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3일 희년함께·희망살림은 장기 채무자들의 부채를 변제하기 위해 2차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했다. 이들은 지난 4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지금까지 216명의 빚, 전체 14억여 원의 빚을 갚았다. 희년함께와 희망살림은 한 달 동안 성금을 모아 3차 부채 탕감 운동을 벌일 계획이다.

채무자들의 빚을 무조건 갚아 주는 부채 탕감 운동은 사실 이번이 처음 일은 아니다. 십 년 전 성터교회에서 교인들이 서로의 부채를 자체적으로 탕감해 준 일이 있었다.

2004년 성터교회는 교회를 설립한 지 50년이 되는 해에 희년을 선포했다. 교인들은 기념행사를 줄이고 대신 희년 정신을 계승한 사역에 뜻을 모았다. 교인들 간의 부채를 탕감하고,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었다. 교인들은 채무자의 빚을 탕감한다는 다짐을 적어 헌금함에 넣었다. 수천만 원의 빚을 청산하겠다는 교인도 있었다. 당시 담임목사였던 방인성 목사는 이들이 단순히 빚만 청산한 게 아니라 채무자와 채권자라는 관계에서 진실한 이웃으로 회복했다고 말했다.

희년을 선포한 성터교회의 사역은 부채 탕감 운동이 다가 아니었다. 방 목사는 교인들에게 교회는 지역을 섬겨야 한다며 어려운 이웃들을 돕자고 권했다. 희년 특별 헌금으로 한 달 만에 5000만 원이 모였다. 적지 않은 액수였다. 성터교회는 지자체와 협력해 형편이 어려운 40가구의 공과금을 대신 납부했다. 모두 전기세, 수도세, 가스비 등을 내지 못해 전기와 물이 모두 끊긴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이외에도 독거노인, 장애우 등 지역 내의 소외된 이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도움을 주었다.

방 목사는 당뇨를 앓던 한 교인에게 자신의 신장을 기증하기도 했다. 교회 설립 50주년과 동시에 나이 오십을 맞이하면서 장기를 기증하기로 다짐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희년에서 배운, 자신의 것을 나누는 이웃을 섬기는 삶의 실천이었다. 

▲ 희년함께 및 희망살림의 부채 탕감 운동은 희년 제도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들은 최근 99%를 위한 99%에 의한 구제, 빚 탕감 프로제트 2차 크라우드 펀딩을 열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희망살림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빚 탕감 프로젝트 2차 후원 영상 갈무리)

고대 이스라엘 민족의 사회 안전망 제도, 희년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그 오십 년째 해는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가꾸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는 밭의 소출을 먹으리라 이 희년에는 너희가 각기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갈지라 네 이웃에게 팔든지 네 이웃의 손에서 사거든 너희 각 사람은 그의 형제를 속이지 말라" (레 25:10-14)

성터교회가 50주년을 맞이하며 선포했던 희년은 성서에 나오는 제도로, 유대인들은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난 50년째 해가 되면 요벨 나팔을 불며 희년(Jubilee)을 선포했다. 이때에는 모든 노예가 해방되고 부채가 면제되었으며, 땅과 집이 본래 주인에게로 돌아갔다.

희년 제도는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사회의 모습을 담고 있다. 김근주 교수(기독연구원 느헤미야·구약학)는 그것을 가난의 대물림이 없는 세상이라고 풀이했다. 살면서 누구든지 상황에 따라 형편이 어려워지고 노예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희년 제도는 이를 본래대로 되돌려 가난의 고착화를 방지했던 것이다.

공동체의 상호 책임도 강조했다. 희년 제도 중 하나인 '토지 무르기'는 한 이스라엘 사람이 가난해서 유산으로 받은 땅을 팔게 되면, 가까운 친척이 그 땅을 다시 사서 원래의 소유자에게 돌려주게 하는 제도다.

김 교수는 희년이 내포했던 가난의 대물림 방지와 공동체의 상호 책임을 오늘날 어떻게 구현할지, 교회가 이를 두고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희년 운동으로 부채·생계·주거 문제의 해결 방안 마련

그러면 성경의 희년을 오늘날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토지+자유연구소 남기업 소장은 교회가 실천할 수 있는 희년 운동으로 세 가지를 강조했다. 먼저, 교회 안에서 부채 탕감이 이뤄져야 한다. 교인들 간의 채권-채무 관계가 오랫동안 지속될 경우 변제가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하고 이를 탕감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각 교회의 실정에 맞는 희년 실천 프로그램을 개발할 것을 제안했다. 기금을 만들어 교인들을 돕는 등 희년을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역들을 자체적으로 전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는 성터교회를 예로 들며, 지역에서 생활이 어려운 이들이 재활할 수 있도록 교회가 정신적·물적 토대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측면에서 하.나.의.교회(김형원 목사)가 운영하는 희년 기금은 참고할 만한 사례가 된다. 하.나.의.교회는 교회 재정과 별개로 희년 기금을 조성해 교인들의 생활을 돕는 데 쓰고 있다. 기금의 용도는 크게 네 가지로, 미래 희망 기금(학자금, 창업 자금 등), 생활 안정 기금(긴급 생활비, 의료비, 임대비), 공동체 지원 기금, 기타로 구분되어 있다. 지원을 받는 데 특별한 조건이 요구되지는 않는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등록금이나 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할 때, 갑작스러운 실직으로 생활비가 필요할 때, 누구든지 희년 기금을 요청하면 실무자들이 재정을 지원한다.

희년 기금은 회원들이 매달 일정 금액을 기부하면서 이뤄진다. 2010년 희년 기금을 시작한 지 4년 만에 기금 전체 예산이 약 10배 이상 증가했다. 기부 회원도 70여 명으로 늘었다. 전체 교인의 절반이 넘는 수다. 초기 희년 기금의 용도는 학자금과 생활비 지원으로만 사용됐는데, 예산 규모와 기부 회원이 점차 늘면서 쓰임새도 다양해졌다. 기금 현황과 사용 내역은 매달 전체 회원들에게 공지된다.

"희년 기금의 취지는 개인의 무한 책임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 희년 제도 정신에 기초한 상호 책임의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 것이다." 희년 기금 실무를 맡은 박정수 간사의 설명이다. 박 간사는 신청자가 자신의 경제적 상황을 공유하고 스스로 상환 여부와 기간을 결정하게 하는 것과 교인들이 자체적으로 이사회를 구성해 기금을 운영하는 방식들은 서로에 대한 각 구성원의 책임감을 높인다고 말했다.

교회가 재정 문제뿐만 아니라 주거 문제에도 나선 사례가 있다. 이스라엘 민족들은 50년째 해가 되면 잃어버린 땅과 집을 모두 회복해 기본 주거권이 보장됐다. 일부 교회는 이러한 희년 제도에 입각해 서민들의 집 문제에 나섰다. 개혁교회네트워트(더작은교회, 더함공동체교회, 새맘교회, 언덕교회, 예인교회 등)·들녘교회·뜨인돌교회 등 20여개 교회는 지난해 9월 주거권기독연대(박득훈·박창수·이해학·최철호·허준영 공동대표)를 창립했다.

이들이 대표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전월세 인상률 상한제'로, 매년 폭등하는 전·월세 대란을 막기 위한 조치다. 주거권기독연대 고석동 사무국장은 임대 재계약 기간을 자녀들의 학기 기간에 맞춰 2년에서 3년으로 늘리고, 재계약 시에는 평균 물가 상승률을 고려해 월세 5%, 전세 10% 이상으로 인상하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관련 법안의 입법을 국회에 요구하는 한편, 기독교인들이 자발적으로 전월세 인상률 상한제를 실천하도록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였다. 지금까지 23개 교회와 1300여 명의 교인들이 서명에 참여했다. 

▲ 주거권기독연대가 지난 10월부터 진행한 세입자 주거권 보호를 위한 기독교인 서명운동 경과를 지난해 12월 5일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에서 발표했다. 23교회 1322명이 동참했다. 이들은 이날 한국교회가 가난한 세입자들과 함께할 것을 촉구했다. ⓒ뉴스앤조이 한경민

교회, 희년 정신에 동의하는 삶 필요

어떻게 하면 교회가 이러한 희년 운동을 지속적으로 실행할 수 있을까. 김형원 목사(하.나.의.교회)는 교회의 체질을 바꾸는 것에 그 답을 찾았다. 그는 희년 운동을 하나님나라의 경제 운동이라고 정의했다.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에 사는 기독교인들이 모든 것을 득과 실로 따지는 사고방식을 깨뜨리고, 희년 정신에 동의하는 삶을 살게 하는 것이다. 김 목사는 교인들이 서로의 소득 수준과 소비 형태 등을 공유하며 하나님나라의 경제 질서를 고민할 때, 부채 탕감이나 전월세 인상률 상한제 실천 등의 희년 운동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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