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선하신 권능에 싸여(Von guten Mǟchten)

독일 여행을 하다가 시골 교회 뒷마당에 덩그러니 놓인 종에 쓰인 글씨를 봤다. 성문, 시계탑, 동상 따위에 쓰인 글이 아무리 좋아도 지나쳤지만 여기서는 종을 끌어안고 사진을 찍었다. 유명한 관광지에 적힌 글씨보다 더 궁금했다. 쓰인 글씨를 검색하고 뜻을 찾아보았다. 그 글로 만든 찬양곡을 찾고는 여러 번 들었다. 아래쪽에 Bonhoeffer라는 이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이 찾지 않는 작은 마을, 쉴러(윌리엄 텔을 지은 독일 작가)의 고향 사람들은 본회퍼의 어떤 말을 기억하고 싶었을까?

"신실하신 주님 팔에 고요히 둘러싸인 보호와 위로 놀라워라. (…) 지나간 날들 우리 마음 괴롭히며 악한 날들 무거운 짐 되어 누를지라도 주여, 간절하게 구하는 영혼에 이미 예비하신 구원을 주소서. (…) 주님의 강한 팔에 안겨 있는 놀라운 평화여! 낮이나 밤이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은 다가올 모든 날에도 변함없으시니 무슨 일 닥쳐올지라도 확신 있게 맞으렵니다."

약혼녀 마리아 폰 베데마이어에게 보낸 편지에 적은 '주님의 선하신 권능에 싸여'라는 시이다. 처형당하기 4달 전에 본회퍼가 감옥에서 썼다. 이 편지는 약혼녀와 부모님, 형제자매, 제자들에게 전한 본회퍼의 마지막 성탄 인사가 되었다. 자신의 운명을 예측이라도 한 듯 본회퍼는 주님의 선하신 권능에 싸여 주님 곁으로 돌아갔다. 독일 작곡가 지크프리트 피츠가 찬양곡으로 만들어 지금도 부르고 있다. (아래 동영상) 

제자도의 표본 본회퍼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부르실 때에는 그로 하여금 와서 죽으라고 명령하시는 것이다." 본회퍼가 한 말이다. 독일 교회가 히틀러의 뜻을 하나님 뜻으로 착각했을 때, 목숨을 내걸고 반대했다. 지하교회, 비밀리에 하는 방송으로도 모자라 히틀러 암살 계획에도 가담한다. '부르심'을 '죽을지라도'로 받아들였고 1945년 4월 9일 플로센뷔르크 강제수용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본회퍼는 행동하는 신앙인, 세상의 불의에 분노하고 하나님을 향한 열정에 불타는 사람에게 빛나는 별이다.

너무 멋져서 본회퍼처럼 살고 싶었다. 21살에 쓴 박사학위 논문이 <성도의 교제>라는 책으로 나왔다고 해서 읽었다. 어렵다. <나를 따르라>도 어려워 에버하르트 베트게가 지은 <본회퍼의 그리스도론>을 읽었지만 역시 어렵다. 평신도로서 나는 본회퍼를 저 멀리 홀로 솟은 별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본회퍼를 읽고 따르고 본회퍼처럼 살 수는 없다. 너무나 강하기 때문이다. 멋모르고 존경한 영웅이다.

신학자 본회퍼가 아니라 연인이 쓴 편지

<옥중연서>는 본회퍼가 감옥에서 마리아와 주고받은 편지 모음집이다. 편지 대부분은 본회퍼가 테겔 형무소에 있을 때 썼다. 본회퍼의 외숙 파울 폰 하제는 육군 준장으로 당시 베를린 방위군 사령관이었다(<디트리히 본회퍼>(에버하르트 베트게, 복 있는 사람)). 덕분에 본회퍼는 편안하게 수감 생활을 했다. 감옥에서 교회를 걱정하며 편지를 쓴 바울보다는 나은 형편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연서'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나님을 따르라고 강하게 썼을 거라 생각했다. 그가 쓴 책만큼이나 깊고, 어렵고, 복잡하리라 생각했다. 마리아에게 "예수님을 위해 죽읍시다"라고 쓸 줄 알았다. 전혀 그렇지 않았다.

본회퍼가 36살일 때 마리아는 18살이다. 김회권 목사님의 해설에 따르면 본회퍼와 마리아는 서로 알고 있었다. 본회퍼는 마리아 오빠의 견신례를 맡아 교육했고 마리아의 외할머니에게 후원을 받았다. 1942년 8월과 10월에 마리아의 아버지와 오빠가 러시아 전선에서 전사한 일도 둘이 연인으로 만나는 데 영향을 주었다. 마리아는 자상했던 아빠와 오빠의 빈자리를, 본회퍼를 통해 위로받았다고 한다. '이건 뭐지?' 싶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제자도의 표본, 히틀러를 암살하려던 사람이 18세 연하의 아가씨와 사랑에 빠지다니…. <나를 따르라>를 쓴 사람이 한 여인에게 "사랑하는 마리아, 보고 싶구려!" 라고 쓰는 게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편지도 지극히 평범하다. 편지를 읽고 내가 생각한 본회퍼를 찾기 어려웠다. 그가 쓴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본회퍼를 전혀 몰랐다.

옥중연서

▲ <옥중연서> / 디트리히 본회퍼·마리아 폰 베데마이어 지음 / 정현숙 옮김 / 복 있는 사람 펴냄 / 402면 / 1만 9000원
본회퍼와 마리아는 다정하고 편안하게 일상을 이야기한다. 무엇을 하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적는다. 서로를 그리워한다. 편지 내용만으로는 18살의 나이 차이를 찾지 못하겠다. 편지는 줄곧 "곧 만날 거다, 재판은 금방 끝나고 당신을 만나러 갈 것이다"라는 희망으로 넘친다. 본회퍼는 감옥에서도 즐겁고 활기찼다고 동료 죄수들이 증거한다. 감옥에 갇혔지만 별 탈 없이 석방되어 마리아와 함께 결혼할 거라 믿었다. 편지에는 결혼식에 관한 자세한 계획도 나온다. 마리아는 결혼식에 쓸 물건을 보러 다녔고 본회퍼도 그러리라 기대했다.

편지를 주고받는 시간이 6개월을 지나면서 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마리아가 읽은 책을 말하면 본회퍼는 다른 책을 소개한다. 본회퍼는 읽고 있는 책에 대한 생각을 말하고 책을 보내 달라고도 한다. 마리아는 본회퍼가 지은 책, 읽으라고 소개한 책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다. 편지에서 본회퍼가 키르케고르의 <공포와 전율>, <그리스도교의 훈련>, <죽음에 이르는 병>을 읽으라고 하자(236쪽) 마리아는 재치 있게 답장을 보낸다. "이제부터 저는 무슨 일을 하기 전에 우선 수줍어하며 당신에게 물어보아야 하고, 결국 '공포와 전율'로 병들어 죽을 때까지 키르케고르를 읽어야 하겠군요(248쪽)"라고 말했다. 본회퍼의 고민이나 신학의 깊이는 마리아의 재치와 애교 앞에서 스르르 녹아내렸다.

편지를 주고받은 지 1년이 지나면서 마리아는 실망하고 힘들어한다. 금방 석방될 줄 알았던 본회퍼는 나오지 않고 주변 사람들도 본회퍼와의 관계에 의문을 제기했다. 1944년 6월 이후에는 본회퍼의 편지만 남아 있다. "내 사랑 마리아"를 외치며 편지를 쓰고 또 썼다. 이때의 편지에는 본회퍼가 마리아를 어떻게 사랑하는지 더욱 잘 드러난다. 그리고 1944년 12월 19일 '주님의 선하신 권능에 싸여'를 성탄 선물로 보내고 편지 왕래가 끝난다. 히틀러 암살 계획에 관한 중요한 서류가 발각되었고 편하게 편지를 주고받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본회퍼는 뛰어난 신학자요 영웅적인 행동과 제자도를 실천했던 신앙인이다. 또한 한 여인을 사랑하며 마음을 바친 남자다. 영웅을 기대하며 책을 읽다가 당황하기도 했지만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 남달랐던 사람이 한 여인을 사랑한 모습을 보여 주어 더욱 좋았다.

"사랑이란 사람이 손으로 잡을 수 있거나, 주고 싶은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자체에 맡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랑은 외부에서 와서, 오직 한 사람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로 가며, 그저 그 사람과 함께 머무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없다면, 아무리 사랑에 빠져서 그 사람 가까이 가고 싶어도 멀리 서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않나요?" - 마리아가 보낸 편지 중 일부(2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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