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디가 베스트다"

올 상반기 개신교 출판계 동향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 것이다. 교보문고 상반기 개신교 판매 현황에 따르면 상위권에 스테디셀러가 상당수 포진되어 있다. 

▲ 교보문고 상반기 기독교 판매 순위 1~10위. (자료 제공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 스테디셀러, 조병호 목사의 약진

먼저 가장 많이 개신교 독자의 손에 들린 책은 '통(通)박사'라는 별칭으로 잘 알려진 조병호 목사의 <성경과 5대 제국>(2011). 성경에 등장하는 5개 제국의 역사와 성경 역사를 소위 '통'으로 엮어 냈다. 특히 각 제국의 역사 경영 방식을 하나의 키워드로 제시한 것이 특징이다. 선행 학습으로 제시되는 이집트는 '자연', 나머지 5대 제국 중 앗수르는 '경계', 바벨론은 '교육', 페르시아는 '숫자', 헬라 제국은 '융합', 로마는 '관용'의 키워드로 소개한다.

이 책은 2011년 출간되어 기독교출판문화상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출간된 지 3년이나 되었지만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개신교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간 성경의 배경사나 배경지식에 대해 교회 내에서 교육을 받기 어려웠고 평신도 수준에서 참고할 만한 책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성경을 '역사'라는 인문학적 관점에서 살피고자 하는 개신교 신도들의 '니즈(Needs)'가 인기의 비결인 듯하다. 이 책과 비슷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조병호 목사의 책이 50위권 내 다수 포진하고 있다는 점이 그 방증이다.

3위를 차지한 책은 게리 채프먼의 <5가지 사랑의 언어>(2010) 개정증보판이다. 이 책은 그간 개신교 결혼예비학교나 부부학교, 아버지학교 등 가정 사역 프로그램에서 교재로 많이 채택되었다. 사랑에 관해서는 기독교 출판계에서 입소문이 날 만큼 난, 검증된 책. 2010년도에 개정증보판으로 재출간되면서 지속적인 관심을 얻고 있다.

▲ 2013년 상반기 교보문고 기독교 베스트셀러 1~5위. <성경과 5대 제국>(조병호, 통독원), <철인>(다니엘 김, 규장), <5가지 사랑의 언어>(게리 채프먼, 생명의말씀사), <떠남>(이용규, 규장), <팬인가 제자인가>(카일 아이들먼, 두란노). (자료 제공 교보문고)

6위에 오른 C. 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2005) 보급판도 출간된 지 8년 가까이 되는 책이다. 책 자체가 국내에 소개된 것으로 치면 훨씬 오래되었다. C. S. 루이스의 대표적 저서라고 할 수 있는 <순전한 기독교>(2005) 보급판이 30위권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판타지 소설 스타일을 통해 기독교 신앙에 대해 무리 없이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휴대하기 편하고 선물하기 좋은 작은 판형도 판매를 거들었다.

후안 카를로스 오르티즈의 <제자입니까>의 21세기 버전인 <팬인가 제자인가>(2012)는 5위에 올랐다. 출간된 지 일 년이 훌쩍 넘은 책이다. 8위에 오른 <닉 부이치치의 허그>(2010)도 출간된 지 3년 되었다. 5월에 출간되어 10위에 오른 동일 저자의 새 책 <닉 부이치치의 플라잉>(2013)보다도 순위가 높다. 10위에 오른 책 중 2013년 출간 도서는 세 권. 닉 부이치치의 신간 외에 2위에 오른 다니엘 김의 <철인>과 8위 CM크리에이티브의 성경 만화 <성경 2.0 창세기·욥기>뿐이다. 2012년 12월 31일에 출간된 김용규 선교사의 새 책 <떠남>을 추가해도 절반을 넘지 못하는 수치다.

10위권엔 들지 못했지만 오스 힐먼의 <하나님의 타이밍>(2010), 이어령의 <지성에서 영성으로>(2010), 안수현의 <그 청년 바보 의사>(2009), 오스왈드 챔버스의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2009) 미니북도 2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대체로 신간 위주로 목록이 구성되는 일반 베스트셀러와는 달리 상위권에 스테디셀러가 눈에 띄게 많다. 50위권을 모두 살펴도 2013년 출간된 책은 아홉 권뿐. 채 열 권이 되지 않는다. 출판계의 불황으로 전체 출판 종수가 작년 대비 6%이상 줄었다. 소위 팔리는 책만 팔리는 '베스트셀러=스테디셀러' 공식이 굳어지고 있다. 개신교 출판계 역시 출판 불황의 큰 파고를 맞고 있다.

▲ 2013 상반기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6~10위(왼쪽부터). <스크루테이프의 편지>(C. S. 루이스, 홍성사), <닉 부이치치의 허그>(닉 부이치치, 두란노), <성경 2.0>(김동순, CM creative), <작은 기도>(류광수, 생명), <닉 부이치치의 플라잉>(닉 부이치치, 두란노). (자료 제공 교보문고)

키워드를 찾을 수 없는 베스트셀러 목록

일반 베스트셀러와 달리 핵심적인 키워드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도 개신교 상반기 베스트셀러 목록의 뚜렷한 특징이다. 작년에 이어 올 상반기에도 '힐링' 키워드가 출판계 전반을 뜨겁게 달구었다. 유행이나 트렌드라고 할 만한 게 있다는 이야기. 이에 비해 개신교 베스트셀러에서는 특정한 키워드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시대가 보인다'는 말이 있다. 최소한 상반기 개신교 베스트셀러 목록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베스트셀러 키워드는 동시대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지식이나 정보, 또는 정서나 감정 등을 드러내 준다. 간혹 싸구려 도매금으로 취급되기도 하지만 '힐링'이라는 말은 지금의 '피로사회'에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절실한 단어인 것이 사실이다. 개신교 출판계에서 유행에 따라 책을 기획하고 펴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요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힐링' 키워드에 적극 대응했던 불교계는 혜민 스님을 비롯한 여러 베스트셀러 작가를 배출하며 세상과 소통했다.

개신교 출판이 지닌 시스템이나 독자층의 한계 등이 없지는 않다. 개신교 출판계가 일반 독자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부분은 지속적으로 지적되어 온 바다. 다만 '힐링' 키워드는 개신교에서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분야이고 기회일 수 있다. 한동안 힐링, 소위 '치유'라는 말은 개신교에서 독점적으로 사용한 언어와 다름없다. 개신교 출판계가 찾아온 기회를 잘 활용하지 못하고 일반 독자들에 다가서지 못한 것은 불황에 맞서는 마케팅적 측면, 개신교의 선교적 측면에서도 모두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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