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미국에서의 첫 봄은 참으로 지난했다.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의 논문 표절 사건은 얄궂게 그때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미주뉴스앤조이> 설립을 위해 뉴욕에 막 도착해 집 주변도 운전하고 다니기 버거울 무렵, 제보 하나가 들어왔다. 사안이 심각했다. 미국 버지니아의 어느 한인 교회 담임목사가 '평양대부흥'을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을 표절했다는 것이다. 갸우뚱했다. 군소 한인 신학교도 아닌 미국 서든뱁티스트신학교를 졸업하면서 그것도 박사 학위(Ph.D) 논문을 표절했다니 속단하기 어려웠다.

총신대 박용규 교수가 2000년에 쓴 <평양대부흥운동>을 상당 부분 베꼈다고 제보자는 주장했다. 우선 논문을 입수했다. 수백 페이지에 이르는 논문과 원본을 비교 검토했다. 사건이 미칠 파장을 고려해 거듭 신중을 기했다. 한국에 있는 역사신학을 전공한 신학자에게 검토를 의뢰했다. 표절이 확실했고, 대필 의혹까지 추가됐다. 이후 원문 필자인 박용규 교수에게 논문을 보내 검토를 요청했다. 논문이라기보다 여기저기를 짜깁기한 번역서에 가까웠기에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표절 여부를 검토하는 데만 꼬박 2개월이 넘게 걸렸다.

2개월간의 취재, 결국 드러난 '지적 도둑질'

표절의 내용도 사뭇 고약했다. 양 아무개 목사가 베낀 내용 중에는 평양대부흥 당시 회심한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회개하는 모습들이 나온다. 회개하고 돈을 훔친 것을 돌려주고, 떼먹은 빚을 갚는 등의 장면들이다. 100년 전 회개와 각성을 불러일으킨 평양대부흥을 소재로 ‘지적 도둑질’을 저지른 셈이다.

취재를 끝내고 모든 사실관계를 파악한 뒤 표절한 목사와 인터뷰를 시도했다. 당사자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기 위해서였다. 여러 차례 전화 통화를 하고 두 차례에 걸쳐 인터뷰했다. 뉴욕에서 버지니아까지 왕복 10시간의 거리를 수차례 오가야 했다.

양 아무개 목사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 듯 처음에는 "이게 기사거리나 되냐"고 반문하며, "그런 약점(표절)은 다 있을 거"라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인용 표시를 제대로 못했을 수 있다며 표절을 부인했다. 하지만 증거를 일일이 들이대자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태도를 바꿨다. "너무 좋았기 때문에 다른 글을 써 봤자 (더 좋은 글이 나올 수 없기 때문에) 그랬다"고 기자의 팔을 붙잡고 애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양 아무개 목사는 참회하는 대신 다양한 경로를 이용해 기사가 나가는 것을 막으려 애썼다. 취재를 마치고 기사를 올리려하자 여기저기서 전화가 걸려왔다. 어떤 교인은 "성경에도 깨끗하지 못하지만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들이 있지 않냐"며 기사를 쓰지 말라고 떼를 썼다. 또 다른 교인은 표절보다는 교회 내 반대파 교인들의 음모가 더 큰 문제라는 식으로 몰아가려 했다. 미국에서 정당한 신분으로 취재 활동을 하는지 우리 뒷조사를 해 보겠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예정대로 기사는 보도됐고, 사건이 걷잡을 수 없게 번지자 표절 목사는 교회 내부를 단속하기 시작했다. 주일예배에서 이 목사는 '표절'이라는 단어 대신 '인용'이라는 말을 쓰면서 "덮어주고 이해하는 교회가 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는 애매한 말로 무마하려했다. 목사를 지지하는 교인들도 "(표절이) 목회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목사를 두둔하고 나섰다.

양 아무개 목사는 논문 표절 문제를 거론하는 교인들을 쫓아내기 시작했다. '교회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총회를 열고 자신을 반대하는 교인들을 출교했다. "출교 대상자는 교회를 망가뜨리려는 자들"이라는 말도 곁들였다. 총회 당일 버지니아한인침례교회에는 지역 경찰관 20여 명이 출동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고, 기자는 경찰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교회를 빠져나와야 했다.

<미주뉴스앤조이>가 보도한 지 일주일 만에 서든뱁티스트신학교는 자체 조사에 들어갔고, 3개월 뒤, 양 아무개 목사의 박사 학위를 박탈했다. 그일 이후로 한국 학생들에 대한 논문 심사 기준이 한층 까다로워졌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결국 의혹은 사실로 드러났고 양 아무개 목사는 박사 학위까지 박탈당했지만 이미 교회 내부의 흐름은 정반대 양상으로 치달았다. 그 목사는 회개와 각성하는 대신 반대파를 공격하는 것을 선택했고, 목사를 반대하는 교인들이 출교당하면서 결국 교회는 둘로 갈라져 분쟁에 휩싸였다.

6년 전 양 아무개 목사를 떠오르게 만드는 오정현 목사

오정현 목사의 논문 표절 사건이 6년 전 일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유는 두 사건이 묘하게 겹치기 때문이다. 당회 조사위원회의 7개월간의 조사 끝에, 수년 전부터 교계에 떠돌던 오 목사의 박사 학위 논문 대필 및 표절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한두 단어만 바꾸거나 짜깁기하며 원본을 베끼는 대범한 표절 방식도 유사하다.

사건이 드러난 이후 보이는 반응도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 오 목사는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대신 거짓말을 반복했다. 인용을 미리 허락받았다고 했다가 거짓말이 드러나자, 총장을 통해 허락받았다고 말을 바꿨지만 이 또한 거짓으로 드러났다. 오 목사는 2월 10일 주일예배 때 "참고 문헌을 쓰는 과정에 일부 미흡한 점이 있었다"고 했을 뿐 사실상 표절을 인정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논문 문제를 제기한 이로부터 사임 협박을 받았다며 여론몰이를 시도했다.

오 목사는 표절 사건을 덮기 위해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표절 증거를 제출한 사람을 오 목사가 직접 만났고, 이후 이 사람은 불이익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오 목사의 부인은 조사위원장에게 "마귀에게 먹잇감을 주어 하나님의 이름이 더러워지며 교회 건축을 방해하려는 세력들이 틈을 노리고 있는 상태에서 빌미를 준다"고 경고했다. 당회는 "논문 표절 조사보고서를 사랑의교회가 공식 인정한 것은 아니다"며 조사위원회의 보고서를 사실상 부인했다.

기사에 달리는 댓글들로도 오 목사를 지지하는 교인들의 의식을 대략 가늠해볼 수 있다. 예배당 건축을 반대하는 교인들을 지목하며 일부 교인들의 음모로 몰아가거나, 왜 우리 목사님만 가지고 그러냐는 억울함도 엿보인다.

"지금 한참 건축 진행 중에 이러한 사건이 터진 이유가 무엇인가? 건축 반대자들의 농간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을 것 같은데...", "남의 좋은 말이나 글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원 저자도 자기 말이 세상에 퍼지는 것을 기뻐해야하지 않을까?", "오 목사는 영어로 인용하니 문제처럼 보이는 것이고, 학자들은 우리말로 번역해서 슬쩍 바꾸어 인용하니 표시가 안날 뿐!"

왜 나만 갖고 그래?

6년 전 표절 사건 취재 차 해당 목사를 만나기 위해 뉴욕에서 버지니아까지 차를 몰고 가다가 겪은 일이다. 운전하는 동안 그간 취재한 내용을 곱씹으며 인터뷰 질문들을 뽑아내느라 머릿속은 복잡했다. 앞 차만 따라가며 골똘히 생각에 빠져 있던 중 차량 속도계가 규정 속도를 훌쩍 넘어버린 것이다. 어느새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따라붙었고 과속으로 거금 300불을 벌금으로 지불해야 했다. 벌점은 덤이었다. 앞에 가는 차들을 따라갔을 뿐인데 왜 나만 갖고 그러냐고 경찰관에게 정중히 따졌지만, 그는 대꾸도 없이 교통범칙금통고서만 던져주고 사라졌다.

어렵사리 도착해 양 아무개 목사와 인터뷰할 때 그의 입에서도 비슷한 대사가 나왔다. 논문에 문제가 있는 목사가 어디 나뿐이냐는 것이다. 억울할 만도 하다. 표절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거나, 학교를 다니기는커녕 돈으로 박사 학위를 구입한 목회자가 어디 한두 명인가. 그래서 오던 길에 과속으로 경찰에게 교통 스티커를 받았던 일을 얘기해 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어디 규정 속도를 어긴 차가 나만 있었냐고. 나는 앞 차를 따라갔을 뿐인데 나만 잡혔다고 말했다.

예전에 어느 논객이 한국 정치인들을 향해 농담처럼 던진 말이다.

"'선수'(정치인)는 자신의 실수로 맛이 가지 않는다. 잘못된 걸로 판명된 것을 억지로 합리화하는 과정에서 망가진다. 그런 인물들이 나의 주변에 너무 많다. 사실은 그게 두려운 거다. 나는 오판하지 않는 천재가 아니라 실수를 기꺼이 인정하는 대인이 되고 싶다."

한국 교계의 목회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잘못된 걸로 판명된 것을 억지로 합리화하다가 망가지는 교계 '선수'들이 참 많았다. 나도 사실 그게 두렵다.

박지호 전 미주뉴스앤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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