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퍼레이드를 하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 8월 16일 서울 광화문에서 시복 미사를 집전했다. 교황은 강론에서 어려운 형제자매를 도우라고 강조했다. (사진 제공 교황방한준비위원회)

"막대한 부요 곁에서 매우 비참한 가난이 소리 없이 자라나고,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사회 안에 사는 우리에게, 순교자의 모범은 많은 것을 일깨워 줍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어려움에 처한 형제자매를 사랑하고 섬길 것을 계속 요구하고 계십니다."

방한 3일째를 맞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시복식을 집전한 뒤 강론을 전했다. 강론에서 언급된 순교자는 윤지충 바오로를 비롯한 123명이다. 한국 가톨릭 첫 순교자인 윤지충은 유교식 제사를 거부해 참수당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당대의 엄격한 사회구조에 맞선 순교자들의 모범을 따르면, 그들이 죽음에 이르도록 간직했던 숭고한 자유와 기쁨이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순교자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교황은 순교자들의 승리가 오늘날 교회 안에서 계속 열매를 맺고 있다면서 "여러분의 선조들에게 물려받은 신앙과 애덕의 유산을 보화로 잘 간직해 지켜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 가톨릭 평신도 대표는 순교자들의 피가 헛되지 않도록,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복음의 기쁨을 나누는 교회가 되겠노라고 화답했다.

이날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한 미사에는 가톨릭 신자를 포함해 시민 90만 명(경찰 추산)이 몰렸다. 현장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1.2km 직선으로 이어지는 경복궁과 남대문 사이에는 참가자들로 빼곡했다. 부산‧대구‧전남 등 지방에서 온 신자들은 이른 새벽 전세 버스와 열차를 타고 왔다. 미사 시작 시각은 오전 10시였지만, 행사장은 오전 7시부터 사람들로 붐볐다. 자리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출입증이 없는 신자와 일반인은 방호벽 바깥에서 시복 미사를 지켜봐야 했다.

▲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고 있는 모습. 프란치스코 교황은 카퍼레이드 도중, 유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 위로했다. 고 김유민 양의 아버지 김영오 씨는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사진 제공 교황방한준비위원회)

오전 9시경, 프란치스코 교황이 등장하자 주위가 술렁였다. 자동차에 올라탄 교황을 본 참가자들은 일제히 기립해 "비바 파파"를 외치며 환호했다. 사회자는 "환영합니다, 교황님"이라고 소리쳤다. 교황은 손을 들어 참가자들을 맞았다. 교황은 어린아이들의 이마에 입맞춤을 선사하기도 했다.

교황은 카퍼레이드 도중,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중인, 고 김유민 양의 아버지 김영오 씨를 만나 위로했다. 교황을 만난 김 씨는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끔 특별법이 제정되게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직접 쓴 편지를 노란 봉투에 담아 교황에게 전하며 잊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교황은 김 씨의 손을 잡고 경청했다. 교황의 통역을 맡은 정제천 신부가 "(교황님이 가슴에) 배지(노란 리본)를 달고 계십니다"라고 말하자, 김 씨는 기울어진 리본을 바로잡아주기도 했다. 시복 미사에 초청된 세월호 유가족들은 교황을 향해 "감사합니다", "땡큐, 땡큐"라고 인사했다.

이날 직접 눈과 귀로 교황을 접한 이들은 감탄을 쏟아 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교구의 한 수녀는 교황의 행동에는 섬세함이 묻어 있고, 메시지에는 사랑이 담겨 있다면서 마음이 평안해졌다고 말했다. 교황이 전한 사랑의 메시지를 위정자와 사회 권위자들이 듣고 함께 깨우쳐 가길 바란다고 했다. 중고생 자녀 둘과 함께 시복 미사에 참석한 김상미 씨는 "이런 기회가 또 있을지 모르겠다.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두 시간 넘게 진행된 시복 미사는 질서 정연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몇몇 개신교인이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는 팻말을 들고 돌아다녔지만, 동요하는 이는 없었다. 

▲ 서울 광화문에서 진행된 시복 미사. 이날 집회에는 가톨릭 교인을 비롯해 일반 시민 90만 명이 모였다. (사진 제공 교황방한준비위원회)
▲ 교황의 방한은 요한 바오로 2세 이후 25년 만이다. 서울 광화문은 부산, 대구, 전남 등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신자들로 인해 가득 찼다. (사진 제공 교황방한준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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