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강 예레미야> / 김근주 지음 / IVP 펴냄 / 304쪽 / 1만 4000원

예레미야는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고 건설하고 심게 하는" 열방의 감독자로 부르심을 받았다(1:10).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듯이, 하나님은 이제 예레미야에게 말씀을 주사 새로운 창조를 시작하신다. 이 새로운 창조는 기존 제도의 파괴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파괴가 없는 건축은 단순한 보완이며 허무한 수명의 연장에 불과하다. 말씀 가운데 멸망이라고 하는 강한 징계를 말하지 않는 위로는 참위로가 되지 못한다.

그러한 점에서 저자와 함께하는 예레미야서 공부는 이 메시지가, 그것을 듣는 사람들에게도 괴로울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전하는 자로서도, "예언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 처참하고 너무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해 준다(16쪽).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을 지탱하던 다윗 언약과 하나님의 집인 성전이라는 이스라엘 '신학'의 두 기둥을 허무는 일에 최선을 다한 예언자였다. 새로 임명받은 건축가 예레미야가 바라본 이스라엘이라는 건물의 두 기둥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으로, 이스라엘 거주민들이 들어가 살 수가 없어 보였다.

예레미야는 그 기둥을 뿌리째 뽑아 건물 자체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새롭게 건축을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그의 제안에는 매우 막강한 브레이크가 걸리고 말았다. 안쪽의 브레이크는 정치 지도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이 걸고 있었다. 또한 문제는 밖에서 거대한 제국들이 보낸 일련의 폭풍이 몰려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진퇴양난의 위기에 예레미야는 어떤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가?

그도 사실은 완전한 파괴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수리' 우선주의자였다. 그는 초기에(그리고 이후로도 종종) 기둥의 수리(회개)를 외쳤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먹혀들지 않았거나, 일단 먹혀들었으나 나중에 거절되었던 것 같다. 그러한 과정 가운데서 그는 자신이 거하는 '영적인' 건축물과 그 거주민들을 사랑하는 '눈물과 고통'을 토로할 수밖에 없었던 건축가였다. 그는 이스라엘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처지로 말미암아 많은 눈물을 흘렸다. 어느 땐가는 공적인 예언자가 아니라, 좌절로 인한, 개인의 고통스러운 심정을 고백하고 토로하는 모노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나타나기도 한다.

앞서 말한 두 가지 기둥은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일종의 뻔뻔한 방패막이다. 다른 말로 하면 예루살렘의 불가침성이다. 첫째로는 다윗의 언약으로 인한 불가침성이다. 하나님이 다윗을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세우셨으니, 이스라엘에는 다윗 계열의 통치자가 끊이질 않을 것이며, 그러한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은 그 누구에게서도 파괴될 수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하나님의 성전의 존재로 인한 불가침성이다. 이에 대한 예언자의 태도는 두 차례에 걸쳐 행해진 성전 설교를 통해 잘 나타난다. 예레미야는 그러한 잘못된 생각들을 여지없이 공격하여 허물고 있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다윗과 성전을 하나의 훌륭한 볼모로 삼아, 자신들의 불의함과 불신앙을 변호하고 있었다. 이러한 태도는 이사야를 비롯한 다른 예언서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이스라엘의 오만과 착각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파괴 후에 건축하는 열방의 감독자를 보내신 것이다. 그는 영적인 자만과 착각을 허물고 속히 하나님께로 돌아가도록 외쳤을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일이 이루어지지 못한 상황이라도, 하나님은 허무시고 다시 세우실 것을 꾸준히 전하여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를 잘 완수할 수 있었다.

서평자 나름의 관점에서 본서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특징을 살펴보기로 하자. 첫 번째 특징은 본서가 예레미야서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수월하게 돕고 있다는 것이다. 엄격한 의미에서 주해서나 주석적 측면이 강조되었다기보다는 일반 독자들에게 예레미야서를 전체적으로 잘 이해하기 쉽도록 서술한 면이 돋보인다. 저자는 이것을 통하여 독자들이 예레미야의 심정을 이해하게 하고 당시의 청중과 같은 실수와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산 증거를 얻게 한다. 또한 매 장마다 토론 문제를 두어 각 장의 특징과 중요사항들을 요약하고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두 번째 특징은, 앞서 말한 책의 평이함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갖고 있는 전문성(구약 히브리 본문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의 전문가)이 군데군데 잘 드러난다는 점이다. 구약 본문들 가운데서 헬라어 번역본에 대한 심오한 지식이 있어야 성경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본문이 바로 예레미야서다. 다시 말하자면, 히브리 본문이 필사되고 전승(傳承)되어 가는 과정에 다양한 필사자의 신학이나 독자층의 경향을 반영하는 증거들이 발견되는 본문이 바로 예레미야서 본문이라는 것이다.

다른 구약 본문들의 경우에는 그리 크게 나타나지는 않지만, 예레미야서의 경우에는 양이나 배열이나 표현에서 그 차이가 크게 나타난다. 이것은 아마도 포로민들이나 그 이후 사람들 가운데 이집트적 경향성(칠십인역)이나 바벨론적 경향성(맛소라 사본의 저본)을 반영하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특징은 좀 아쉬운 부분이다. 저자는 앞부분에서 예레미야서의 독서에 있어서 "최소한 세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22쪽). 저자가 말하는 세 번째 맥락이란 예레미야서를 읽은 우리의 맥락인 것이다. 이것과 관련하여, 몇몇 부분에서 우리의 맥락으로서의 독서 형태가 나타나긴 하지만, 오히려 서평자가 볼 때, 더 많은 부분에서 좀 더 체계적으로 그러한 맥락에 따른 독서 방법이 제시되었다면, 이 '특강'의 가치가 더 빛을 발휘했으리라 생각한다.

참고적으로, 본서 이외에, 설교적 측면에서 예레미야서를 더 공부하고 싶은 독자에게는 유진 피터슨의 <주와 함께 달려가리>(서울: IVP, 2003), 본문에 대한 구조 분석에 관해서는 장성길, <이스라엘의 구원과 회복의 드라마>(서울: 이레서원, 2007), 주석적 연구에 대해서는 존 브라이트(한국신학연구소)나 J. A. 톰슨(NICOT, 크리스챤서적)이나 박동현 교수의 주해(석)서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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