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 총회를 개막하는 날, 총신대 신대원 학생과 교직원 900명 가까이가 부산 벡스코 근처에 있는 수영로교회 입구 계단에 모여 WCC 총회 반대 기도회를 열었다. 당시 현장을 취재한 기자는 참석자에게 수업을 대체한 기도회가 맞는지, 불참하면 결석 처리를 한다는 이야기가 사실인지 물었다. 그는 모두 사실이라고 대답했다. 기자는 그 자리에서 페이스북 <뉴스앤조이> 페이지를 통해 그 내용을 알렸다.

페이스북 글을 읽은 신학생들은 화가 났다. 10여 명이 현장에 있는 기자를 둘러싸서 글을 지우라고 요구했다. 자신들은 불이익이 두려워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원만한 대화가 어려울 정도로 화가 났고, 글을 삭제하지 않고는 그곳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수업을 대체한 것도 사실이고, 불참하면 결석으로 처리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기자는 사실을 보도했을 뿐인데 신학생들은 왜 그렇게도 성이 나서 기자를 위협했을까. 한국교회가 혼합주의에 감염될 것을 걱정해서 부산까지 기도하러 내려온 자신들의 진정성과 순수성이 평가절하되는 것이 억울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반응해야 할 정도로 억울했을까. 사실을 보도한 기자가 신학생들에게 둘러싸여서 위협을 느낄 정도의 적의를 드러내야 할 만큼 억울했을까. 이런 정도의 일로 억울했다면, 이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깊고 큰 억울함 때문에 이 땅 곳곳에서 꺼이꺼이 통곡하는 수많은 영혼들에 대해서는 어떤 마음일까. 신학생으로서 나의 이 작은 억울함도 이리 참기 힘든데 앞으로 목회자가 되면 저 엄청난 억울함을 짊어진 채 헐떡이며 살아가는 이들을 어떻게 품을 수 있을까.

▲ 총신대원생과 교수, 예장합동 목사들이 한전 앞에서 "총신대 주변 송전탑 건설을 중지하라"고 요구하는 장면. (뉴스앤조이 사진 자료)
▲ 경기도 양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인근에 설치된 고압 송전탑 모습. ⓒ마르투스 구권효

총신대 신대원이 있는 경기도 양지 캠퍼스 근처에서 벌어진 송전탑 건설 사업을 학생들이 목격한 것은 2008년 초다. 한전이 용인시에 송전탑 39기를 설치하는데, 그중 4기가 양지 캠퍼스 부근을 지나간다. 학교 구성원은 그때부터 "머리 위에 76만 5000V 암덩어리 키워 낸다"는 자극적인 표현으로 공포심을 드러냈다. 공사 현장과 한전 앞에서 1000여 명이 모이는 시위 기도회와 규탄 대회를 여러 번 열었고, 전국 교인들을 대상으로 서명운동을 벌였다. 하지만 2년 뒤인 2010년 2월에 송전탑은 완공되었다.

약 1700명의 신대원 학생들은 2년 동안 일주일에 나흘 양지 캠퍼스를 오간다. '머리 위에 암덩어리를 키워낸다’고 표현했지만, 학교를 관통하는 것도 아니고 주변을 지나간다. 전자파가 건강을 우려할 만한 정도는 아니라는 전문가의 진단 결론이 나왔다. 그나마 졸업하면 그만이다. 그래도 송전탑을 이전해야 한다는 소리가 지금도 간간이 흘러나온다.

경남 밀양에도 76만 5000V 초고압선 송전탑이 건설되고 있다. 초고압선 송전탑이라는 점만 똑같을 뿐 둘은 여러 면에서 다르다. 양지가 말 그대로 '볕이 드러난 곳'(陽地)이라면, 밀양은 말 그대로 '볕이 숨은 곳'(密陽)이다. 양지가 학습권의 침해를 받는다면, 밀양은 생존권이 걸린 문제다. 마을 주변이 아니라 평생 일구며 살았던 밭 한가운데에 말뚝 박은 송전탑이 치솟고 매일 먹고 자는 자기 집 위로 고압선이 지나간다.

총신대 신대원 학생들이 아무리 억울하다 한들 밀양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그것에 비할 수 있을까. 덜 억울하니 입 다물고 있으라는 말이 아니다. 송전탑 건설 반대 기도회에 참여하고 공사를 몸으로 막으려 했던 수많은 신학생 중에 밀양에 내려가서, 억울함을 못 이겨 쇠사슬을 목에 매고 땅을 파서 무덤을 만들어 그 안에 몸을 구겨 넣는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이심전심을 나누어 본 이가 몇 명이나 될까.

2009년 7월, 쏟아져 내리는 폭우도 아랑곳없이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차도 1개를 점거해서 땅바닥에 드러누운 300명의 목사들이 있었다. 이들이 내건 구호는 "원주민 쫓아내는 개발 악법 철폐하라"였다.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서 거리로 내몰린 철거민들과 연대하고 돕기 위해 목회자들이 거리에 나선 것이 아니다. 상가 건물에 임대해 있던 자기 교회가 재개발로 인해 제대로 보상도 못 받고 쫓겨날 지경이 되자 집단 시위를 벌인 것이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목사들이 비 오는 서울 시내 한가운데에서 도로에 누워 버렸을까.

그보다 6개월 전인 2009년 1월, 용산에서는 재개발로 인해 쫓겨날 위기에 처한 철거민들이 반대 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화재가 일어났고 6명이 죽는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 목사들이 예배당을 빼앗기는 것과 철거민들이 집을 빼앗기는 것, 어느 쪽의 타격이 큰지 따지는 것은 무익하다. 다만 뜨거운 한여름에 아스팔트 위에 드러누울 만큼 억울했던 목사들은, 유난히도 매서웠던 그해 한파 속에서 철거 반대 투쟁을 하면서 꽁꽁 얼어붙은 이들의 마음을 녹여 줄 따뜻한 손길을 내민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내가 아파 보니까 남의 상처가 더 크고 깊어 보이는 법이다. 동병상련은 인지상정이다. 하물며 목회자라면 어떠해야 할까. 헨리 나우웬의 말처럼, 목회자는 '상처 입은 치유자'여야 한다. 예수님도 그러하셨다. 자기의 억울함을 못 이겨 성을 내고 폭력을 휘두르고 거리에 드러누울 열정과 용기가 있다면, 그 에너지를 이 땅에 널린 수많은 억울한 이들의 치유자로 거듭나는 데 쏟아부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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