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가 한국교회 부목사의 현실을 연재합니다. 부목사들을 만나고 설문 조사한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부목사들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습니다. 이번 연재를 통해 부목사 제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①근로조건 ②담임목사·교인과의 관계 ③경제 사정 순으로 게재하는 기사에서, 본 기사는 두 번째 '담임목사·교인과의 관계'입니다. - 편집자 주

"부목사한테 존경받는 담임목사가 진짜 목사야."

부목사의 현실을 취재하던 중 알고 지내던 형을 만났다. 그는 경기도 시흥에 있는 한 작은 교회에서 부목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담임목사와의 관계가 어떠냐는 질문에 대뜸 저렇게 대답했다. 교인들에게는 친절하고 신사적으로 보이는 담임목사가 부목사를 종 부리듯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부목사들도 인격적으로 대해 주는 담임목사, 교인들 앞과 부목사 앞에서 태도가 달라지지 않는 담임목사, 그래서 부목사가 스스로 존경할 수 있는 담임목사가 그만큼 적다는 뜻이다.

슈퍼 '갑' 담임목사, 슈퍼 '을' 부목사

▲ 부목사는 담임목사와의 관계를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부목사를 좌지우지하는 담임목사의 막강한 권한은 관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철저한 '갑을관계'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부목사의 현실에 대해 기획하면서 또 한 가지 착안한 부분은, '부목사 스스로 생각하는 담임목사·교인들과의 관계'였다. 근로조건이 열악하고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더라도, 관계가 좋으면 서로 소통하면서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먼저 담임목사와의 관계가 수직적인지 수평적인지 물었다.

"담임목사와 부교역자 사이의 관계는 철저한 '상하' 관계입니다. 군대라고 보시면 됩니다. 연대장 말에 대대장이 토를 달 수 없는 것처럼, 담임목사가 '맞냐'고 물으면 '맞다'고 해야 하는 분위기인 셈이죠. 실제로 이런 분위기는 상당히 일반적입니다."

"담임목사와 수평적인 관계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모르겠네요. 복종, 상명하복의 관계인 것 같습니다. 기본적인 인권이 무시되는 경우가 참 많고 교회 내에서 가장 '을'입니다."

우문(愚問)을 던진 것 같았다. 직접 만나거나 인터넷 설문 조사에 응답한 부목사 중 90%에 달하는 사람들이 담임목사와의 관계를 '수직적'이라고 답했다. '상명하복'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많이 나왔다. 군대에서나 통하는 말이 목사들의 세계에서도 상식이 되어 있었다. "슈퍼 갑과 슈퍼 을의 관계"라는 한 4년 차 부목사의 짧은 대답이 많은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물론 한국 사회에서 조직의 리더와 리더가 아닌 사람의 관계는 경직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부목사는 "가부장적인 문화 속에서 군사 독재 시절을 경험하고 남자는 모두 군대를 다녀와야 하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이런 문제는 목사들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 모든 조직이 겪고 있는 보편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담임목사의 전횡이 이런 보편적인 선을 훌쩍 넘어선 경우도 많았다. 담임목사의 연륜을 존중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담임목사에게 찍혀서 해고당한 경우, 무조건적인 충성을 강요당한 경우 등이었다. 한 8년 차 부목사는 담임목사가 '절대군주'라며 불만을 쏟아 냈다.

"저는 (담임목사와의 관계가) 수평적이라 생각하고, 발언하고 설교하며 행동했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담임목사에 의해 일방적으로 잘렸습니다. 담임목사의 말 한마디에 부목사는 사임하기 일쑤입니다."

"언제나 수직적인 관계였습니다. 전에 있던 한 교회에서는 '충성 맹세'를 작성한 적도 있었습니다. 담임목사의 말씀에 절대복종하고 이를 어길 시에는 떠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무조건 담임목사에게 복종해야 하는 관계였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따를 것인가, 담임목사의 말을 따를 것인가. 무조건 담임목사의 말을 따라야 한다', '내가 이 교회에선 하나님이야!'라는 소리도 들은 적 있습니다."

"(담임목사는) 절대군주, 황제나 대기업 회장의 대우를 받고 싶어 합니다. 따라서 담임목사 '의전'이라는 말이 빈번히 사용되고 있으며, 그가 교단을 대표하는 자리에라도 있다면 국가원수급에 해당하는 권위와 압력을 행사합니다. 따라서 부교역자들은 전제 군주 시대의 충성스런 봉신이 되어야 할 뿐 아니라, 충견이 되어야 합니다. 뼈아픈 현실입니다. 봉건시대에 민초들이 왜 동학운동을 통해 일어났는지 이해가 될 정도입니다. 담임목사는 왕입니다. 교회 안에 왕 이외에는 모두 신하 이하의 존재일 뿐입니다."

한편, 개인적인 관계는커녕 담임목사를 만나기조차 어렵다고 답한 부목사도 있었다. 교인 4000여 명이 다니는 대형 교회에서 교육목사 생활을 하고 있다고 밝힌 한 사람은, "(담임목사를) 거의 만나지 못하고 부서 사역만 감당하고 있다"고 답했다. 다른 목사도 "대형 교회일수록 담임목사와의 소통은 없었다"고 답했다.

▲ '상명하복'은 군대뿐 아니라 목사들의 세계에서도 통하는 이야기였다. 한국 사회 전반적으로 이런 군사 문화가 깔려 있지만, 담임목사와 부목사의 관계는 이런 보편적인 수준을 넘어섰다. (MBC '진짜사나이' 갈무리)

동역자인가, 하수인인가

취재할수록 담임목사와 부목사의 사이에는 '계급'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부목사가 담임목사를 보좌하는 역할이라도, 이렇게 확연히 '갑을 관계'가 되어 버린 게 바람직한 현상일까.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네덜란드에서 작성된 '벨직 신앙고백서'에는 이런 말이 있다. "말씀 사역자들은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간에 동일한 위엄과 권위를 가집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유일한 우주적 감독이시고 유일한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근거로 한 신학자는 개신교가 가톨릭과 구분되는 요소 중 하나가 '직제주의'에 대한 개혁이라고 했다. 가톨릭은 교황·추기경·주교·신부 등 다양한 위계가 있지만, 개신교는 오직 예수만이 교회의 머리일 뿐 모든 목사들은 평등하다는 것이다.

모든 목사들이 동등하다는 것이 종교개혁의 정신인데 현실의 한국교회에서는 어림없는 얘기였다. 담임목사와 함께 목회를 고민하며 교회의 비전을 만들어 가는 동역자로서의 모습은 보기 어려웠다. 오히려 부목사는 담임목사의 '질투의 대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담임목사를 도와 함께 사역하는 '동역자'의 개념보다는, 배우는 단계인 '수습 목사'로 인식합니다. 수습 과정이니 낮은 처우와 대우, 때로는 부족한 봉급 등도 당연하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전에 있던 교회 담임목사는 설교 잘하는 부목사를 꺼렸어요. 부목사 사이에는 '담임목사보다 설교 잘하면 잘린다'는 웃지 못할 얘기도 돕니다. 반 농담이지만, 선임 부목사가 되었을 때 후배 목사들에게 '찍히고 싶지 않으면 설교 대충 해라'는 말도 했어요."

"부목사는 담임목사의 비서 내지 종이 아닙니다. 목회의 동반자가 되었으면 합니다. 담임목사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으로 봤으면 좋겠어요."

▲ 부목사는 하나님이 아니라 담임목사의 종인 것 같다고 응답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담임목사 눈 밖에 나는 건 이들에게는 곧 생계와 직결된 문제다(사진은 기사와 관계없음).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담임목사 '덕분에' 받는 인격적인 대우

근로조건과 마찬가지로, 부목사와 담임목사의 관계는 전적으로 어떤 담임목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대부분 고압적인 관계를 경험하는 데 반해, 성품 좋은 담임목사를 만나 인격적인 대우를 받는 부목사도 더러 있었다. 9년간 사역한 한 부목사는 "담임목사의 배려 덕분에" 비교적 수평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고 답했다.

물론 담임목사와 부목사가 완전한 동역의 관계를 형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아무리 담임목사가 의식이 있다고 해도, 교회가 나아갈 큰 방향은 담임목사의 목회 철학이 좌우한다. 부목사들은 세부적인 방향을 정할 때 역할을 한다. 일산에 있는 B교회가 이런 경우다. 이 교회 한 부목사는 "어느 조직이든 리더의 방향성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렇다고 부목사들의 의견이 무시당하지는 않는다. 그 방향으로 나아감에 있어 구체적인 방법들을 부목사들이 제안한다. 담임목사와 부목사의 의견이 다를 때가 있는데, 이럴 때 담임목사는 자신의 주장을 밀어붙이지 않고 다시 한 번 검토한다. 실제로 담임목사가 자기 생각을 접을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목사'라 쓰고 '행정 직원'이라 읽는다

부목사가 담임목사와 맺는 관계는 교인들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줬다. 담임목사와의 관계가 수평적이라고 응답한 부목사들은 교인들에게도 존중받는 편이었다. 반면, 담임목사가 교인들 보는 곳에서 부목사를 나무라면 교인들도 부목사를 가볍게 본다고 답한 부목사도 있었다. 한 6년 차 부목사는 교인들이 이중적인 성향을 띤다고 했다. "목사는 '성직'이라는 개념 때문에 무조건 떠받들고 보는 경우와, '부'목사라는 이유로 무시하는 경우"가 공존한다는 것이다.

장로와 권사, 안수집사들이 무시한다고 답한 사람도 여러 명이었다. 대부분 부목사들이 이런 직분자들보다 어린 나이에 목사가 되고, 그 교회에 있었던 기간도 그들보다 오래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와 상관없이 부목사들은 교인들과 깊은 관계를 맺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구조에 있었다. 대부분 1~2년 만에 담당 교구를 바꾸고 그 후에는 다른 교회로 옮겨 가기 때문에, 교인들은 부목사를 '어차피 떠날 사람'으로 본다는 것이다. 또 목사보다는 행정 직원, 교회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경우도 있다고 부목사들은 답했다.

"직분 없는 교인과 항존직의 대우가 다릅니다. 간혹 장로들의 경우 (부목사에게) 반말을 쓰면서 하대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합니다. 그리고 곧 떠날 이로 취급받은 건 전도사 생활할 때부터 변함이 없습니다."

"한번은 교인들이 부목사들을 '수금 사원'이라고 부르는 걸 들었습니다. 당시 담임목사의 방침에 의해 하루에 12~14집을 심방해야 했어요. 한 집에 20분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부목사들이 와서 헌금만 받아 가는 것처럼 보였던 거죠. 교인들은 우스개로 얘기했겠지만 저는 굉장히 충격이었습니다."

"'목사라 쓰고 행정 관리 직원이라 읽는다.' 호칭은 '목사님'이지만 실상 교회 안의 인식은 복사해 주고, 잡일 거들어 주고, 필요한 것 요청하면 다 들어주는 사람입니다."

열악한 환경은 참을 수 있다, 그러나…

기사 처음에 언급했던 부목사 형은 인터뷰 말미에 이런 말을 했다.

"일도 많고 박봉이고 이런 거는 참을 수 있어, 배우는 기간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담임목사랑 교인이랑 관계가 어려우면 답이 없어. 담임목사도 존경할 만하지 않고, 교인들에게도 존중받지 못하면 진짜 힘들다."

다행히 그는 이번에 옮긴 사역지에서 존경스러운 담임목사를 만났다. 전에 사역하던 곳은 출석 교인 2000명 이상의 큰 교회였는데, 폭군 같은 담임목사를 만나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았다. 지금은 교인 100명 남짓의 작은 교회를 목회하는, 옆에서 봐도 인품이 훌륭한 목사를 만났다. 교회 규모는 작아졌지만 목사로서의 만족감은 전보다 훨씬 크다고 그는 말했다.

이런 행운아(?)가 얼마나 될까. 같은 목사로서 동역하며 담임목사의 연륜과 깊이를 배우기 바랐지만, 담임목사를 섬기는 종처럼 전락해 버린 부목사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어떤 제도를 고치려 하기보다 인격적인 대우에 더 신경 썼으면 좋겠다"고 답한 한 부목사의 심정이 이해가 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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