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강 예레미야> / 김근주 지음 / IVP 펴냄 / 304쪽 / 1만 4000원

일단 시 한 편 감상해 보시라.

우리들에게 응답하소서. 혀 짤린 하나님
우리 기도 들으소서. 귀 먹은 하나님
얼굴을 돌리시는 화상당한 하나님
그래도 내게는 하나뿐인 민중의 아버지
하나님 당신은 죽어 버렸나
어두운 골목에서 울고 있을까
쓰레기 더미에 묻혀 버렸나. 가엾은 하나님

고 김흥겸 전도사의 '혀 짤린 하나님'이란 노래 가사다. 이 노래 가사는 억압과 통제의 시대에 불린 민중 노래다. 보수적인 한국 기독교권에는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이러한 소위 불경스런 노래 혹은 시를 대부분의 한국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하나님을 혀 잘리고 귀먹고 화상당하셨다고 하지를 않나, 거기에 죽었다고까지? 이런 망령된 말을 함부로 해도 된단 말인가? 그의 피조물인 인간이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의 무미건조한 성경 읽기

우리의 신앙이 그렇다. 건조하다, 그것도 아주 많이. 성경 읽기가 딱딱한 주제별·교리 성경 공부가 되어 있다. 우리의 삶은 희로애락을 담고 있는데, 우리의 성경 읽기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무미건조하고 딱딱하게 굳어 버린 시멘트처럼, 콘크리트처럼 인식하게 만든다. 우리의 아픔과 슬픔, 울분과 탄식에 함께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저 관조하시는 하나님으로 이해하게 할 뿐이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장엄하고 위대하신 하나님께 불평과 불만을 토로하면 안 된다고 배웠고, 그렇게 가르친다. 어디 감히 하나님께 불평하고 그분을 도발한단 말인가? 이런 불경한 생각과 말들은 삼가야 하며 교회에서 드러내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성경 속 예언자와 인물들은 하나님의 간섭에 딴죽도 걸고, 득달같이 문제를 제기하는데 말이다. 대부분의 목회자나 성도들에게 위의 노래는 여전히 어색하고 불편하고 거룩하고 영광스런 하나님을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하는 성숙하지 못한 자들의 치기 어린 행동으로 보인다. 그러면 이번엔 저자의 말을 들어 보시라.

구약은 잘 짜인 교리 체계나 조직신학을 흔들어 놓는다. 교회가 전통으로 받은 교리 체계는 존중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교리는 언제나 성경 본문보다 아래에 위치해야 한다. 교리가 본문을 이끌 것이 아니라 본문이 교리를 이끌어야 하는 것이다(117쪽).

시멘트와 콘크리트를 허물라

정적이며 틀에 매이고 의식과 전통에 얽매인 우리의 신앙생활에 이 책은 딴죽을 건다. 매주 공예배와 교회 모임에 잘 참석하고 헌금 잘하는 것으로 신앙생활의 모범을 삼는 이들을 불편하게 한다. 저자는 "우리는 찬양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은 높이 기리면서 고아와 과부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86쪽)"고 탄식한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동일한 것임을 무시하고, 그저 이웃 사랑을 하나님 사랑에 부차적이고 선택적인 것으로 여기고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는 일을 부차적인 행위쯤으로 아는 것은 신앙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이다(85쪽). 하나님에 대한 엄밀한 교리와 지식을 강조한 나머지, 이웃의 아픔과 고통은 우선순위에서 맨 뒷자리로 밀려 결국 자신의 욕망과 번영을 위한 논리만이 앞자리를 차지하게 된 현실. 우리의 이런 무미건조하고 틀에 박힌 의식적 신앙생활과 성경 읽기를 저자는 파괴하고 무너뜨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미동이 전혀 없고 목마름, 갈증이 없는 우리네 편안한 종교 생활을 신앙의 본질이 아니라고 하니 말이다.

이러한 무미건조한 성경 읽기에 수분을 공급해야 한다. 그 수분은 하나님의 정의와 공평을 진정으로 신뢰하는 자들의 ‘눈물’일 것이다. 탄식과 절망의 내용을 담고 있는 예레미야의 많은 구절은 하나님께 대한 불평과 불만을 표출하고 의심하며 따진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공의가 무너진 세상, 악이 만연한 세상에 대한 응당한 의분을 성경은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지고 파괴된 세상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질문하고 의문을 품는 것은 성경의 인물들이 으레 행하는 일이다. 우리는 신정론(theodicy)에 함몰되어 교리로써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과 예언자들의 정념(pathos)을 제거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눈물과 울부짖음이 건조한 대지에 촉촉한 수분을 공급하기 때문이다.

대지 위에 새 언약을 심다

그러면 무너지고 파괴된 땅이지만, 또 한편 하나님의 정의와 공평을 갈망하는 예언자의 눈물을 머금은 촉촉한 대지에 무엇을 심어야 할까? 새로운 은혜, 새 언약을 심어야 한다. 이제는 하나님이 직접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이 땅에 은혜를 심겠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토라(율법)를 이젠 더 이상 돌판이 아닌, 우리의 마음 판에 새길 것이라는 새로운 언약을 하신다.

이 책은 예언자의 탄식과 고통의 울부짖음을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눈물’의 예언자 예레미야의 이야기를 이젠 우리의 눈물, 우리의 이야기로 삼을 것을 요구한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전복하고 파괴하며 무너뜨린 후, 우리를 고통스럽고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 다시 세워, 축축한 땅 위에서 온 몸에 덕지덕지 진흙을 묻히고 살아야 그것이 진정한 회개요, 새로운 언약 백성의 모습이라고 가르친다. 이웃의 고통에 응답하지 않으면서 종교적 제의에만 치중된 우리의 신앙생활을 거짓이라 말한다.

매우 불순하고 불온한 책이다. 이 책은 읽는 당신을 선동하고 다수의 종교인이 아니라, 소수의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야 한다고 지적을 해대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에서 머물지 않고 우리를 가난한 자와 진정한 친구가 되어 '빨갱이'로 살아가도록 하니 말이다(74쪽).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제목은 '특강'예레미야가 아니라 '빨강' 예레미야가 더 잘 어울린다.

강신만 / 대둔산 아래에 위치한 중학생 독서 교실 교사. 고등학교 교목. 남아공 프레토리아신학교 구약학(Ph.D.) 공부. 

이 글은 IVP 웹진 북뉴스에 실린 서평입니다. IVP 편집부 협의하에 가져온 글입니다. 홈페이지에 가면 더 많은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IVP 홈페이지 바로 가기).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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