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더 건강하게 '더작은교회'로 분립

예인교회, 첫 교회 분립…계획부터 청빙까지 교인이 주도

김은실   기사승인 2013.07.22  16:39:10

아래의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하실수 있습니다.

default_news_ad2
ad42

   
▲ 부천 예인교회가 7월 21일 분립 예배를 열고 더작은교회의 탄생을 알렸다. 더작은교회는 3년간 준비한 분립의 첫 열매다. ⓒ뉴스앤조이 김은실

"강성삼·강지영·권용만·김순자…." 이름을 읽던 목소리가 떨리더니 이내 멈췄다. 두 눈에 눈물이 맺힌 정성규 목사는 다시 목을 가다듬고 교인들 이름을 한 명 한 명 새기듯 발표했다. 7월 21일로 부천 예인교회를 떠나 인천 더작은교회로 가는 교인들의 이름이었다. 울먹임은 예배실을 가득 채운 250여 명의 교인 사이로 금세 번졌다.

3년 넘게 준비하며 기다린 분립 예배는 눈물바다였다. 헤어지는 서운함, 할 수 없어 보이던 일을 마침내 마쳤다는 홀가분함,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이끌어 주신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뒤섞인 눈물이었다. 예배 장소인 복사골문화센터 5층 세미나실은 많은 인원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찜통 같았다. 그래도 예배를 마친 교인들은 서로 손을 맞잡고 포옹했다. "고생했어요." "헤어지려니 서운하구먼."

예인교회의 분립은 처음부터 끝까지 교인들이 주도했다. 교회 대부분이 부교역자가 개척하는 형식으로 분립하는 것과 달리 교인들이 먼저 분립을 결정하고 목회자를 새로 데려왔다. 교회 분립과 목회자 청빙이라는 두 개 산을 한 번에 넘었다.

3년 넘게 토론하고 기도하며 준비

   
▲ 분립 준비는 2011년 분립추진위원회가 구성되면서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분립추진위원회는 세미나와 설명회 등을 열어 교인들에게 분립의 취지와 내용을 알렸다. 사진은 분립 방안 설명회 모습. (사진 제공 예인교회)

분립을 준비한 때는 2011년이지만, 고민은 그 전에 시작됐다. 정관에 분립 조항을 만들어야 했는데 분립을 당연시했던 교인들과 이를 반기지 않는 교인들이 충돌했다. 교회를 개척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개척 정신의 하나인 '복음 전파와 교회 부패를 막는 분립'이 교인들 사이에서 충분히 공유되지 못한 탓이었다.

교인들은 토론하고 대화했다. 격론 끝에 등록 교인 수가 250명이 넘어가면 교회를 나눈다는 항목을 2010년 정관에 신설했고, 등록 교인 숫자가 250명을 넘긴 2011년부터 분립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분립추진위원회는 다른 교회 사례를 모아서 분립 모델을 만들었고 교인들을 상대로 설명회와 토론회·세미나를 열어 진행 과정과 취지를 설명했다.

   
▲ 더작은교회에 참여하는 장년은 46명이다. 모두 스스로 참여하겠다고 나선 이들이다. 더작은교회 교인들은 특송으로 예인교회에 마지막 인사를 보냈다. ⓒ뉴스앤조이 김은실

새로 세우는 교회의 구성원은 자원자들로 모았다. 지원자가 30명이 넘으면 분립을 계속하고 30명이 안 되면 접으려 했다. 투표로 받은 신청자는 31명. 개척 교회가 재정을 자립해서 활동하려면 50명 이상이 필요했으나 애초에 정한 대로 분립을 추진했다.

때로 분립에 참여하는 인원이 30명 아래로 떨어졌다. 계속 할 수 있을까 불안했고 멈춰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목사나 교인들이 개인적으로 분립에 참여하라고 권하지 않았다. 누구에게 권유하느냐에 따라 오해가 생길 여지가 있었다. 공적인 행사에서만 참여를 독려하면서 기도하며 반년을 기다렸다. 마침내 새 공동체를 이룰 장년 46명, 청년 13명, 청소년과 어린이 14명, 유아부 8명이 모였다.

사랑하는 교회, 다른 이에게도 알리고파 떠난다

   
▲ 예인교회는 분립을 추진하면서 목회자도 새로 뽑았다. 청빙 절차는 <바람직한 목회자 청빙>을 바탕으로 진행했다. 사진은 분립추진위원회가 목회자를 면접하는 모습. (사진 제공 예인교회)

"지금도 남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더작은교회 임시운영위원장인 남기영 권사가 교인들 앞에서 속내를 털어놨다. 일명 '선데이 크리스천'이었던 그를 바른 신앙의 길로 이끌어 준 교회, 40년 동안 신앙생활을 함께한 선배가 있는 교회를 떠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교회를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에서, 발목을 잡는 감정은 털어 내고 개척지로 발을 내디뎠다. 교회 분쟁 속에서 탄생한 교회가 민주적인 공동체를 만들며 걸어온 10년의 세월과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도 보여 주고 동참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아픔을 이겨 낸 자부심은 그에게 용기와 동기가 됐다.

분립 과정에서 예인교회는 민주적인 목회자 청빙에 도전했다. <뉴스앤조이>와 교회개혁실천연대가 엮은 <바람직한 목회자 청빙>을 바탕으로 교회개혁실천연대의 추천과 지도를 받아 목사를 공개 모집했다. 분립 교회 목회자로 선택된 전영준 목사는 투명하고 공정한 청빙 덕분에 자신같이 교단 내에 인맥이 없는 사람도 좋은 기회를 얻었다며 고마워했다.

새 교회 이름은 교인들이 결정했다. 예인미추홀교회, 들플예인교회, 더작은교회 셋을 두고 투표한 결과 가장 많은 교인이 더작은교회를 택했다. 예인이라는 이름도, 지역명도 없는 이름. 의외였다. 분립준비팀으로 활동한 노경학 권사는 교회가 앞으로 더 건강하게 사명을 잘 감당하기 바라는 열망이 '더'라는 부사에 담겨 있다고 봤다. 전영준 목사는 십자가보다 커지는 교회가 아니라 언제나 예수보다 작은 자로 남는 교회가 되라는 뜻이 담긴 이름이라 풀이했다.

   
▲ 더작은교회는 예인교회와 같은 목표 아래서 지역 사회에 맞는 봉사와 실천으로 새로운 공동체를 꾸릴 계획이다. 8월에는 예인교회와 연합 수련회를 연다. 더작은교회 교인들의 모습. ©뉴스앤조이 김은실

더작은교회는 예인교회가 원칙으로 삼은 정관제, 운영위원제, 호칭제(직분은 권리가 아니라 호칭이다), 건물 무소유, 목회 임기제, 나눔 사역을 공동 목표로 삼으면서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봉사와 실천으로 새로운 공동체를 일구려 한다. 예인교회에 온 지 1년 반 만에 분립에 참여한 이미희 집사는 자신이 새롭게 섬길 일을, 청년 김세희 씨는 소수의 청년과 깊은 교제를 기대한다.

분립 파송 예배는 예인교회 11주년에 맞춰 열렸다. 마지막 인사는 "생일 축하합니다". 11년을 산 예인교회와 생애 첫날을 맞이한 더작은교회는 함께 탄생을 기념하며 예배를 마쳤다. 더작은교회는 7월 28일 첫 예배를 시작으로 정관 제정 등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한다. 8월에는 예인교회와 연합 수련회를 간다. 따로, 또 같이 하나님나라를 세우는 여정이 이렇게 다시 시작됐다.

ad47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동영상 기사

default_news_bottom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