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양화진)은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재단(100주년기념재단)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100주년기념교회가 관리해 오고 있다. 외국인이 묻혀 있는 이 땅을 두고 수년간 갈등과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대법원은 양화진의 소유권이 100주년기념재단에 있다고 판결했지만, 예장통합과 마포 지역 교회협의회는 양화진을 특정 교단과 교회가 소유해서는 안 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임안섭

지난 12월 6일 오후 4시,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소강당에서는 양화진문제해결을위한대책위원회(양화진대책위·김철모 위원장)가 주관하는 <내게 천 개의 목숨이 있다면> 책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김동엽 총회장) 전·현직 총회 임원을 비롯해 김영주 총무(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박위근 대표회장(한국교회연합), 김경원 회장(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등 교계 단체장들이 참석했다. 150여 명의 참석자 가운데에는 파란 눈의 한국인도 눈에 띄었다. 언더우드 선교사의 증손인 원한석 대표(경성구미인묘지회)와 유진 벨 선교사의 외증손인 인요한 교수(연세대)였다.

이날 축사에 나선 이들은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양화진)을 되찾아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서 특정 단체와 교회가 한국교회의 유산인 양화진을 사유화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예장통합 김정서 전 총회장은 문제의 핵심은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재단(100주년기념재단․강병훈 이사장)이 양화진의 관리 책임을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100주년교회·이재철 목사)에 맡긴 것이라며, 원래대로 유니온교회가 양화진을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철 목사를 향해서는 "그분은 우리 교단에서 면직된 분"이라고 표현하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김동엽 총회장은 법적인 판단이 끝났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게 아니라면서 무엇이 진실인지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박위근 대표회장은 어떤 일이 있어도 물러서서는 안 된다며 범교단적으로 양화진 문제에 개입해야 한다고 했다.

▲ 예장통합 양화진문제해결을위한대책위원회가 <내게 천 개의 목숨이 있다면> 책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일각에서는 대법원의 판결이 끝난 문제인 만큼 이번 행사는 양화진대책위의 뒤풀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 설교를 전한 김동엽 총회장은 "법적인 판단이 끝났다고 다 끝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이들의 발언은 "한자리에 모일 수 없었던 신학대 교수들이 공동으로 참여한 것에 의의가 있었다"는 책 집필자들의 말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이번에 예장통합이 발간한 <내게 천 개의 목숨이 있다면>은 두 권으로 이루어졌다. '양화진 선교사들의 삶과 선교'라는 부제가 붙은 1권은 양화진에 안장된 선교사들의 생애와 선교 업적을 소개했다. 1권은 윤종훈(총신대)·이치만(장신대)·정용석(이화여대)·탁지일(부산장신대) 등 한국교회사학회(박명수 회장)와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윤종훈 회장) 소속 24명의 신학대 교수가 집필에 참여했다.

1권은 엄밀히 말하면 지난해 출간한 <내게 천 개의 생명이 있다면>의 개정판에 가깝다. 예장통합은 이 책을 지난해 제98회 총회에 맞춰 출판해 총회대의원들에게 배포했다. 하지만 100주년기념재단 소유 디자인을 무단 사용한 게 문제가 돼 재단 측으로부터 항의를 받고 문서로 사과한 바 있다. 또한, 책 곳곳에 치명적인 내용상의 오류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고, 양화진 관계자가 <뉴스앤조이>에 글을 게재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예장통합, 선교사 책 이렇게 내도 됩니까) 대표적인 오류로 첫째, 양화진에 선교사 및 가족의 묘가 145기 있으나 167기라 썼고, '내게 천 개의 생명이 있다면'이란 묘비명으로 유명한 루비 켄드릭 소개 글은 100퍼센트 표절인데다 역사적 사실관계도 틀렸다. <내게 천 개의 생명이 있다면>에는 양화진에 최초로 안장된 헤론 선교사에 관한 소개도 없고, 선교사가 아닌 사람을 선교사로 소개하기도 했다. 이번 개정판은 헤론 선교사 소개를 추가하는 등 지적된 오류를 상당 부분 바로잡았다. 그럼에도 이 책에는 상당한 문제점이 있다는 지적이 있다.

"무엇보다 선교사 소개 기준을 알 수 없다. 단지 국적별로 나누어 '개인이 작성한 묘지 배치도 순서'에 따라 기계적으로 수록했다. 따라서 이 책에 수록된 묘지 위치 식별 번호로는 해당 선교사를 찾을 수 없다. 안장된 이가 선교사이든 그의 가족이든 구별 없이 소개하고, 여러 가족이 묻힌 경우에도 각각 따로 소개하고 있어 내용 중복이 심하다. 더 중요한 문제는 기념비만 있을 뿐 양화진에 안장되지 않은 이들을 아무 설명 없이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사우어 선교사의 경우 가족 중 누구도 양화진에 안장되지 않았다. 이외에도 선교사가 아닌 핼리팩스를 여전히 선교사로 소개하고 있으며, 10명이 넘는 선교사는 아예 누락되었다."

이번 개정판을 검토한 100주년기념재단 백시열 국장의 말이다.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양화진의 규모는 약 4000평에 달한다. 417명의 외국인이 안장돼 있으며, 그중 선교사는 가족 포함 145명(선교사 91명, 가족 54명)이 잠들어 있다.

양화진 갈등은 100주년교회 탓?

2권 '양화진의 유산과 그 진실' 편은 이른바 '양화진 사태'를 보는 예장통합 측(일부 마포구교회협의회 소속 목회자 포함) 인사들의 시각을 정리해 수록했다. 이 책에서 예장통합 측은 양화진 문제는 100주년교회 때문에 발생했다고 말한다.

"2005년 100주년교회를 설립하기 이전에는 100주년협의회(구 100주년기념재단)와 유니온교회 간에 아무런 갈등이 없었고, 외국인들의 매장도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100주년교회가 들어오면서 양화진은 복잡한 분쟁의 자리가 되었다. 그리고 한국을 사랑하고 이 땅을 위해 헌신한 선교사들과 그 후예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p 251)

▲ 유진 벨 선교사의 증손자인 인요한 교수는 양화진을 특정 교회와 교단이 사유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인요한 교수는 출판기념회에서 100주년기념재단이 본래 뜻과 목적을 잃어버리면서 양화진에 문제가 발생했다고 했다. 인 교수는 "양화진에 할머니와 어머니가 묻혀 있는데 의리와 전통도 없는 교회가 들어앉아서, 저와 피터(형)가 참배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교회를 위해서는 양화진을 한 교회나 교단이 사유화하는 것보다 초교파적인 (연합) 교회가 책임져야 한다면서 행동으로 보여 달라고 주문했다. 원한석 대표는 내년 2월 15일이 원일한 선교사의 서거 10주년이라면서 편안 마음으로 예배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과 달리 양화진 참배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100주년교회는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양화진을 무료로 안내한다. 주말에도 안내 봉사자만 없을 뿐 자유롭게 방문해 참배할 수 있다.

지난 1986년 100주년기념재단은 유니온교회에 선교기념관을 예배 처소로 제공하고, 묘지 관리도 위임했다. 하지만 관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1965년과 2000년 두 차례에 걸쳐 매장에 대한 법 규정이 바뀌어 주택가에 위치한 양화진에는 신규 매장이 금지됐다. 하지만 유니온교회는 매장 예약을 받으면서 새 무덤을 조성했다. 1986년부터 2005년까지 42기의 무덤이 들어섰다. 100주년기념재단은 양화진 관리를 위해 2005년 7월 100주년교회(이재철 목사)를 설립했다. 이듬해 양화진과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의 재산 소유권을 제외한 모든 운영과 관리에 관한 권한 행사를 100주년교회에 위임했다. (관련 기사 : 양화진, '누가 진짜 사유화를 꾀하나')

100주년교회와 유니온교회의 관계는 초반부터 뻐걱거렸다. 선교기념관에서 시간을 달리해 예배를 해 오던 두 교회는, 예배 시간 변경을 놓고 갈등이 폭발했다. 두 교회의 마찰로 소란스러워지자 마포구청은 선교기념관은 묘지 관리를 위해서만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2007년 8월 17일에는 두 교회에 양화진에서 더 이상 예배할 수 없다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이후 두 교회는 선교기념관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예배를 진행해 오고 있다. 이를 두고 책에서는 "유니온교회가 선교기념관에서 쫓겨나는 사태에 이르렀다"(p 143)고 기술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 100주년기념교회는 지난 2006년부터 묘역 정비와 안내 활동을 시작하며, 양화진을 탈바꿈시켰다. 지난해에는 방문객들의 편의를 위해 길가의 낡은 보도블록은 철평석으로 교체하고, 좁은 길목은 현무암으로 깔았다. 미끄러질 위험이 있던 비탈길에 나무 계단을 설치했다. ⓒ뉴스앤조이 임안섭

법원, "양화진 소유권 100주년기념재단에 있어"

예장통합은 2008년 총회 역사위원회를 조직하고 양화진 논란 조사에 돌입했다. 특히 서울서노회는 2009년 4월 이재철 목사를 기소하고, 10월에 불법 면직을 강행하는 등 적극 개입했다. 면직 사유는 장로·권사 호칭제가 교회 질서와 영적 가치 체계를 무너뜨린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목사는 그해 6월말 이미 교단 탈퇴서를 제출한 상황이었다. (관련 기사 : 이재철 목사 "양화진 지키기 위해 교단 탈퇴")

갈등은 양화진 소유권 논쟁으로 번졌고, 이는 소송으로 이어졌다. 경성구미인회는 100주년기념재단을 상대로 양화진에 대한 소유권 이전등기 무효 소송을 2008년 12월에 제기했다. 경성구미인회 측은 양화진 증여는 총회 결의를 거치지 않았고, 부동산실명제법을 위반했다는 등 5가지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1, 2심 재판부는 이 5가지 주장 모두를 각하 또는 기각하며, 100주년기념재단 손을 들어 줬다. 경성구미인회 측은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대법원은 지난 2월 경성구미인회 측의 주장은 증거가 없거나 믿기 어렵다고 봤다. 특히 양화진이 은닉된 국유 재산이기 때문에 국가에 인도해야 한다는 경성구미인회 측의 주장에 대해서는 당사자적격이 없다며 각하했다. 양화진은 100주년기념재단 소유라고 사법부가 확정한 것이다.

법정 다툼은 100주년기념재단의 승리로 종결됐지만, 양화진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예장통합 김철모 양화진대책위원장은 "아직 구체적인 활동 계획은 없지만 3월에 기자회견을 열고 양화진 반환 운동을 이어 갈 것"이라고 했다. 

▲ 예장통합 양화진해결위한대책위원회가 펴낸 <내게 천 개의 목숨이 있다면> 1, 2권. 100주년기념재단 측은 1권은 개정판에 가깝지만, 상당한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백시열 100주년기념재단 국장은 "안장된 이가 선교사이든, 그의 가족이든 구별 없이 소개하고 있고, 여러 가족이 묻힌 경우에도 각각 따로 소개하고 있어 내용의 중복이 심하다"고 했다. 기념비만 있을 뿐 양화진에 안장되지 않은 이들을 아무런 설명 없이 소개하고 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예장통합 부총회장인 김철모 양화진대책위원장(사진 오른쪽)이 김동엽 총회장에게 도서를 헌정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내년 3월 기자회견을 열고, 양화진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12월 6일 열린 출판기념회에서는 양화진의 소유권을 되찾아야 와야 한다는 성토가 넘쳤지만, 책 집필에 나선 신학자들은 공동 연구에 의의를 두는 데 그쳤다. 사진은 책 집필에 참여한 관계자들의 모습. 사진 오른쪽부터 정용석 교수, 김준철 사관. ⓒ뉴스앤조이 이용필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