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가 한국교회 부목사의 현실을 연재합니다. 부목사들을 만나고 설문 조사한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부목사들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습니다. 이번 연재를 통해 부목사 제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사는 ①근로조건 ②담임목사·교인과의 관계 ③경제 사정 순으로 올라갑니다. - 편집자 주

"비정규직, 고용 불안, 복지 사각지대, 소모품…. 안타깝네요."

한 부목사의 응답이 눈에 들어왔다. 설문 조사 마지막에 '한국교회 부목사 제도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린다'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짧은 글에서 깊은 체념이 묻어났다. 부목사 생활을 얼마나 했나 봤더니 2003년부터 지금까지 사역하고 있었다. 12년 차 부목사인 그는 왜 이렇게 한숨 섞인 대답을 썼을까.

담임목사 '보좌', 임기는 '1년'

본격적인 취재에 들어가기 전, 각 교단의 헌법을 먼저 확인했다. '부목사'라는 호칭이 법으로 정해 놓은 건지, 아니면 관례적으로 그렇게 부르는 것인지 확인하려고 했다. 부목사가 법으로 제정돼 있다면 어떻게 돼 있는지도 궁금했다. 다음은 한국교회 주요 교단의 헌법(장정·헌장)에 나와 있는 부목사에 대한 정의다.

-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 부목사는 위임목사를 보좌하는 임시목사니 당회의 결의로 청빙하되 계속 시무하게 하려면 매년 당회장이 노회에 청원하여 승낙을 받는다.
-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 부목사는 위임목사를 보좌하는 목사다. 임기는 1년이며 연임할 수 있다.
- 기독교대한감리회 : 담임자를 보좌하며 담임자가 위임하는 선교·교육·행정·전도·기획·음악·사회복지·미디어 등의 담당 목사로 직무를 수행한다.
- 예수교대한성결교회 : 부목사(교육·행정·음악 등)는 당회의 결의로 청빙받아 담임목사를 보좌하는 목사.
- 기독교대한성결교회 : 담임목사를 보좌하는 목사이다.
- 한국기독교장로회 : 부목사는 담임목사를 보좌하는 목사다. 임기는 1년이며, 중임될 수 있고 담임목사 사임 시 함께 사임한다.
-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 교회는 필요에 따라 직능별로 담임목사를 보좌할 부목사를 둘 수 있다. 부목사는 담임목사가 선임한다. 부목사는 담임목사가 될 수 없으며, 임기는 1년으로 연임할 수 있다. 단, 담임목사의 은퇴 시에는 예외로 한다.

헌법상 부목사의 주업무는 "담임목사를 보좌"하는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 보좌해야 하는지는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임기는 1년으로 정해 놓은 곳도 있고 정해 놓지 않은 곳도 있었다. 담임목사가 은퇴하거나 사임하면 같이 그만두는, 마치 '순장(殉葬)'과 같은 모습도 보였다. 대부분 당회를 통해 부목사를 청빙하지만 인사권이 아예 담임목사 한 사람에게 주어진 경우도 있었다.

▲ 한국교회 주요 교단들은 헌법에 '부목사'에 대해 명시하고 있다. '담임목사 보좌', '임기 1년'.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사진은 예장합동 헌법(위)과 예장통합 헌법(아래). ⓒ뉴스앤조이 구권효

담임목사 입김에도 날아가는 부목사

법으로 정한 임기가 1년이라니. 그럼 해마다 재계약(?)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고용 불안이 심각하지는 않을까. 목사는 일반 직업과 달라서 괜찮은 건가. 부목사를 만나 제일 먼저 임기 문제를 물어봤다.

"부목사는 한마디로 비정규직입니다." 올해로 4년차 부목사의 말이다. 역시나 그랬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법이 아니라 다른 데 있었다. 바로 부목사의 모든 것을 컨트롤하는 '담임목사'였다. 개교회 현실은 담임목사가 부목사를 청빙하고 해고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부목사가 그 교회에서 얼마나 사역할지는 담임목사의 스타일에 따라 달라졌다. 취재하면서 알게 된 부목사들은 한 교회에서 짧게는 2~3년, 길게는 5~6년 정도 사역하다가 다른 교회로 옮겨 갔다. 이유도 담임목사의 성향에 따라 각양각색이었다. 한 부목사는 "여러 목회 환경을 경험할 수 있게 하려는 담임목사의 배려일 수도 있고 부목사들이 타성에 젖지 않게 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출석 교인 실적(?)이 안 좋아 '잘리는' 경우도 있지만. 어쨌든 부목사들은 몇 년에 한 번씩 계속 다른 임지를 알아봐야 하는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부목사의 임면이 어떤 제도가 아니라 담임목사의 의중에 달려 있는 건 긍정적이기보다는 폐단이 많았다. 한 16년 차 부목사는 두 번째 사역지에서는 휴대폰 문자로, 세 번째 사역지에서는 일주일 전에 구두로 해고를 통지받았다고 했다. 교회 예산이 빠듯하다는 이유였다. 6년 차 부목사는 "가장 힘든 건 (담임목사의) 인사권 남용이다. 시도 때도 없이, 절차도 없이 임의로 해고하거나 부서를 이동시킨다. (담임목사에게) 인사권이 있는 터라 정당한 하소연도 못한다"고 토로했다.

"목사 아들 목사는 '진골', 장로 아들 목사는 '성골'이라는 말 들어 보셨어요?" 한 부목사가 말했다. 목사나 장로 아들이 목사가 되면, 아버지의 인맥으로 다른 교회에 부목사 청빙을 받기 쉽다는 뜻이다. 부목사 사이에 떠도는 이런 웃지 못할 말도, 부목사의 임면 권한을 담임목사가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부목사가 생각하는 부목사는? "비서, 집사, 노예…"

▲ 청운의 꿈을 품고 목사가 되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부목사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소모품'처럼 갈아 치워진다(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뉴스앤조이 구권효

교단법에는 '담임목사를 보좌'한다고 돼 있는데, 주로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다. 부목사들은 연이어 한숨을 쉰다. 말이 좋아 보좌지, 실제로는 담임목사가 시키는 일은 뭐든지 다 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다음은 부목사들이 인터넷 설문 조사에 응답한 내용이다.

"그저 담임목사의 시종으로 무한책임을 지지만 권한은 거의 주어지지 않는 상태로 사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반 업무뿐만 아니라 담임목사의 개인 용무도 함께해야 했습니다. 예컨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의 시험 성적을 채점하는 일이라든지, 이사 후 물건 정리하기, 휴대폰이나 옷, 가방을 리서치하는 일도 했습니다."

"행정·교육·관리·사무·운전·작업·심부름 등 제한이 없어요. 담임목사님이 시키면 시간과 상황에 상관없이 해야 합니다."

"짧은 경험이었지만 한국교회에서 부목사는 그저 담임목사와 그 집안의 사노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목사는 담임목사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아요."

부목사들은 기본적으로 교구나 주일학교를 맡고 이외 행정 일과 '담임목사가 시키는 일'을 모두 해야 했다. 담임목사가 새로운 프로그램을 계속 요구해, 자신이 목사인지 프로그램 기획 회사 직원이지 헷갈려 한다는 부목사도 있었다. 할 일이 너무 많아 가족을 돌보기 어렵다고 답하는 부목사도 많았다.

"돈이나 제대로 주고 부려 먹나?"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왔다. 부목사들은 대부분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페이스북에서도 '어렵다'고 답한 사람이 많았다. 사례비에 대해서는 '부목사의 경제 사정'을 주제로, 후속 기사에서 자세하게 다룰 예정이다.

부목사들의 복지 수준도 낙제점이었다. 대개 담임목사는 여름·겨울 휴가와 안식년이 보장돼 있다. 하지만 부목사들은 이런 게 어디 명시돼 있는 게 없었다. 한 부목사는 "안식년은 고사하고 여름휴가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며 "저번 교회에서는 2년 동안 하루도 못 쉰 목사도 봤다"고 말했다. 대부분 담임목사의 허락을 받고 하루 이틀 쉬는 정도였다. "담임목사가 기분이 좋으면 교인들 성지순례 가는 데 끼워 보내 준다"고 말하는 부목사도 있었다.

보험은 따로 가입해 주지 않는다고 답한 부목사들이 많았다. 세금을 내는 교회가 많지 않으니 부목사들은 4대 보험도 가입하기 어려웠다. 간혹 부목사도 교단 연금에 가입해 주는 교회도 있기는 했지만, 보험은 대부분 알아서 하는 분위기다.

법의 사각지대, 목사는 성직이라 근로자 아니다?

▲ 부목사들 중 근로조건이 명시된 계약서를 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자신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모르는 부목사들이 많다. 이런 걸 먼저 물어보면 영적이지 못한 목사 취급을 받는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부목사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부목사들은 담임목사에게 밉보이는 게 생계와 직결된 문제이니 뭐라 말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러다 문자메시지 하나로 해고를 통지받아도 어디다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이들의 열악한 사역 환경을 구제할 방법은 없을까.

일반 근로자들은 근로기준법이라는 최소한의 선이 있다. 근로기준법은 근로 계약을 할 때에 임금, 근로 시간, 휴일, 휴가 등 근로조건을 명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할 수도 없다.

부목사도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을 수는 없을까. 이에 대한 판례를 찾아봤다. 올해 4월, 근로자로 인정받은 부목사에 대한 대법원 판례가 있었다. 이 부목사는 2011년 자신을 해고한 교회를 상대로 해고 무효 확인 소송을 걸었다. 법원은 이 목사가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 관계에서 사용자인 피고 교회에 근로를 제공했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위치에 있었다"고 판결했다. 해고는 무효가 됐다.

하지만 현실의 한국교회는 '목사 = 성직'이라는 명제가 강하게 작용한다. 목사에게 '근로'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분위기다. 부목사를 청빙하는 데 있어서 '근로조건이 명시된 계약서'라는 건 꿈도 못 꿀 일이다. 이에 대한 부목사들의 말이다.

"보통 계약서는 쓰지 않습니다. 근로조건이나 기간도 명시되지 않죠. 그리고 월급이 얼마인지, 어떤 복지가 있는지 전혀 모르고 (교회에) 들어오게 되지요. 그걸 묻는 순간 영적이지 못한 사역자로 간주됩니다."

"목사는 성직이라고 하면서, 월급이 아니라 감사의 사례비라고 하면서, 최소한 법에서 정해 놓은 근로기준법에도 못 미치는 대우를 하는 게 뻔뻔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철저한 계약을 통해 사역 기간과 여건을 보장해야 합니다."

이런 교회도 있다!

부목사에게 비교적 좋은 대우를 하는 교회도 드물게 있었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A교회에서 8년째 사역하고 있는 부목사를 만났다. 그는 6년 동안 사역하고 안식년을 다녀온 뒤 다시 일하고 있었다. 이 교회는 부목사에게도 유급 안식년을 보장한다. 여름·겨울마다 일주일씩 피정 기간이 있다. 4대 보험도 적용된다. 정년이 60세인데, 큰 사고를 치지 않는 한 부목사에게도 정년을 보장한다. 사례비도 일반 직장에 비해 넉넉한 편이다. 한국교회 전반적인 사정을 볼 때,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만한 교회다.

여기서 문제 하나. 이 교회가 다른 일반적인 교회와 다르게 부목사에 대한 처우가 좋은 이유는 뭘까? 맞다. 담임목사가 그런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목사의 운명은 하나님이 아니라, 전적으로 '어떤 담임목사를 만나느냐'에 달렸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부목사를 하는 동안 담임목사에게 목회를 배우고 교인들을 잘 목양하고 싶었을 텐데, 현실은 목회보다는 여러 가지 잡무에 시달리다 2~3년 만에 갈아 치워지는 '소모품' 신세의 부목사들이 많다. 다음은 2년 차 부목사의 말이다. 아직 신참인 그가 선배 부목사들을 보면서 어떤 마음이었을지 짐작이 간다.

"부목사는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습니다. 고용 보장이 되는 것도 아니고 10년 가까이 사역을 감당해도 미래가 보이지 않습니다. 또한 담임목사의 목회 방침에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하기 때문에 감정 노동자인 것 같습니다. 물론 제 의견이지만, 한국에서 부목사는 소모품 정도라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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