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려움을 떠나 사랑의 집으로> / 헨리 나우웬 지음 / 양혜원 옮김 / 포이에마 펴냄 / 188쪽 / 1만 1000원

하버드 대학교 강단을 떠나 평생을 보냈던 장애인 공동체 '라르쉬 데이브레이크'에 완전히 정착하기 전, 헨리 나우웬은 1985년 8월부터 1년 동안 임시로 그곳에서 피정 생활을 했다. <두려움을 떠나 사랑의 집으로>는 그가 이 공동체에서 지내면서 몸도 성치 않고 가난한 그들이 어떻게 사랑 가득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관찰하며 쓴 책이다(원제는 LIFESIGNS이다).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는다'는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하지만, 현실적인 문제 앞에 서면 끝내 두려움의 집에 머물고 마는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쓴 책으로 교육, 정치, 종교, 사회생활 곳곳에서 다양하게 또 미묘하게 우리를 괴롭히고 통제하는 두려움을 떠나, 우리가 머물러야 할 '사랑의 집'이 있음을 가르쳐 준다.

사랑의 집은 단순히 이 세상 너머에 있는 내세의 장소, 혹은 천국의 장소가 아니라 지극히 불안한 이 세상 한가운데서도 머물 수 있는 집임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그는 사랑의 집으로 인도하는 표지로 세 가지 - '친밀함intimacy', '풍성함fecundity', '희열ecstasy' -를 들었다. 요한복음 15장을 증거로 들며 제시한 이 세 가지 표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이 생명의 징후들이 두려움을 어떻게 몰아내는지, 어떤 식으로 사랑을 완성하는지, 그리고 이것을 어떻게 우리 삶에서 드러내야 하는지를 명쾌하게 가르쳐 준다. 또한 모든 인간은 그 상황과 상태가 어떠하건 이 세 가지 선물을 통해 삶을 누려야 함을 강조한다.

사랑의 집으로 인도하는 세 가지 표지

고통과 두려움 가득한 이 시대를 두고 나우웬은 "집이 없다"는 표현을 썼다. '집'은 소속감, 안전함, 돌봄, 보호와 사랑을 모두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특히 기독교는 인생을 '집으로 가는 것'에, 죽음은 '드디어 집에 도착한 것'에 비유할 정도로 '집'은 중요한 은유이다. 렘브란트가 그린 '탕자의 귀향'도 같은 맥락이다. 나이 든 아버지가 지친 아들을 붙잡는 사랑의 포옹은 친밀한 집에 대한 우리의 깊은 열망을 확인해 준다. 그런 머물 곳 없는 세대를 사랑의 집으로 인도할 세 가지 표지판으로 '친밀함'과 '풍성함' 그리고 '희열'을 들었다. 약한 자와 연대케 할 '친밀함', 우리 삶의 성장과 변화를 돕는 '풍성함' 그리고 기쁨의 또 다른 이름인 '희열'이 주는 의미와 함께, 이 세 가지 징후가 두려움을 어떻게 이기는지,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깊이 있게 파고든다.

친밀함과 풍성함과 희열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다. "압니다. 하지만…"이라는 말과 생각으로 현실의 문제 앞에 굴복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세 가지 선물을 끝내 누리지 못한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이들을 위한 책이다. 사방에서 두려움의 공격을 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이 책을 통해 견고한 사랑의 집에 머물러 하나님께로 가까이 갈 수 있다.

공동체, 그리스도가 걷고 또 가르치신 길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선 기도와 묵상을 통해 개인 영성을 성장시키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헨리 나우웬은 이 책에서 특별히 '함께함'의 사역을 강조했다. 완전한 사랑을 '집'에 빗대어 설명하거나, 세 가지 표지인 친밀함, 풍성함, 희열에서 각각 연대와 사명, 그리고 새로운 공동체를 강조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특히 그는 라르쉬 데이브레이크 공동체 설립자이자, 이 책의 동기 부여 역할을 한 장 바니에의 삶을 몇 번씩 강조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장애인 섬기는 일을 개인의 시간과 재능을 낭비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그 일은 두려움에서 사랑으로 가는 구체적인 길이다.

전쟁과 폭력과 고통이 판치는 세상에서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상한 자를 자신의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 '함께함'은 우리의 소명이자 예수님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헨리 나우웬은 '홀로'가 아니라 '함께함'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길이자 예수가 걸었던 길임을 깨닫고, 평생 라르쉬에서 장애인들을 섬기는 것으로 그 길을 실천했다. 또한 이 책에서도 장애인과 비장애인, 도움을 주는 이와 받는 이, 그리고 같은 사역을 하는 동역자와의 연대를 그리면서 아름다운 연합을 통해 사랑의 집이 더 견고하게 되고,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갈 수 있음을 설명한다.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댈 때, 스스로에게 실망할 때, 다른 사람에게 상처 받을 때조차도 '예수 그리스도가 머무는 집'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거룩한 초대장 역할을 할 이 책은 두려움 가득한 이 시대에 위로와 영감과 도전을 동시에 안겨 줄 것이다.

이 책의 주제를 가장 잘 표현한 에티 힐레줌의 시를 이곳에 인용할까 한다. 이 책의 부록으로도 실린 이 시는 네덜란드 유대인 여성이 쓴 기도문인데,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네덜란드에 있는 유대인들을 한창 박해할 때 썼다. 지금 이 시대에도 반드시 필요한 인용문이 아닌가 싶다.

"하나님 불안에 찬 시대입니다. 오늘 밤 처음으로 어둠 속에서 눈을 뜨고 누웠습니다. 사람들이 고통당하는 장면이 하나씩 눈앞을 스쳐 지나갈 때마다 눈이 타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딱 한 가지만 약속드리겠습니다. 아주 작은 것 한 가지입니다. 내일에 대한 염려를 오늘의 짐으로 가져오지 않겠습니다. 물론 연습이 좀 필요하겠지만요.

하루하루가 그날 자체로 충분합니다. 내 힘이 조금씩 사라지지 않도록 당신이 하시는 일에 보탬이 되겠습니다. 물론 미리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만. 사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 당신의 그 작은 부분을 안전하게 지키는 거십니다. 그리고 아마 다른 사람 안에 있는 부분도요. 우리의 상황에 대해서, 우리의 인생에 대해서 당신이 하실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당신 탓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당신의 거처를 끝까지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 앞으로 당신과 많은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물론 내 믿음이 조금 약해지면 때로 소원한 시간을 보내기도 하겠지만, 언제나 당신을 위해 노력하고, 당신께 신실하고, 당신을 내 앞에서 몰아내지 않겠습니다.

사소한 물질적 염려 때문에 내 힘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낭비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매 순간을 잘 사용하여 하루하루를 열매 맺는 날로 만들어서, 너무도 불확실한 우리 미래를 위한 토대에 또 하나의 돌을 놓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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