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교자살예방센터 라이프호프가 자살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을 위해 특강과 위로 예배를 5월 23일 서호교회에서 열었다. ⓒ뉴스앤조이 임안섭

"어떤 경우에라도 자살을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자살자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주장은 신학적인 근거가 없다."

5월 23일 서호교회에서 열린 자살자 유가족 위로 예배 전에 신원하 교수(고신대 기독교윤리학)가 자살을 주제로 강의하면서 한 말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고통을 품기보다는 "자살한 이들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통설을 앞세우는 것에 일침을 가한 것이다. 기독교자살예방센터 라이프호프(공동대표 노용찬·박상칠·유영권)는 이 통설 때문에 더한 고통을 받고 장례식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는 자살자 유가족을 위한 특강과 위로 예배를 마련했다.

구원과 무관한 자살…성경·교회사·교리 등에서 발견

▲ 신원하 교수는 "어떤 경우에라도 자살을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자살자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통설은 신학적인 근거가 없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임안섭

신 교수는 자살을 구원받지 못하는 죄로 여기는 관념이 중세 로마 가톨릭 교회가 만든 교리에서 기원하고 있다고 했다. 중세 시대의 교회에서는 세 차례 걸친 공의회에서 자살자에 대한 장례 의식을 아예 법적으로 금했다. 당시 교회는 자살을 사형 선고를 받은 자의 죄보다 더 악한 것으로 취급했다. 하지만 종교개혁 시기에 루터는 자살을 사탄의 힘에 사로잡혀 저지르게 되는 행위로 봤지만, 영원한 저주에 이르게 하는 죄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했다. 칼뱅도 자살을 구원과 연관시키지 않았다. 신 교수는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에서는 자살을 구원받지 못하는 죄로 규정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성경에서도 자살이라는 죽음의 방식에 대해 어떤 평가도 내리고 있지 않다. 신 교수는 성경에 자살한 인물로 나오는 아비멜렉·삼손·사울·아히도벨·시므리 등의 사례에서 자살을 구원과 관련시키지는 않았다고 했다. 오히려 사울의 자살 사건에서는 다윗이 사울의 생애를 칭송하며 그의 죽음을 깊이 애도한 내용을 비중 있게 다뤘다고 했다. 자살 행위에 대해 저주한 내용은 없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담긴 견인 교리를 통해서도 자살이 구원과 무관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견인 교리는 한마디로 "하나님이 택한 자는 전적·최종적으로 은혜로부터 떨어져 나갈 수 없다. 이 확실성은 인간이 아니라 삼위 하나님에게서 나온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인간이 스스로 죽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성도를 견인하고 구원하는 것에는 자살 행위가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고 했다. 인간의 자유의지 산물인 자살과 하나님의 주권적인 구원은 서로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자살자 유가족 위로 예배…"유족 치유하는 장례 예배 권장"

라이프호프는 자살 행위가 구원을 무효화할 수 없다는 신학적 검토를 한 뒤 유족을 위로하는 예배를 진행했다. 예배에는 소수의 유가족을 포함한 40여명의 청중이 참석해 고인을 추도하고 유족을 위해 중보 기도를 하며 위로를 나눴다.

▲ 박상칠 목사는 우울증 등 외부의 압력에 의해 자살을 선택한 이들에 대해 잘못됐다고 판단하지 말고 고인의 생애를 잘 기억해 주자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임안섭

박상칠 목사(성수교회)가 정신질환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아버지가 있었다고 고백하며 말씀을 전했다. 박 목사는 우울증·스트레스·증오심·두려움 등 외부의 압력에 의해 자살을 선택한 이들에 대해 잘못됐다고 판단하지 말고 고인의 생애를 잘 기억해 주자고 말했다. 그는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하나님의 말씀처럼 같이 슬퍼하고 위로하는 참 신자로 살자고 권했다.

3년 전에 큰 아들을 잃은 서 아무개 목사는 위로 예배에 두 번째 참석했다. 서 목사는 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당시 죄책감에 시달렸고, 주변에 솔직히 말하기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라이프호프 행사에 참석하면서 비슷한 고통을 겪은 이들을 만나며 위로를 받았다고 전했다. 서 목사는 아직 한국교회에 자살자에 대한 시선이 곱지 못한 점이 안타깝다는 말도 덧붙였다.

신원하 교수는 한국교회에 자살에 대한 신학적인 검토와 함께 자살자 유족을 돌보는 목회가 필요하다고 했다. 신 교수는 자살자 유가족이 쉬쉬하며 장례식을 치르는 경우가 많은데 목회자가 나서서 장례 예배를 잘 치르도록 도와야 한다고 했다. 자살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상실감과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고통받는 유가족을 위한 장례 예배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신 교수는 교회에서 자살자에 대한 장례식을 꺼리지 않고, 치유와 위로의 장이 되는 장례 예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라이프호프는 매달 넷째 주 목요일에 서호교회에서 자살자 유가족과 정기 모임을 진행하기로 했다. 매년 상반기에는 위로 예배, 하반기에는 문화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 자살자 유가족 위로 예배에는 소수의 유가족을 포함한 40여명의 청중이 참석해 고인을 추도하고 서로 중보 기도를 하며 위로를 나눴다. 사진은 성찬식을 하는 모습이다. ⓒ뉴스앤조이 임안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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