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입양인들을 위한 사업을 하고 있는 뿌리의집에서 최근 책 한 권을 발간했다. '복음주의 기독교의 선의와 국제간 아동 입양의 현실'이라는 부제가 달린 <구원과 밀매(The Child Catchers)>라는 책이다. 책은 고아를 거두라는 하나님의 지상명령을 받들고, 입양을 하거나 장려해 온 많은 기독교인에게 적잖은 생각거리를 던지며 입양 문제의 실태를 드러냈다. 기독교계뿐만 아니라 다양한 언론사에서 이 책을 소개하면서 한국 사회가 입양 문제를 제대로 성찰할 필요성이 있음을 알렸다.

▲탐사 전문 기자가 4년 동안 200명의 사람을 만났다. <구원과 밀매>는 그가 세계 곳곳에서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입양의 실태를 파헤친 책이다.

<구원과 밀매>의 저자 캐서린 조이스는 탐사 전문 기자이다. 그는, 이미 일곱 아이를 둔 엄마가 입양을 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 모습에 의문을 품고 입양 문제에 천착했다. 4년 동안 200명이 넘는 사람을 만나면서 캐서린은 사회참여에 활발한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이 입양을 선교 수단쯤으로 여긴다는 것을 알게 됐다.

또 다른 문제도 밝혔다. 교회가 선의를 품고 입양 운동을 시작했다 하더라도, 돈이 끼어든 입양 산업에는 반인륜적인 많은 문제가 파생한다는 점이다. 개발도상국 아이를 불법으로 납치하고서도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길 원한다는 식의 해명을 한다거나, 얼마쯤의 경제적 지원만 있으면 친생(親生) 가족과 살 수 있을 아이를 지원하지는 않고, 입양 보내기를 서슴지 않는 일들이 벌어졌다.

캐서린은 <구원과 밀매>라는 책을 통해서 입양 산업의 실태를 밝히고, 그 중심에 교회가 있다는 사실을 들춰낸다. <오마이뉴스>와의 저자 인터뷰에서 캐서린은, 개혁이 절실한 입양 운동을 미국 기독교가 더욱 나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책 2, 3장을 보면 새들백교회의 릭 워렌 목사와 예수전도단 등이 미국 입양 문제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에 잘 알려진 교회 중에서는 사랑의교회가 입양 운동을 하고 있고 온누리교회도 매해 이를 장려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주목해 볼 마지막 8장은 한국의 해외 입양 실태를 보고한다. 한국 사례에선 기독교보다 유교 문화, 즉 가부장제가 입양에 크게 개입하고 있다. 500쪽에 달하는 <구원과 밀매>는 자본이 어떻게 생명을 사고파는지, 그 와중에 친생 가족의 권리는 어떻게 무시되는지 소상히 밝힌다. 캐서린은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야 제대로 된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하며, 통상 입양을 선한 일로 여겨 온 한국 사회와 기독교인들의 문제를 가감 없이 꼬집었다.

고아 양산한 사회 시스템에 함구한 한국교회

뿌리의집에서 이 책을 자신들의 다섯째 책으로 선정한 데는 이유가 있다. 그동안 펴낸 책들이 입양을 둘러싼 사회 인식, 입양인과 입양 가족, 친생 가족의 이야기들을 담았다면, 이제는 기독교가 이 문제의 논의 주체로 나설 때가 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뿌리의집 원장 김도현 목사를 만나 책을 펴내게 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그는 입양 문제가 한국 기독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국 기독교의 문제라는 그의 말은 많은 고아를 양산한 한국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쟁 직후인 1955년, 홀트 부부는 8명의 한국 아이들을 입양한다. 우연히 펼쳐 본 성경 구절(사 43:5-7, <구원과 밀매> 87쪽 참고)을 근거로, 홀트 부부는 입양이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라고 확신했다. 홀트 여사는 홀트아동복지회를 설립하며 현재까지 한국에서 국내외 입양 사업을 선도해 오고 있다.

김도현 목사는 홀트 부부가 그들의 삶을 다해, 개인으로선 고귀한 일을 했다고 유감없이 평가했다. 하지만 이들이 입양 문제에서 개인의 선의에만 머물렀다는 점은 비판했다.

"홀트가 입양을 다루는 방식은 미국과 세계, 그리고 한국 사회에 매우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 영향은 아동 양육 시스템을 올바르게 세우는 것으로 뛰어넘어 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죠…많은 교인은 연말이면 고아원을 찾아갈 생각을 합니다. 그 지점에서 '왜 이 아이들은 고아원에 살까', '왜 친가족과 헤어져야만 했을까', '우리 사회를 어떻게 구성하면 이 아이들이 고아원에 오지 않고, 자기 가족과 살 수 있을까' 하는 질문들을 기독교인들은 했어야 합니다…불의한 시스템 자체를 바르게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게 좋은 사람일 수 있을까요?"

▲홀트 여사가 전쟁 고아들을 입양하며 1950년대 세워진 홀트아동복지회. 개인의 선의, 신앙의 실천으로 의미 있는 일들을 해 왔지만, 아이가 엄마 곁에서 살 수 있는 사회 전체 시스템에 대한 고민은 부재했다. (홀트아동복지회 홈페이지 갈무리)

사회적 편견에 내몰린 미혼모…"교회, 사력 다해 가부장제와 싸워야"

그의 문제의식은 입양을 하는 기독교인들이 정작 고아가 발생한 이유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하지 않는 데 있었다. 미혼모든, 원치 않는 임신이었든 친생 가족이 아이를 포기하는 많은 경우, 사회적 시선이나 경제적 압박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입양이 아니라 미혼모에 대한 사회 인식 변화와 경제적 지원책 마련을 위해 애써야 한다는 것이 김 목사의 말이다. 하다못해 강간으로 아이를 갖게 되었어도, 생모가 원한다면 그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을 찾는 게 먼저라고 김도현 목사는 주장했다. 입양은 최후의 보루라고 했다.

김 목사와 다른 입장의 이야기도 들어 보려 1998년 공개 입양을 하고, 1000여 가정의 입양을 도운 것으로 유명한 황수섭 목사(고신대 의대)와 접촉했다. 황 목사의 표현을 빌리면 김도현 목사는 입양을 반대하는 쪽에 70% 힘을 싣고 있고, 자신은 입양을 찬성하는 쪽에 그만큼 힘쓰고 있는 입장이다. 하지만 황 목사는 김도현 목사에게 많은 부분 동의했다. 황 목사는 200여 교회에 입양 강의를 다니면서, 입양을 지나치게 환상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교인들을 많이 만났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교회는 미혼모를 죄인으로 낙인찍고, 그를 돕는 일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미혼모가 내 딸이고, 한 가족이라고 생각한다면 교회가 그럴 수 없지 않겠냐고 했다.

황수섭 목사의 말처럼 미혼모들이 교회에 머물기는 쉽지 않은 형편이다. 어느 집단보다 나를 고백할 일이 잦은 곳이 교회인데, 자신을 드러낸 미혼모에게 주어지는 건 안식이 아니라 따가운 시선이 대부분이다. 김도현 목사는 이것이 한국 사회에 뿌리 깊은 가부장제 때문이라고 봤다. 가부장제에 대한 문제의식은 캐서린 조이스도 책 8장에서 공유하고 있는 부분이다.

▲뿌리의집 원장 김도현 목사는 교회가 입양을 다시금 논의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혼모라 하더라도 사회 경제적 문제 때문에 아이를 포기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제가 입양 문제를 다루면서 들여다보니, 기독교가 정말 사력을 다해 싸워야 할 건 가부장제였습니다. 교회가 복음에 충실한 자세를 가지고 있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가부장제 권력에 대해서 죄악으로 규정하고, 다투어서 정리를 해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여성 친화적일 뿐만 아니라 아동 친화적인, 보다 더 민주적인 감수성이 풍부한 그런 공동체를 잘 가꾼다면, 입양 문제는 달라질 겁니다."

"저도 교회 목사지만, 교회가 왜 이렇게 정신이 없을까 생각해 보면 감수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어른이 어린아이를 귀하게 여기는 감수성. 인간에 대한 진정한 감수성이 있는 그런 곳에 미혼모들도 자신의 신분을 노출하면서, 복음 안에서 따듯하게 지낼 수 있어요. 그들은 큰 위로와 격려 안에서 자신을 다시 설계하고, 아마 잘못 살아온 삶에 대해서도 성찰이 가능할 거예요. 그런데 끊임없이 배척하고 정죄하는 분위기 가운데서는,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 다가가서 삶을 새롭게 성숙시켜 나가는 일을 하는 것이 참 어렵겠지요. 그러니 지금 교회는 미혼모들이 안식하기에는 가장 불편한 곳이에요."

아이와 엄마를 떼어 놓지 않는 방법

뿌리의집은 전문 출판사라기보다 입양 문제를 다양한 사업을 통해 해소하고자 하는 단체다. 2002년 출범해 출판 외에 해외 입양 한인 게스트하우스와 입양인 권익 향상을 도모하는 시민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구상하고 있는 목표들 중에는 시군구 단위의 임신·출산·수유(양육)를 할 수 있는 여성위기지원센터 설립이 있다.

센터 설립안은 정부가 일정 부분 받아들였다. 현재 숭실대와, 정부에서 제공한 용역과 함께 '임신·출산·수유 여성위기지원센터'가 과연 가능한지 연구하고 있다. 익명의 여성들까지 들어와서 충분히 안식할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지 따져보려고 한다. 그밖에, 경제 수준과 관계없이 미혼모 또는 미혼부에게 50만 원 정부 지원금 지급과 출생 자동 등록제 도입 등을 위한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현재 정부 지원금은 한 아이당 고아원, 위탁 가정, 미혼모 순으로 100만 원, 50만 원, 10만 원 단위로 줄어든다.

김도현 목사는 이야기 내내 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외면하고, 입양을 하는 건 오류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입양은 가정이 깨어지고 아이와 엄마가 헤어져야만 가능한 일이다. 김도현 목사는 그리스도인들이 <구원과 밀매>를 통해 이 문제를 성찰하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입양을 장려하는 이들은 해외 입양으로 국격이 떨어질까 봐 뿌리의집이나 김도현 목사가 반대 운동을 펼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김 목사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홀트 여사나, 입양 기관에서 항상 (저희에 대해) 하는 말이 국격을 위해 입양을 반대하는 사람들이라는 얘기에요. 나라 체면 때문에 입양 안 보내려고 그러느냐 말하는데, 저희는 한국 사회 내부에 아동 양육 시스템을 합리적이고 바람직하게 가꿀 능력을 우리 시민사회가 갖고 있느냐 없느냐 문제를 얘기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이를 키우는 지혜를 잘 모아 내는 사회가 되는 건 좋은 일이잖아요. 우리는 국격이 문제가 아니고 성숙한 시민사회의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정합니다. 먼저 <뉴스앤조이>는 한국 사랑의교회가 새들백교회의 입양 운동을 잇고 있다고 썼습니다. 사랑의교회의 입양 운동은 새들백교회와 관계없는 걸로 확인하고 이에 정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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