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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가 개신교 발전시켜 추모하나?

정권 유지 목적으로 종교 이용…한국교회 성장 욕구와 결탁

구권효 기자   기사승인 2013.11.04  20: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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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니 어쩌니 그런 얘기를 많이 하는데, 한국은 독재를 해야 돼. 하나님이 독재하셨어. 무조건 하나님께 순종하라고 하셨어요."

지난 10월 25일, 박정희 대통령을 추모하는 예배에서는 박 전 대통령을 찬양하고 독재까지도 미화하는 발언이 나왔다.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일부 정치 목사들이 박근혜 정부에 아첨하려 한다며 비난을 쏟아 냈다. 하지만 주최 측은 박 전 대통령이 기독교(개신교) 발전에 공헌한 새로운 역사적 사실들이 밝혀져, 그의 신앙을 재조명하고자 추모 예배를 마련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최 측은 박 전 대통령의 '친개신교적' 행동을 강조했다. △국가 조찬 기도회 창립 △'신앙전력화(信仰戰力化)' 친필 휘호를 부대마다 하달해 군 복음화에 공헌 △한국대학생선교회(CCC)에 부지 제공 △"가난한 자를 부하게 눈 먼 자를 보게…"라는 성경 구절을 새마을운동에 접목 △구미상모교회 건축비 지원 △어릴 적 구미상모교회에서의 신앙생활 등을 이유로 박 전 대통령이 한국교회 발전에 기여했다고 밝혔다. 열거된 행동들이 틀린 사실은 아니지만, 과연 박 전 대통령의 목적이 한국교회 발전에 있었을까.

   
▲ 10월 25일 서울나들목교회에서 박정희 대통령 추모 예배가 열렸다. 행사에서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찬사와 함께 독재를 미화하는 발언까지 쏟아졌다. ⓒ뉴스앤조이 이규혁

천주교·불교·천도교·동학·단군 신앙도 지원…'국가 안보에 성역은 없다'

박 전 대통령이 어릴 적 교회를 다니고 재임 시 개신교를 지원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개신교뿐 아니라 불교와 천주교, 천도교, 동학, 단군 신앙 등 다른 종교에도 수차례 지원한 전력이 있다. 무속 신앙은 새마을운동으로 몰아내려는 한편, 5·16 군사 쿠데타 성공 여부와 '10월 유신' 날짜는 점쟁이와 상의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박 전 대통령은 다양한 종교의 사업과 건축 등에 자금을 댔으며, 그 사상에도 호감을 드러냈다.

박 전 대통령이 개신교만 특별 대우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국가 행사에서 개신교색을 줄였다는 점에서도 엿볼 수 있다. 개신교 신자였던 이승만 전 대통령과 천주교 신자였던 장면 전 국무총리가 국가 행사를 기독교적인 의식으로 치러 온 것과 달리, 5·16 군사쿠데타 이후 국가 행사는 유교와 불교식으로 진행됐다. 몇 년 후 국가 의식은 개신교·불교·천주교 3대 종교 의식이 혼합된 형태로 굳어졌다.

박 정권은 오히려 법률이나 조세제도 등으로 종교를 통제하려고 했다. 박 정권은 종교 단체가 소유한 모든 재산을 문화공보부(문공부)에 등록하도록 했는데, 문공부의 승인 없이는 매매·기부·양도·증축 등을 할 수 없었다. 박 정권하에서는 종교보다 국가 자체를 강조하는 의식이 많아졌다.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 국기 하강식, 국민교육헌장 등을 만들어 국기와 국가를 성화(聖化)했다. 또 '국가 안보에 성역은 없다'며 종교 모임이나 지도자들을 꾸준히 감시하기도 했다.

박정희 정권과 개신교의 은밀한 '거래'

모호한 것 같은 박정희 정권의 종교에 대한 태도는 이익의 관점으로 볼 때 선명해진다. 강인철 교수(한신대)는 <저항과 투항>(한신대 출판부)에서 "(박 정권은) 군사 쿠데타로 인한 정권 출범과 민중 배제적인 정치·경제 운용으로 낮은 정치적 정당성을 보완하기 위해, 신자가 많고 사회적 공신력이 높은 불교·개신교·천주교와의 협력 기조를 유지했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은 정권을 지지하며 신도들에게 반공·친미 사상을 주입하는 종교인들에게 혜택을 보장했다.

일부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적극적으로 박 정권의 '당근'을 선택했다. 대표적인 예가 CCC를 창립한 고 김준곤 목사다. 박 전 대통령은 1968년 서울 정동 옛 러시아 대사관 부지 일부를 CCC에 제공했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많은 빈민들이 그 부지에 판잣집을 짓고 살았는데 1967년 어느 날 경찰 부대가 경고도 없이 거주자들을 트럭에 태워 시골로 쫓아 버렸다. 이후 CCC가 땅 주인이 되어 센터를 지었다.

김준곤 목사는 1966년 국가 조찬 기도회의 전신인 대통령 조찬 기도회를 만들어 박 정권을 축복하고 옹호했다. 김 목사는 1969년 대통령 조찬 기도회에서 박 전 대통령의 5·16 군사 쿠데타를 '군사혁명'으로 찬양하고, 1973년 기도회에서는 유신헌법을 '정신 혁명'으로 미화했다. 김준곤 목사를 비롯해 김윤찬·김장환 목사 등 보수 개신교계 지도자들은 유신을 적극 지지하며, 박 정권을 반대하는 개신교인들을 비판했다.

박정희 정권의 비호 아래 개신교는 폭발적으로 팽창했다. 개신교 신도 수가 급증한 것에는 초대형 집회가 한몫했다. 유신 시절에도 대규모 집회는 항상 여의도광장에서 이뤄졌으며, 주제는 '반공 사상'과 기독교 사상이 섞인 형태였다. 대표적인 집회로는 1965년 김활란 박사가 주도한 전국 복음화 운동, 73년 빌리 그래함 내한 전도 대회, 74년 김준곤 목사가 주도한 엑스플로74, 77년 신현균 목사가 주관한 민족 복음화 대성회가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집회는 성황리에 열렸다. 빌리 그래함 전도 대회가 성사되자 박 전 대통령은 대회를 위해 금일봉을 제공하고, 청와대를 방문한 빌리 그래함 목사와 환담을 나누기도 했다. 집회에는 100만 명 이상이 참석했다. 엑스플로74 기간 중에는 육영수 여사가 피살되는 사건이 있었지만, 집회는 성공적이었다. 개회 시 136만 명이 몰렸고 연인원 655만 명이 다녀갔다.

박 전 대통령의 '신앙전력화 친필 휘호', '전군신자화(全軍信者化) 운동' 등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1969년 전개된 전군신자화 운동은 군인들에게 반공 사상을 확장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이 운동으로 '부대 합동 세례식'이 생겼는데, 1971년~1974년 1000명 이상이 세례를 받는 경우가 26회나 되었고, 3473명이 한 번에 세례를 받는 일도 있었다.

당시 한국에서 활동하던 미국인 선교사 진 매튜스는 이렇게 회상했다.

"교회가 성장하고 번성해 가면서 더 크고 웅장한 교회 건물, 사무실과 기관들을 짓기를 갈망했다. 정부를 비판하지 않아야 재산 관련 개발에 대한 승인이 가능할 뿐 아니라, 공개적으로 정부에 적극적인 지지를 표하면 눈에 띌 정도로 재산 증식이 빨라지기도 한다는 것을 교회는 재빨리 알아차렸다."

   
▲ 추모 예배 주최 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개신교적 성향을 강조했다. 이들은 박 전 대통령이 개신교 발전에 공헌했다고 주장했다. ⓒ뉴스앤조이 임안섭

정권에 반대하면 가차 없이 탄압

박정희 정부가 정권 유지를 목적으로 개신교를 대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근거는, 박 정권하에 자행된 수많은 개신교 탄압이다. 박 전 대통령은 정권에 반발하는 수많은 개신교 인사들에게 가차 없이 '채찍'을 들었다. 민주화 운동이나 인권 운동에 가담 또는 지원하는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감시·체포·구속·고문했다.

1972년 유신헌법이 통과돼 사실상 박 전 대통령의 영구 집권이 가능하게 되자, 민주국가를 원하는 목소리가 거세졌다. 한국기독교장로회·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도시산업선교회·한국교회여성연합·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등의 일부 인사들이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 이들은 성명과 목요 기도회 등을 통해 유신과 긴급조치 철폐를 주장하고, 중앙정보부가 조작한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을 규탄하는 등 박 정권에 정면으로 반발했다.

이 과정에서 개신교 지도자 수십 명이 체포되고 고문을 당했다. 김재준·문익환·문동환·박형규·안병무·이우정·함석헌 등이 긴급조치 위반으로 체포되거나 국가 내란 예비 음모죄로 구속돼 옥고를 치렀다. 헌법 개정 청원 운동을 벌이던 장준하 선생은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월요 모임을 만들어 민주 세력을 지원하고 박 정권의 독재를 해외에 알리는 역할을 감당했던 선교사들은 박 정권에 의해 강제 추방당하기도 했다.

형 문익환 목사와 함께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문동환 목사는, 박정희 정권이 힘을 가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박 정권의 독재로 민주주의가 쇠퇴하고 인권이 짓밟히는 상황에서도, 많은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박 전 대통령을 축복해 주면서 특혜를 누렸다고 말했다. 문 목사는 "지금도 그때와 다를 것 없다. 기독교를 완전히 오도한 사람들이 계속해서 정권에 아부하며 자기 이익을 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종호 대표(꽃자리 출판사)는 박 정권의 종교 정책과 물질적인 성장을 갈망하는 한국교회의 이해관계가 들어맞은 것이라고 평했다. 이런 관점에서 박 전 대통령 추모 예배 또한, 부와 권력을 쥐고 싶어 하는 인사들이 실세와 줄을 대려는 시도라고 봤다.

* 참고 문헌

<저항과 투항>(강인철, 한신대학교 출판부, 2013)
<기독교, 한국에 살다>(강현선 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2013)
<나와 김준곤 목사 그리고 C.C.C.>(김준곤 목사 제자들 엮음, 순출판사, 2005)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서중석, 웅진 지식하우스, 2005)
<시대를 지킨 양심>(짐 스텐츨,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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