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진영 씨. SBS '힐링캠프'에 이어 MBC '라디오 스타'에서도 자신의 구도 여정을 소개했다. (MBC 홈페이지 다시보기 황금어장-라디오스타 343회 갈무리)

MBC '라디오 스타'에 나온 박진영

사람들은 하나님 얘기를 싫어한다. '질렸다'는 표정을 보이거나, '아직도 그런 걸 믿느냐'며 무시하거나, '너나 잘하세요'하며 피한다. 이성은 하나님 자리에 인간의 현실을 세웠다. 도킨스, 해리스를 비롯한 무신론자들은 '신은 없다. 신경 쓰지 마라'고 외치며 하나님을 지워 버리려 한다. '만들어진 신'이나 '종교의 종말'을 읽지 않은 사람들도 이런 책이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하나님을 무시하기에 충분하다고 믿는다. 대학, 취업, 전세, 생계유지, 노후 문제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다. 하나님 믿는 사람이 더 잘 사는 것도 아니고, 본받을 만하지도 않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가수 박진영이 '라디오 스타'에 나와서 '왜 사는지', '죽음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과정을 이야기하자 기독교인들이 환영했다. 하나님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만한 증인으로 그를 세우려는 사람도 있고, 전도 집회 강사로 만들려는 사람도 있다. 삶과 죽음을 두고 고민하는 사람, 돈이 아닌 가치로 고민하는 사람,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사라지는 세상에 박진영처럼 유명한 사람이 이런 고백을 하니 멋지다고 반응한다.

'라디오 스타'는 연예 프로그램이다. 기독교인들이 환영할 만한 내용을 다루지 않는다. 기독교인들이 유독 박수를 보낸 까닭은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를 박진영이 고민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꺼내면 "또 교회 나오라는 소리냐?"로 들릴 이야기를 박진영은 "그 사람 생각 있네. 그거 정말 생각해 볼 문제네"라고 들리게 한다. 우리가 성급하게 결론부터 말하며 강요하듯 접근한 문제를 진솔한 고백으로 들려준다.

박진영의 고민, 이병철의 고민

▲ 고 이병철 삼성 그룹 회장. (네이버 인물 정보 페이지 갈무리)

사람들은 누구나 영혼의 문제, 신의 존재, 선과 악, 삶과 죽음을 두고 고민한다. 이야기할 상대가 없거나, 분위기를 만들지 못하거나, 바쁘다는 이유로 제대로 꺼내지 않지만 누구나 박진영처럼 고민한다. 삼성 그룹을 창건한 이병철 회장도 이런 고민을 안고 살았던 것 같다. 1987년 죽기 직전 천주교 정의채 신부에게 네 쪽짜리 질문지를 보낸다. 쪽지에는 이병철 회장이 궁금하게 여긴 24가지 질문이 적혀 있었다. 철학자들이 수천 년 답을 찾으려고 고민한 내용이다. '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신이 우주 만물의 창조주라는데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나?', … '신이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나?', '신앙이 없어도 부귀를 누리고, 악인 중에도 부귀와 안락을 누리는 사람이 많은데 신의 교훈은 무엇인가?' … '지구의 종말은 오는가?'

<백만장자의 마지막 질문>은 철학자 김용규가 24가지 질문에 답하는 내용을 담았다. 김용규는 기독교 철학자이다. 이 책은 기독교인의 변증이지만 우선 철학자의 변증이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며 신은 당연히 있고, 예수님이 고통과 죽음을 이겼으며, 악인은 영원한 형벌을 받고, 종말이 오는 날 하나님 안 믿은 사람은 모두 지옥 간다'고 외치지 않는다. 이건 변증이 아니다. 이런 식의 대답은 이병철 회장도 이미 들었을 것이다. 만족했을 리도 없다.

철학자 김용규의 대답 - 오류 분석

저자는 철학자답게 증거를 들어 합리적으로 대답한다. 도킨스를 비롯한 무신론자들이 쓴 책을 꼼꼼하게 반박한다. 무신론자들 역시 합당한 증거가 아니라 자기들만의 믿음, 불완전한 논리로 주장한다는 걸 증명한다. 대표적인 예가 허수아비 논증의 오류이다. <눈 먼 시계공>에서 도킨스가 공격한 시계공 이론은 이신론자들의 논리다. 성경에 없는 내용이고 기독교계에서 인정하는 내용이 아니다. 기독교 교리와 과학을 상식적 수준으로 이해하고는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진짜 기독교인 양 공격해서 무너뜨린 뒤에, 기독교 전체를 논박한 것처럼 말한다. 종교를 선택적 관찰의 오류라고 공격하는 그들이 도리어 같은 함정에 빠져 있다.

이 회장도 허수아비 논증의 오류에 해당하는 질문을 한다. "신이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는가?", "신이 왜 악인을 만들었는가?", "천주교도가 많은 나라들이 왜 공산국이 되었나?", "우리나라는 두 집 건너 교회가 있고, 신자도 많은데 사회 범죄와 시련이 왜 그리 많은가?" 등이다. 이 회장은 신과 교회(기독교)를 고통과 불행과 죽음과 악인의 문제를 일으킨 원인으로, 적어도 책임을 져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한다. 저자는 하나님과 교회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와 정치체제 등 사람의 문제라고 논증한다. 교회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하지만 모든 문제의 원인을 하나님과 교회에 두는 건 옳지 않다고 한다. 그러면서 교회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은 모습을 안타까워한다. 저자는 성경을 증거로 사용하지만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의 주장, 문학작품, 역사적 사실을 들어 이병철 회장의 질문에 대답하려고 애쓴다.

철학자 김용규의 대답 – 양립주의

▲ <백만장자의 마지막 질문> / 김용규 지음 / 휴머니스트 펴냄 / 476면 / 2만 5000원

저자는 믿음을 강요하지 않고 감정적으로 반응하지도 않는다. 지적설계가 하나님을 증명한다고 무조건 믿지도 않을뿐더러 진화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이론이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양립주의다. 진화와 창조 모두 인정한다. 자연법칙과 인간의 자유의지를 모두 인정한다. 기독교인은 의인이지만 또한 죄인이라고 말한다. 예수님을 믿어 의인으로 인정받지만 회심하는 즉시 거룩한 사람이 되어 죄악에서 떠난 모습으로 살지 않는다고 한다. 질문의 결론부에서는 '내 생각은 그렇다. 당신 생각은 어떤가?', '빌라도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내주었듯 종교를 망상이라고 몰아붙여 없애 버리려는 것인가? 당신은 어찌 생각하는가?' 하며 되묻는다. 질문에 앞서 변증을 꼼꼼하게 했기 때문에 믿지 않는 사람들이 '내 생각이 무조건 옳은 건 아니다. 생각해 봐야겠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고민하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도킨스를 필두로 무신론 전도사들이 책을 쏟아낼 동안 한국 기독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자체 문제만으로도 허덕이며 세상의 외침에 귀를 막았다. 지금이라도 이런 책이 나와서 반갑다. 박진영처럼 고민하면서도, 기독교를 편협하게 전하는 사람들 때문에 기독교인들과 대화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내용이다. 하나님 모르는 사람이 책을 읽으면 적어도 기독교를 편협하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진리를 찾아 고민하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 들려줄 말을 찾는 사람에게도 알맞은 내용이다. 우리 믿음이 산에 아무렇게나 쌓은 돌무더기 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 준다.

이 회장이 대답을 들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답을 듣고 기독교인이 되었을 거라는 뜻은 아니다. 저자는 회심을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말한다. 흔들리는 사람에게 논증으로 다가가면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증명하라고 외치는 사람에게는 소용이 없다.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논박하기 위해 내용을 모조리 외워 반박해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머리로는 받아들여도 마음이 움직이려면 다른 게 필요하다. 하나님을 믿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은 다시 반대 논리를 찾을 것이다. 성경을 중심에 두지 않고 자기 생각에 따라 사는 사람은 변증뿐만 아니라 믿음의 확신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런 확신에 들어갈 생각조차 않는 사람을 비난하지 않는 대답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더불어, 지나친 자기 확신과 감정적 반응으로 기독교를 편협하게 만드는 사람들도 읽으면 좋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지 않는 사람들을 설득할 만한 증거를 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11장을 다시 읽어야겠다. '교회 밖의 사람이라도 신의 진리를 알고 실행하면 구원받는다고 인정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과연 그러한가 성경을 찾아봐야겠다. 내가 적은 한 구절만으로 판단하지 말고 읽어 보시라! 저자도 요 8:51~59로 이 부분을 설명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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