대안을 만들어 가며 하느님나라 건설을 위한 건강한 평신도 양성을 비전으로 삼고 있다.

두 패널은 교황의 행보는 파격 그 자체라고 상찬했다. 역대 교황과 달리 겸손과 섬김의 자세를 이어 가면서 인지도도 상승했다고 평가했다. 교황의 이번 방한이 꾸준히 성장하는 가톨릭 교세에 힘을 보탤 것으로 내다봤다. 박 전 소장은 중산층 신자가 늘어날 것을 예측하면서, 가톨릭교회는 더욱 보수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개신교 교세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란 이야기도 나왔다. 김진호 실장은 충성도가 낮은 개신교인은 가톨릭교회로 이동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의 말과 행동은 큰 위로를 줬지만, 산적한 사회문제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봤다. 박 전 소장은 가톨릭교인은 교황이 던진 메시지보다 교황 자체에 열광한 것이라면서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는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견했다. 교황의 행보로 세월호 관심이 커졌고, 전 세계 외신이 조명했기 때문이다. 대담은 서울 서대문 한백교회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대담 내용.

- 교황이 한국에 머문 기간은 4박 5일밖에 안 되지만, 많은 것을 남기고 떠났다. 그의 행보는 연일 화제가 됐고, 신자뿐 아니라 비신자도 그에게 열광했다. 종교 지도자들은 교황에게 어떤 점을 배울 수 있을까.

김진호: 교황이 뚜렷하게 보여 준 것은 '겸손'이다. 자기 자신을 낮췄다. 일등석 좌석을 물리쳤고, 카퍼레이드 도중 스스로 내려와 세월호 유가족의 손을 붙잡았다. 장애인을 마주하기도 했다. 사실 이런 모습은 역대 교황에게서 찾아 볼 수 없었다. 이런 이미지 이펙트는 사람들에게 강하게 인식될 수밖에 없다.

세련된 언어 감각도 빼놓을 수 없다. 교황은 신자유주의를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그런데 비판에는 거슬림이 없었다. 거부감을 주는 말투가 아니라 누구나 공감할 만한 언어를 사용했다. 개신교 목회자는 신자의 반응이 두려워서 돌려 말하기에 급급한데, 교황은 다이렉트로 이야기하면서 감동을 줬다.

 

▲ 역대 교황의 방한과 달랐던 점은, 프란치스코의 메시지의 전달이 인격화됐다는 것이다. 글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 준 것이다. 교황의 행동에는 일관성이 있었고, 사람들은 '교황의 삶은 메시지와 분리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사진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한 달 넘게 단식 중인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 씨와 그를 만나고 있는 교황. (사진 제공 교황방한위원회)

 

박영대: 지금 종교 지도자들의 존재감이 없는 이유는, 고난과 연대의 현장에 서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교황의 발언은 생뚱맞은 시공간에서 회자된 게 아니었다. 그 문제가 일어나는 곳에서 당사자에게 했다. 그래서 교황의 발언이 더 큰 힘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세월호 유가족을 한 번도 아니고, 여러 차례 만난 것도 의미가 있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희생자들을 기리면서 편지도 쓰지 않았는가. 이런 점을 봤을 때, 이분이 진짜 지향하고자 하는 바가 뭔지 알겠더라.

- 그래서인가. 평소 교황이 강조해 온 청빈과 사회정의, 평화의 메시지가 한국에서도 고스란히 전달이 된 듯하다.

김진호: 교황이 선출됐다고 했을 때 의혹의 눈길들이 있었다. 독재 권력과 타협한 경력이 있다는 말도 돌았다. 너무 오랫동안 보수적인 교황만 접해서 그런지 몰라도 기대를 별로 안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난 나흘간 교황의 행보를 보니 굉장히 감동적이었다. 종교 지도자의 모습이 어때야 하는지 보고 느낀 바도 많았고, 상대적으로 부끄러운 우리(개신교)의 모습을 자성하게 됐다.
박영대: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는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니다. 문헌 등을 통해서 전달돼 왔던 것이다. 역대 교황의 방한과 달랐던 점은, 메시지의 전달이 인격화됐다는 것이다. 글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 준 것이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이건 뭐지?'하고 반응한 것이다. 교황의 행동에는 일관성이 있었고, 사람들은 '교황의 삶은 메시지와 분리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김진호: 한 종교의 최고 지도자가 감동적인 행보를 이어 간 경우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개신교엔 교황이 없지만, 상징적으로나마 조용기 원로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가 교황처럼 행동했다면, 개신교도 다른 평판을 받았을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동은 종교인뿐만 아니라 비종교인에게도 깊은 감동을 불러온 측면이 있다.

- 사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처럼 파격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한 이는 드물었다. 오히려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교황방한준비위원회가 발표한 방한 일정은 그간 교황이 강조해 온 메시지와 연관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국 가톨릭 지도부가 보수 성향을 가지고 있는데, 그들의 의사가 전적으로 반영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한국 가톨릭이 보수의 길로 접어든 계기는 무엇인가.

 

 

 

▲ "지금 종교 지도자들의 존재감이 없는 이유는, 고난과 연대의 현장에 서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교황의 발언은 생뚱맞은 시공간에서 회자된 게 아니었다. 그 문제가 일어나는 곳에서 당사자에게 했다. 세월호 유가족을 한 번도 아니고, 여러 차례 만났다. 교황의 발언이 그래서 더 큰 힘을 갖는다. ⓒ뉴스앤조이 정한철

 

 

박영대: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을 방문한 게 한국 천주교회가 보수 성향으로 바뀌는 계기가 됐다고 본다. 당시 대표적인 예로 주교회의는 보수적인 결정을 내렸다. 1987년 전국가톨릭농민회, 전국평신도가톨릭협의회 등 전국 기구를 해산하도록 결정한 바 있다. 가톨릭 안에서 개혁적 성향을 주도했던 그룹들이다.

표면에 드러나지 않지만, 지금도 이런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시위 현장에 나타나는 어버이연합과 같은 성격을 지닌 '대한민국수호천주교모임'도 있다. 앞으로 한국 천주교 안에서 개혁적 성향의 평신도 운동이 일어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각 성당의 지도층은 먹고살 만한 사람들이 주름잡고 있고, 정치적·신앙적으로 보수적인 신자들이 주도하고 있다.

- 이렇게 보수적인 가톨릭이 최근 성장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박영대: 지난 2005년 인구·종교 실태 조사에서 가톨릭이 높은 성장을 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 이유를 분석해 보니 가톨릭교회의 이미지가 성장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막연한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호감을 준 것이다. 특히 중산층이 가톨릭교회로 유입됐다. 꼼꼼하게 조사해 보니까 10년간 집중적으로 늘어난 곳은 강남 지역이었다. 천주교 신자 비율이 개신교를 앞서기도 했다.

- 막연한 이미지라면 실체가 없는 거란 말인가. 그럼에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듯이, 한국에서 가톨릭의 신뢰도는 3대 종교(개신교, 가톨릭, 불교) 중 일등이다. 교세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고, 상대적으로 이미지도 좋다. 이유가 뭘까.

김진호: 이 점은 한국 사회 변화와 맞물려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경제 성장과 함께 개신교도 성장했다. 반대로 경제가 정체될 때 개신교의 성장도 정체했다. 당시 교회의 성장 담론에 따르면 신앙과 재산, 건강이 하나의 패키지로 연결돼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식의 얘기가 안 먹힌다. 사회적으로 탈성장 사회의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는데, 한국 개신교는 이런 기조에 보조를 맞추지 못했고, 이는 교회에 대한 사회의 불신과 혐오로 나타났다.

반면 가톨릭은 애초부터 성장주의를 추구하지 않았기에 사회의 변화 그 자체가 이미지 개선에 유리했던 측면이 있다. 가톨릭도 개혁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지만 종교로서의 이미지는 한결 좋아진 것이다. 한편 최근에는 사제들과 수도자들의 행보로 인해 사회적 평판이 좋아진 측면이 있다. 4대강 사업, 강정·밀양·쌍차(쌍용자동차) 사태에 대해 다른 종단의 성직자들과 활동가들보다 가톨릭 사제들과 수도자들의 활동이 두드러졌던 것이다.

박영대: 일단 가톨릭은 다른 종교에 관용적이고, 사납지 않다. 사회정의에 민감하고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해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이미지가 각인되기도 했다. 또, 이번 광화문 시복 미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제의가 서양식이라서 세계적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약간 럭셔리해 보이는 측면이 있다. 이 점이 중산층에게 매력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 이처럼 가톨릭이 좋은 이미지에 신뢰까지 얻다 보니 일부 개신교 목회자들은 교황의 방한이 교세 감축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한다. 반응을 보면 어느 정도 영향이 있을 것 같다.

 

▲ "지난 나흘간 교황의 행보를 보니 굉장히 감동적이었다. 종교 지도자의 모습이 어때야 하는지 보고 느낀 바도 많았고, 상대적으로 부끄러운 우리(개신교)의 모습을 자성하게 됐다." ⓒ뉴스앤조이 정한철

김진호: 통계적으로는 상당한 영향이 있을 것이다. 한국은 다종교 사회지만, 종교 간 갈등이 없고, 이동도 자유롭다. 특히 최근 들어 개신교 신자의 귀속 의식이 낮아졌다. 이는 한국 사회가 발전하면서 특정 종교에 대한 충성심을 종교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줄어든 것이다. 여러 종교에 관심과 존경을 표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는데, 난 이들을 '멀티 신자'라고 부른다. 멀티 신자는 사회 분위기에 맞물려 늘어났다.

예를 들어 2005년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가톨릭 신자'라고 답하는 이의 수가 크게 늘었다. 여기에는 멀티 신자 층에 속하는 이들 중 다수가 자신의 종교를 가톨릭이라고 답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구센서스는 하나의 종교만을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톨릭교인라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영세를 받은 적이 없고 성당에도 안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 자체가 가톨릭의 사회적 공신력이 높아졌다는 증거다.

- 일각에서는 "교황이 위로를 줄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 현실은 바꿀 수 없다"는 말을 한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비롯해 산적한 사회문제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는가.

박영대: 교황 방한이 사회문제에 구체적인 영향을 미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특별법을 원래 생각대로 관철하기 위해 애쓸 것으로 생각한다.

김진호: (박 전 소장과) 같은 의견이다. 비관적이다. 박근혜 정부는 교황 방한의 영향을 별로 안 받는 것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압박을 받고 있는 만큼 어떤 형태로든 타협할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8월 19일 세월호 특별법을 재합의했지만, 유가족이 원하는 수사권과 기소권은 반영하지 않았다. - 편집자 주) 교황의 방한으로 세월호 문제는 전 세계적 이슈가 됐다. 박근혜 정부가 이 문제를 적절히 처리하지 않으면 박 대통령이 어느 나라를 가든 부정적 기사들이 따라붙을 것이다. 상대국은 이런 약점을 적극 활용할 것이고, 박근혜 정부는 국제외교에서 불리한 협상에 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 교황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무한 경쟁과 물질주의에 맞서야 한다고 했다. 특히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고, 노동자를 소외하는 비인간적인 경제 모델을 거부하길 빈다"고 했는데, 한 종교의 수장이 이런 메시지를 던진 것은 이례적인 것 같다. 그런데 이 메시지는 현재 한국교회가 전하는 메시지와 배치되는 것 아닌가.

 

 

▲ "울림을 주는 강력하고도 감동적인 메시지 자체가 낯설기보다는, 이런 말을 하는 교황이 낯선 것이다. 그의 메시지 핵심은 반자본주의론에 있는 게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질서가 우리의 사회질서를 파괴하고 가난한 자들을 양산한다는 데 있다. 교황의 이런 문제 제기를 받아 우리는 우리 시대의 고통에 대해 더 많은 성찰을 해야 하고 참여의 방식을 생각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뉴스앤조이 정한철

김진호: 이런 메시지는 1970~80년대, 가톨릭이 시민 사회운동을 전개할 때 많이 나왔다. 다만 선대 교황들은 누구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바꿔 말해, 메시지 자체가 낯설기보다는 이런 교황이 낯선 것이다. 혹자는 프란치스코를 마르크스주의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그가 반자본주의를 주장한다는 이념적 비판이겠다. 한데 그의 메시지 핵심은 반자본주의론에 있는 게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질서가 우리의 사회질서를 파괴하고 가난한 자들을 양산한다는 데 있다. 교황의 이런 문제 제기를 받아 우리는 우리 시대의 고통에 대해 더 많은 성찰을 해야 하고 참여의 방식을 생각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 교황이 본국으로 돌아갔다. 앞으로 교계와 시민·사회단체는 세월호 유가족을 위해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가.

김진호: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는 명백하다. 하지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밝혀 내는 일은 쉽지 않다. 향후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그 결과도 그리 만족스럽지 못할 것 같다. 해서 특별법이 어떻게 만들어져도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긴 어렵다. 결국 갈등의 봉합을 위해 정치적 타협이 시도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대한 투쟁은 그 정치적 협상을 보다 유리하게 하기 위한 투쟁이 될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문제의 근원적 청산과 해법을 위한 제도 개혁을 위한 투쟁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한데 문제는 이 투쟁에서 희생자 가족들이 전면에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결국 그들이 정치적 타협의 소모품이 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도 결국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 전환이 걱정된다. 깊은 트라우마가 그들의 생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교회와 시민사회는 지금부터라도 좀 더 적극적으로 유가족이 겪게 될 트라우마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교황은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큰 위안을 줬지만, 남은 과제는 고스란히 우리의 몫으로 남겨졌다.

 

 

박영대: 동의한다. 유가족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고립감이다. '이러다가 묻히는 것 아닐까' 하는. 실제 교황이 오기 전 유언비어를 퍼트려 유가족을 힘들게 하지 않았는가. 기사 보니까 야당 의원들이 다시 동조 단식에 동참한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다른 방식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매번 같은 방법을 하니 정부 여당도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 아닌가. 진보 시민운동의 한계일 수도 있다. 기존의 방식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 다른 이야기지만, 일부에선 과거 프란치스코 교황이 독재 정권과 어울렸다는 주장을 다시 한다.

박영대: 사실 여부를 떠나서 과거 문제를 따지는 것은 시의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김진호: 독재 정권에 부역한 여부를 지금 논하는 것은 적합한 것 같지 않다. 교황 후보로 올랐을 때면 모를까. 그때 나왔던 얘기다. 과거를 캐서 들먹이는 것은 발목 잡기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 있다. 속죄 여부는 그 자신에게 맡겨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지금은 그분의 개인적인 속죄 문제가 아니라 교황으로서 직무를 어떻게 수행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 "세월호 유가족을 생각하면 절실함이라는 낱말이 떠오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절실함을 회피하지 않았다. 절실함과 현장을 지향하는 영성이 어떻게 잘 일상화되는지가 중요하다." ⓒ뉴스앤조이 정한철

- 분명한 사실은 이번 교황의 방한이 한국교회와 사회에 울림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진호: 현대사회에 들어 종교 역할이 중요해졌지만, 제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다. 물론 그런 역할을 해 보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지지부진했다. 그러나 이번 교황의 방한을 통해서, 종교가 다시 한 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서두에 박 소장님은 가톨릭 신자 중 중산층이 늘어나는 것을 우려했다. 실제로 강남 3구에는 가톨릭 신자의 비율이 다른 곳보다 월등하다. 하지만 이것을 적극적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빈곤층과 중하위계층의 자원은 크게 삭감되었다. 여기에는 비물질적 자원도 포함되는데, 특히 비판과 저항의 자원이 크게 삭감되었다. 실제로 중하위계층은 '의자놀이' 같은 생존 게임에 내몰려 다른 생각의 여지를 상실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비판과 문제 제기의 자원이 아직은 남아 있는 중산층의 증언과 행동이 과거보다 훨씬 중요해졌다.

이번에 교황은 중산층을 향해 가난한 사람을 생각하고, 그들과 공감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아마도 이 메시지는 적지 않은 가톨릭 중산층 신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가톨릭교회의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 지도자들은 그런 영향이 실체화되도록 더 많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뉴스앤조이>에서 '교황 방한', 교회들은 어떻게 설교했나 기사를 읽었다. 이걸 보고 느낀 것은 개신교의 대형 교회는 개선 방안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작은 교회 목회자들은 오히려 교황 덕에 용기를 얻었다. 하지만 일부 개신교 일각에서는 교세가 줄어들 것을 염려한다고 한다. 차라리 교세가 가톨릭보다 줄어들면, 개신교가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박영대: 세월호 유가족을 생각하면 절실함이라는 낱말이 떠오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절실함을 회피하지 않았다. 절실함과 현장을 지향하는 영성이 어떻게 잘 일상화되는지가 중요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다녀갔으니, 다음에는 달라이 라마가 우리나라에 왔으면 생각한다. 교황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결이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게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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