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7일 국가조찬기도회 취재를 위해 집을 나섰다. 7시 정각에 시작하니 여유 있게 6시 30분까지 가면 되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동료 기자로부터 전화를 받고 나서 부리나케 뛰어야만 했다. 입장 시간이 6시 30분까지였던 것이다. 인기 '군디컬' 드라마 '푸른 거탑' 말년 최 병장의 말을 되새기며 뛰고 또 뛰었다. '이런 젠장, 아침부터 뜀박질이라니.'

다행히 지각은 면했고, 뛴 보람은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축사 말미에 WCC(세계교회협의회) 총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한 것이다. 단 한마디에 불과했지만 파급력은 컸다. 동석한 교계 기자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순간 박 대통령을 지지해 온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홍재철 대표회장)가 떠올랐다. 대형 스크린을 주시했지만 낯익은 한기총 임원들 얼굴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는 10월 부산에서 열리는 WCC 제10차 총회 준비가 한창인 가운데, 최근 교계는 WCC 공동선언문 사태로 내홍을 겪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WCC 총회 개최 반대와 지지를 놓고 줄타기를 하던 한기총은 기존 입장인 '반대'로 돌아섰다.

한기총은 2월 4일 WCC 본부 측에 부산 총회를 취소하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요구에 불응하면 예장합동과 고신 등 보수 교단·단체들과 총궐기해 WCC 총회 반대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선언했다. 전쟁으로 따지면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그런데 우군 박 대통령이 교계 보수 인사들이 총집합한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올해 10월 부산에서 세계 기독교계의 올림픽이라고 불리는 세계교회협의회 10차 총회가 열리는 것을 안다. 성공적으로 개최할 수 있기를 기원하겠다"고 지지하는 발언을 한 것이다.

물론 박 대통령의 WCC 총회 개최 지지 발언은 행사용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WCC 총회 개최를 반대해 온 한기총 등 교계 보수 교단 등은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한기총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박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열과 성을 다했다. 박 후보가 신천지 유착 의혹으로 논란이 일자 "6개월 전부터 자체 조사한 결과 거짓으로 확인했다"는 성명을 지난해 12월 14일 발표했다. 아울러 "악성 소문을 사실인 양 유포하는 세력을 규탄한다"며 당시 민주통합당의 공세에 맞대응하기도 했다.

같은 해 9월 박 후보가 한기총을 방문했을 때 홍재철 대표회장은 "미주기독교총연합회가 선거인단 등록을 독려하고 있다.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면서 "여기에서 얻을 수 있는 표가 300만 표"라며 지지 의사를 보내기도 했다.

이런 한기총이 박 대통령으로부터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한기총은 박 대통령의 WCC 발언에 공식 논평을 내놓거나 하지는 않았다. 한기총 배인관 사무총장은 "우리 입장에서 유감이지만, 정치적인 발언으로 봐야 한다. 박 대통령이 교계 깊숙한 내용까지 파악했겠나. 여러 나라에서 온다고 하니까 그렇게 말한 것 같다"며 담담한 듯 말했다.

박 대통령의 WCC 총회 개최 지지 발언을 단순히 정치적인 발언이라 치부할 수 있을까. 국가조찬기도회 다음 날인 3월 8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를 찾은 정홍원 국무총리도 WCC 총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했다. 김영주 총무가 WCC 제10차 부산 총회와 관련해 정부의 적극 협력을 부탁했고, 정 국무총리는 "WCC 총회가 성공적으로 치러질 수 있도록 돕겠다"고 화답했다.

이틀간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WCC 총회 지지 발언을 돌아가며 했다. 대선 전부터 일편단심 지지했던 박 대통령에게 발등 찍힌 한기총이 정부의 비판 세력으로 돌아설지, 조용히 넘어갈지 좀 더 두고 볼 일이지만, 아무튼 속은 꽤나 불편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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