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 19일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 주최로 열린 '교회 세습, 신학으로 조명하다'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발제문을 정리해서 올립니다. 두 번째 발제문은 김판임 교수의 '교회 세습에 대한 신약학적 고찰 - 신약성서에서 바라본 한국교회의 세습 문제'입니다. 필자에게 허락받아 분량을 줄여 등록합니다. -편집자 주

세습이란 봉건주의 사회의 특징으로서 아버지가 하는 일을 아들이 이어가는 것을 말한다. 종교 영역에서 세습의 형태는 고대 이스라엘에서 대제사장과 제사장, 레위인의 가문에서 나타났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현대사회에서 세습이란 부정적이다. 세습은 아들이라는 이유에서 아버지가 하던 일을 승계하는 것이기 때문에, 동일한 자격과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동일한 기회를 박탈하는 악한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는 사제에게 결혼을 허가하지 않으므로 교회권력의 세습의 문제는 개신교회에서 나타나는 특징적인 일이라 하겠다. 과거 열악한 상황 가운데의 교회의 세습은,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가업을 잇는 숭고한 결단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그런데 90년대 충현교회로 시작한, 부와 권력을 축적한 대형교회의 세습은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다. 과연 성서는 교회 세습에 관해 어떤 판단을 내려줄까?

신약성서가 기록될 당시에는 현재 교회의 조직과 같은 것은 형성되지 않았을 것이고, 따라서 목사라는 직책도 없었을 것이므로, 교회에 대한 기본 개념, "교회 지도자" 혹은 "후임자" 등에 관심을 두고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예수의 가르침과 바울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신약성서에서 세습을 정당화할만한 내용이 있는지 찾아보고, 그렇지 않다면 신약성서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교회 세습을 방지할 수 있는 방안과 교회 지도자 후임자 선정의 가장 바람직한 방법을 제시하려 한다.

예수의 교회와 지도자 이해

예수가 지상에서 공적인 활동을 시작하시며 외친 말씀은 "때가 찾다.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는 것이었다. 또 "나를 따르라"고 하며 제자를 부르셨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개인보다는 함께 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을 하셨으리라. 예수의 지상 활동은 개인의 탁월한 능력의 표출이 아니라 하나님나라 운동이었다. 그 운동은 여럿이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운동을 교회라 부르지는 않는다. 예수의 가르침 중에서 교회 구성원과 교회지도자가 가져야할 품격에 대한 윤곽을 찾아볼 수 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내 어머니이니라(막10:35)." 신앙 안에서 모든 이들이 형제·자매이고 아들·딸이 될 수 있는 게 아닌가! 교회 후임자 선정에 있어서 친자를 넘어서는 가능성의 폭을 열어주는 말씀이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막10:45)." 이 말씀에 의하면, 지도자상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사뭇 다르다. 지도자는 타인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역설적이다.

교회의 시작은 예수의 지상 생활이 마감한 후에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역사적으로 맞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예루살렘에 교회가 형성되었고, 그 교회의 우두머리는 베드로, 야고보(예수의 형제), 요한으로 알려져 있다. 베드로나 요한의 아들이 승계했다는 기록이 없다는 사실은 한국 교회의 세습 문제와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바울의 교회 이해

바울이 복음을 전하며 선교 활동을 활발히 하고, 교회를 개척하던 당시 그는 교회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요즘 목사들처럼 정년 은퇴나 은퇴 후 교회로부터 생활비와 같은 연금을 받는 원로 목사 같은 것은 상상도 해보지 못했다. 그는 교회에 머물지 않고 떠나 다른 곳에 전도한다. 한 지역에 머물러 제자를 양육한다거나 은퇴를 앞두고 후임자 선정에 고심을 하는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바울이 이해한 교회는 바울이 사용한 용어를 중심으로 찾아볼 수 있다. "교회"로 번역된 헬라어는 에클레시아(ekklesia)이다. 신약성서에 114회, 바울 서신에서는 44회 사용됐다.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어진 자들"이란 의미이다. 성도란 "거룩한 자들"이란 뜻이고, 거룩이란 구별되었다는 뜻이다. 바울은 특히 예루살렘 교회의 구성원을 성도라고 부르곤 하였다(롬15:25-26; 고전16:1; 고후8:4; 9:1, 12). 그들은 세상과 구별된 존재로 살았고, 비그리스도인들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과 지체"라는 표현으로 교회를 말한다(고전 12:12-31). 각 지체들이 기능을 하여 한 몸이 살아가듯이 교회도 개개의 구성원들이 가진 능력을 발휘함으로 살아가는 유기체로서, 드러나는 것은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그리스도이다. 세습하는 교회에서 선호하는 교회 이해가 성전으로서의 교회이다. 바울이 성전 개념을 사용한 것은 교회 건물을 두고 한 것이 아니다. 성전은 교회 건물이 아니라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을 가리킨다(고전6:19). 성전을 위하는 목회자의 활동은 교인을 위한 봉사여야 하는 것이 옳고, 교회를 섬긴다는 것은 교인을 섬기는 것이어야 한다.

바울의 지도자와 동역자·후임자 이해

사도는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바울처럼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개척하던 사람이다. 사도라는 직책은 복음을 전하며 다니는 것이 특징적이다. 그러므로 한 지역에 오래 머물러 사역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바울은 물론 이 모든 역할을 다 했지만, 자신의 자의식으로는 "사도"이다. 그는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복음을 들고 이곳저곳 선교 여행을 다닌다.

바울은 목회 서신에서 디모데를 "믿음 안에서 참아들(딤전1;2)", "사랑하는 아들(딤후1:2)", "나의 참아들(딛4)"로 언급된다. 이러한 표현은 한국 교회 세습 문제 해결을 위한 인사이트를 준다. 즉, 세습하고 싶은 아들이 꼭 혈연관계의 아들이 아니라 믿음의 아들로 확대하면 좋을 것 같다. 즉, 많은 교회의 경우 담임목사가 은퇴를 하거나 사임을 하는 경우 부목사들도 사임하게 하는데, 오히려 부목사 중에서 후임자를 구하는 것도 성경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바울이 교회로부터 물질적인 것을 바라지 않았던 반면, 적대자들은 바라지 않는 것 자체가 그의 사도직이 의심스러운 것이라며 자신들이 교회로부터 바라는 것은 사도로서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 바울이 교회로부터 물질적인 것을 바라지 않았던 반면, 적대자들은 바라지 않는 것 자체가 그의 사도직이 의심스러운 것이라며 자신들이 교회로부터 바라는 것은 사도로서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교회의 세습은 결국 후임자 선정의 문제이다. 교회를 모르는 사람이 후임자가 되어 혼란이 일어나는 것보다는 잘 알고 있는 아들이 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했던 바울이 교회를 떠나면서 자신이 가장 신임하는 사람을 후임자로 선정하고 떠났다면 교회에 문제가 없었을까? 바울은 이에 대해 자신을 좋아하든 아볼로를 좋아하든 교회 안에서 하나 될 것과 사람을 자랑하지 말 것을 권면한다(고전3:3, 21). 꼭 아들이 아니라 누구라도 후임자는 될 수 있는 것이며, 개인에 따라 능력이 다르고 교인들이 가지는 호감이 다를지라도 교회가 하나 되도록 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을 가르치는 구절이다.

신약성서 안 교회 세습의 근거

신약성서 안에서 교회 세습의 근거를 찾으려고 한다면, 그 결과는 참담하다. 어느 한 구절도 교회 세습을 정당화해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교회는 혈육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며, 예수의 말대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사랑의 공동체이다. 바울의 표현대로 한다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모든 믿는 자들을 형제자매로 부르는 성가족 공동체이다.

성서적으로는 교회 세습의 근거를 찾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한국 교회가 세습을 자행하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어 보인다. 학교나 교회 등이 한국 사회에서는 개인의 소유로 오해된다. 즉, 창립자의 소유로 생각하는 문제가 있다. 목사가 개인의 재산을 털어 교회를 창립하고, 열심을 내어 부흥하게 되면 타인에게 주기 아깝게 여겨지고, 가업이라 생각되어 남이 아니라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생각이 들게 되는 것이다.

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의 김진호 목사는 한국 교회의 초고속 성장을 이끌어온 대형교회의 경우 목사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어 재정 운용이 투명하지 않은 경향이 짙으며, 따라서 "세습하지 않으면 반드시 후임목사와 마찰이 생기기 때문에 세습을 선호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하여 교회 세습을 막는 가장 빠른 방법으로 목회자에게 집중된 권력을 이양할 수 있는 교회 결정의 민주화와 재정 운용의 투명화를 꼽았으며, 박득훈목사의 의견도 이에 일치하였다. 나도 전적으로 공감한다.

이 모든 점을 감안하여 다음과 같이 교회 세습을 방지하는 방안을 조심스럽게 제안해본다. 1) 한국 교회는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를 예루살렘 성전과 동일시하지 말아야 한다. 2) 한국 교회는 목회자를 성전을 섬기는 구약의 제사장과 동일시하지 말아야 한다. 3) 한국 교회는 예수를 믿고 따르는 기독교 공동체로서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 4) 한국 교회는 목사 자신이 사재를 털어 교회를 개척하는 일을 되도록 금지해야 한다. 5) 한국 교회 원로/은퇴 목사는 후임자가 될 목사들을 모두 "주 안에서 얻은 아들"로 인정해야 한다. 바울과 디모데 관계처럼. 6) 한국 교회는 보다 민주적인 운영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7) 한국 교회는 재정 운용을 투명화해야 한다.

김판임 / 세종대 교양학부 교수(전공 신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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