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군기지 건설 반대 시위를 하다 수감된 사람들. (사진 제공 임왕성)

지난 10월 10일, 복음주의권의 몇몇 목회자 및 활동가들과 함께 송강호 박사 면회와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와 구속자 석방을 위한 평화 예배'를 위해 강정마을에 다녀왔다.

제주로 떠나기 전 마을로부터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강정마을의 분위기는 상당히 가라앉아 있는 상태였다. 이틀 전에 있었던 72세 고령의 마을 주민 강부언 어르신과 22세의 여성 평화 활동가 김 군(가명)의 법정 구속 소식에 따른 여파이기도 했다. 강정마을 주민인 강부언 어르신은 72세의 고령으로 해군기지가 건설되기 전까지 마을에서는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을 만큼 조용하게 살아가셨다. 하지만 해군기지가 건설되기 시작하고 평생의 추억과 기억이 담긴 구럼비 바위가 발파되는 것을 보고 나서는 해군기지 반대 투쟁에 적극 나서게 되었다.

어르신은 구럼비 바위가 깨지는 것을 보면서부터 복용한 우울증 약을 비롯하여 4가지의 약을 복용할 정도로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으며, 8년 전에는 할머니가 뇌경색으로 쓰러지면서 거동이 불편하게 되어 손수 할머니를 돌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72세 고령의 마을 주민을 검찰과 해군은 계속해서 법정에 세우더니 급기야 법정 구속까지 시키고 만 것이다.

한편 22세의 김군은 남들 다가는 평범한 대학 진학보다는 인도 자원봉사를 선택했던 평화를 사랑하는 청년이다. 그녀는 인도 자원봉사 이후 제주를 여행하던 중 구럼비가 발파되던 강정의 현장을 목도하고서는 강정에 머물며 평화 활동을 해 오던 중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경찰의 진압 도중 발길질을 하여 여경의 다리에 골절상을 입혔다는 혐의로 기소되어 결국 징역 8월의 법정 구속되고 말았다. 하지만 혐의 내용 또한 모두 경찰의 진술만 있을 뿐 그 어떤 증거 자료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의 선고는 가혹하기만 했다.

▲ 제주교도소 앞에서 시위 중인 문정현 신부. (사진 제공 임왕성)

송강호 박사 면회를 위해 제주교도소 앞에 도착했을 때, 낯익은 얼굴이 교도소 앞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강정의 할아버지 문정현 신부였다. 문 신부는 이틀 전 법정 구속된 강부언 어르신과 김군을 면회하고 나온 직후라고 하셨다. 그런데 김 군의 눈물을 보고서는 도저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모두 돌려보내고 홀로 교도소 앞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문 신부는 함께 간 목회자들과 활동가들에게 강정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권력의 무차별적 폭력과 인권 탄압에 대해 한동안 이야기하시며 강정마을에 관심을 가져 달라 간곡하게 부탁하셨다. 마을로 함께 들어가자고 설득했으나 신부님은 눈물 흘리고 있는 김 군과 강부언 어르신을 두고 갈 수는 없다며 기어이 혼자 남으시겠다고 했다. 문 신부는 그 시간 이후로 제주교도소 앞에 천막을 치고 노숙 시위를 시작하셨다.

하루 5명으로 제한된 면회인 수로 인해 일부 목회자들(강경민, 이문식, 김형국, 구교형)과 함께 송강호 박사 면회를 들어갔다. 우리보다 먼저 면회실에 나와 해맑은 미소로 기다리고 있던 송강호 박사는 다행히 건강해 보였다. 예상치 못했던 복음주의권 동역자들의 방문에 적잖이 반가워했다. 송 박사는 3번째 구속된 자신을 보면서 좀 더 신중하게 행동하지 못한 것에 대해 반성하고 있다고 했다. 국가와 경찰이 만들어 놓은 여러 함정들이 있는데, 신중하게 대처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반성 중이라고 했다.

더불어 노무현 정부 시기에 세계 평화의 섬이 되고자 했던 제주가 해군기지 건설로 인해 세계의 화약고가 될 위험에 처해 있다고 한탄하시며, 제주가 다시금 평화의 섬과 보고가 될 수 있도록 교회와 목회자들이 힘을 써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이를 위해 한국교회가 순번을 정해 일 년에 한 번씩이라도 강정에서 주일에 예배를 드려 줄 것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함께 면회했던 목사들은 좋은 제안이라 응답하며, 안에 있는 동안 건강에 유의할 것을 당부하고 강경민 목사의 기도로 송 박사를 격려한 뒤 12분의 짧은 면회 시간을 마치고 나왔다.

▲ 해군기지 공사 현장. (사진 제공 임왕성)

송강호 박사와 박도현 수사(예수회)는 지난 7월 1일 해군기지 건설 현장에서 오탁수방지막의 훼손에 따른 해양 오염에 대해 항의하던 중 해경에 의해 업무 방해로 연행된 이후 도주의 우려 등을 들어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그런 가운데 10월 15일 민주당 장하나 의원실의 보도 자료에 따르면 제주해군기지 건설 현장 주변에 서식하던 멸종 위기종 연산호가 최근 1년여간 괴사하거나 생장을 멈춘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러한 사태를 초래한 요인 중 하나는 오탁수방지막 훼손에 따른 토사 유출로 나타났다.

송 박사 면회 후 양윤모, 송강호, 박도현, 강부언, 김 군 등과 함께 문정현 신부를 제주교도소에 남겨 둔 채, 2시에 드릴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와 구속자 석방을 위한 평화 예배'를 위해 강정마을로 들어갔다. 약 5개월여 만에 다시 찾은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공사(민군복합형 관광미항) 현장의 분위기는 침울하다 못해 음산하기까지 했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대규모의 경찰 병력의 엄호하에 공사 현장으로 들어가려는 공사 차량을 한 명의 평화 활동가가 몸으로 막는 과정에서의 실랑이었다.

▲ 기도회 시작 전 기도회 장소를 두고 경찰과 실랑이가 있었다. 경찰은 공사장 정문에서의 기도회를 불허하며 공사 차량 진입에 지장을 주지 않는 곳으로 기도회 참가자들을 이동시켰다. (사진 제공 임왕성)

언론과 여론의 무관심 속에서도 강정은 그렇게 그 모습으로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고, 여전히 싸우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하고 나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평상시에는 쉽게 볼 수 없는 경찰 호송차(현행범 체포 후 호송)까지 대기하고 있었고, 경찰 병력은 어림잡아 150여 명은 족히 넘어 보였다. 경찰은 공사 현장 앞에서의 기도회는 불가하다며 처음부터 기도회 참가자들을 공사장 정문 한쪽으로 고착시켰다. 여러 차례 강정에 다녀왔고, 현장에서 이런저런 기도회를 진행했었으나 이번처럼 경찰이 고압적인 태도로 나오는 것은 처음이었다.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으나 기도회는 시작되었고, 길가는 밴드 장현호 형제의 특송과 함께 조정래 사모(송강호 박사 아내)의 현장 증언이 있었다. 조정래 사모는 이틀 전에 있었던 두 사람의 법정 구속을 언급하며 경찰과 법원의 가혹한 탄압에 항의하고, 송강호 박사가 해양경찰 관할 부서인 국회 해양수산위의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 길가는 밴드 장현호 형제가 특송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임왕성)

한편 그간의 마을 상황과 이후의 계획에 대해 증언해 주기로 했던 강정마을 대책위 고권일 위원장이 강부언, 김 군 구속 건으로 갑작스럽게 자리를 비운 관계로 입지 선정 과정에서부터 현재까지 마을 주민들이 겪었던 여러 고통과 부당함에 대해 임왕성 총무(새벽이슬)를 통해 전해 들었다. 강경민 목사(일산은혜교회)는 설교를 통해 압살롬의 반역에 동참했던 자들이 그 일이 과연 무슨 일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참여했던 바와 같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제주 해군기지 공사가 향후 10년 후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에 대해 과연 알고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강 목사는 이어서 평화를 지키고자 한다는 이 공사가 결국은 우리의 평화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애물단지가 될 것인데, 마을 주민들과 여러 평화 활동가들의 요구를 힘으로 탄압하지만 말고 지금이라도 귀 기울여 들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구속된 이들을 비롯해 이 공사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이들 가운데 하나님의 위로와 평화를 전하며, 낙심하지 말고 부디 끝까지 힘을 내시라 격려하며 말씀을 마쳤다.

▲ 송강호 박사의 아내인 조정래 사모가 현장 증언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임왕성)

김형국 목사의 인도로 이어진 기도회에서는 비록 몇 명이 되지 않는 참가자였지만 모두가 일어나 마치 여리고 성을 돌 듯 공사장 앞을 일곱 바퀴 돌면서 일곱 가지의 기도 제목을 가지고 기도했다. 마을 주민들을 위해, 구속자들을 위해, 공사 관계자들을 위해, 깨어진 피조 세계를 위해, 평화의 왕이신 주의 다시 오심을 위해, 한가지의 기도 제목을 가지고 한 바퀴씩 돌며 일곱 번 기도를 진행했다. 기도회가 끝나고 참석했던 목회자들과 활동가들은 강정 포구로 이동하여 현재까지 약 40% 가량 진척된 공사 현장의 상황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제주에서도 제일 아름다워 제주일강정이라 불렸던 마을이 군사기지로 변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탄식했다.

한편 오후 5시에는 2012년 제주 해군기지 사업단 앞 개신교 기도회 건으로 기소되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던 구교형 목사, 오세열 목사, 박종훈 활동가의 검찰 항소 건의 재판이 예정되어 있어 제주법원으로 이동하여 재판을 참관하였다. 1심에서 재판부는 검찰에서 기소한 내용 즉 업무 방해에 해당되는 피의자들을 경찰이 고착시키는 과정에서 피의자들이 경찰을 폭행했다는 기소에 대해, 사건이 있었던 기도회 당시 경찰은 이례적으로 경고 방송도 하지 않은 채 기도회 시작과 함께 기도회 비품들과 참가자들을 고착시키기 시작했으며 그 과정에서 피의자들이 고의로 경찰을 폭행했다 할 수 없으므로 무죄를 선언하였다.

▲ 참석자들은 해군기지 건설 현장을 일곱 바퀴 돌며 일곱 가지 기도를 했다. (사진 제공 임왕성)

하지만 검찰이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고, 이날 열린 2심 재판에서는 기소와 항소 내용에 대해 확인하고, 피의자들과 변호인의 반대 의견을 듣는 것으로 간단하게 마무리되었고 선고는 10월 말에 하기로 했다. 강정 관련 재판은 늘 이런 식이다. 검찰의 무리한 기소, 지루한 재판, 엉뚱하고 가혹한 판결 내지는 검찰의 항소의 악순환 속에서 한없이 아름답고 평온했던 강정마을은 현재 구속자 5명, 연행자 600여 명, 벌금 약 6억 원의 황폐한 곳이 되어 버렸다.

이 재판 이후에 다음 재판을 받기 위해 무리지어 들어가는 강정 주민과 활동가들을 뒤로 하고 제주를 빠져 나왔다. 그리고 10월 14일부터는 강정에서 매일 두 차례 드려지는 가톨릭 미사마저도 경찰에서 전면 통제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나마 억울한 강정 주민들의 친구와 위로자가 되어 마을을 지키고 있는 미사마저도 이제는 불허할 모양인가 보다. 무엇이 두려워서, 무엇을 감추고 싶어서 이다지도 가혹하게 탄압만 하려 드는지 모르겠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짓는다는 해군기지 건설 사업. 하지만 정의와 함께 가지 못하는 평화는 더 이상 평화가 아니다. 더군다나 약자들의 억울한 탄식 위에 지어지는 평화란 모순 그 자체이다.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곧 길이다.

▲ 기도회가 끝나고 40%가량 진척된 공사 현장을 둘러보았다. (사진 제공 임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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