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4일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에큐메니컬 신학 심포지엄이 열렸다. 생명평화마당 신학위원회와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가 공동 주최한 심포지엄에는 신학대 교수들이 발제자로 나서 'WCC 신학과 한국교회의 신학적 대응'을 주제로 WCC 공동선언문 4개 조항에 반박했다.

독자들이 WCC를 이해하기 쉽도록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발제문을 주제별로 하나씩 전문을 옮긴다. - 편집자 주

1. WCC와 공산주의

20세기 전반부는 역사의 격동기였다. 세계 제1·2차 대전을 비롯하여 레닌에 의해 주도된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파시즘의 등장, 중국 공산혁명과 제3세계에서의 탈 제국주의 민족해방운동 등 그야말로 격랑의 시대였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을 고려할 때 에큐메니컬 운동이 초기부터 사회주의가 제기한 문제들, 즉 사회정의나 사회 평등의 가치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세계 에큐메니컬 운동과 신학은 사회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동시에 하느님나라의 영적인 차원을 경시하거나 잊은 적이 없었으며 항상 어떠한 정치사상이나 사회체제의 구성 원리로서 이데올로기를 무조건 신봉하지 않고 그 한계를 지적하였다. 따라서 상당수의 에큐메니컬 진영의 신학자들은 인간을 훼손시키는 발전 지향의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하는 한편,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공산주의가 자행한 폭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편 WCC는 체제 이념과 구분된 하나의 사상으로서 사회주의의 관점을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데, 그 이유는 첫째, 회원 교회들 일부가 사회주의 체제 안에 속해 있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사회주의는 에큐메니컬 운동에 영향을 끼쳐 사회정의와 사회 평등 운동을 벌이는 데 기여하였기 때문이다.

WCC의 전신인 국제선교대회(IMC)는 지속적으로 복음의 사회적 차원을 강조하였다. 1928년의 예루살렘 IMC는 복음에 기초한 교회의 정체성 및 교회 일치를 강조하는 동시에 교회의 사회참여를 같은 무게로 강조하면서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까지도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938년 마드리드 IMC대회 역시 "복음은 개인적인 복음화뿐만 아니라 사회적 변혁을 바라보고 희망하며, 정의, 자유, 평화와 같은 목적 달성을 바라보고 희망 한다"고 선언하면서 진정한 복음은 사회참여로 교회의 활발한 노력을 기울이게 한다고 밝혔다. 1947년 휘트비에서 열린 국제선교대회(IMC)가 채택한 '교회와 사회참여'에 관한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배고프고 가난하고 온갖 궁핍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하며 매 순간 불의와 억압을 제거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와 같은 것이 복음 전도의 전부라고 보지는 않는다. 우리는 이 세상의 슬픔과 비애의 기원은 영적인 것이요, 이 세상의 치료는 영적인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삶의 모든 부분에 들어가실 때 일어난다."

한편 1948년 암스테르담 총회에서는 공산주의와 자유방임적 자본주의 양자의 이념을 모두 배척하면서 독자 노선을 추구하였다. "오늘 우리 세계는 역사상 유래 없었던 엄청난 규모의 사회적 위기를 경험하고 있는데, 이러한 무질서의 뿌리는 한편으로는 인간 본성 안에 깊숙이 뿌리내린 악의 깊이와 다른 한편으로는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인간이 지닌 자유와 존엄성의 높이를 동시에 과소평가하는 데 기인한다. 세상 사람들이 하느님에 대한 책임을 망각한 채 어떤 지상적 공동체(=이데올로기적 사회체제)에 충성하고 세상적 권세에 순종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선언하였다.

이와 같은 1948년 총회는 세계 제2차 대전의 상처와 중국혁명, 미소 냉전 체제 등 당시 세계의 격변에 대응하는 세계 교회의 신학적 입장을 잘 보여 준다. 총회는 당시 세계를 위협하는 주요한 요소로서 하나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의 경제적 집중과 부의 편중 및 공산주의 체제하에서의 경제적 정치적 권력의 집중을 동시에 지적하고 있다. 그러므로 에큐메니컬 운동이 사회주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흔히 "WCC는 용공이다"고 매도하면서 마치 WCC가 공산주의에 일방적으로 경도된 것처럼 말하는 것은 사실을 호도하는 것이다.

1948년 총회 보고서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왜 현대의 전체주의적 공산주의가 수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키는가를 기독교는 자문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기독교야말로 소외되고 억눌린 사람들과 연대의식을 갖고 도움으로써 인간 평등과 보편적 형제 주의의 비전을 회복해야 한다고 선언한다." 한편 공산주의는 새로운 형태의 부정의와 억압을 초래했고 불필요하고 터무니없는 정치 선전을 일삼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이어서 보고서는 왜 기독교가 공산주의와 적대관계에 있는지 지적한다. 1)역사 내에 인간의 완전한 구원을 약속하며, 2)새 질서의 주체인 프롤레타리아 계층은 죄가 없다고 주장하며(프롤레타리아의 완전한 역사적 정당성), 3)결정론적 유물론에 입각한 인간론, 4)적대자에 대한 무자비한 타도, 5)공산당에 대한 절대적 충성 요구와 일당 독재를 지향하는 점들을 나열하였다.

한편 자본주의 역시 다음과 같이 기독교의 가치와 배치된다고 지적하였다. 1)인간의 필요를 충족시켜야 할 경제의 주된 임무를 상실하고 모든 부를 소수 자본가에게 예속시켰고, 2)불평등을 초래하여 가난한 자에게 고통을 안겨 주었고, 3)황금만능주의와 물질주의를 만연하게 하였고 4)집단적 실업과 해고를 초래한 점 등을 지적하였다. (앞의 자료, pp. 541~543)

이렇듯 1948년 대회에서 WCC는 기독교의 초월적 입장에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병폐를 동시에 비판하고 있으며, 세계 교회는 사회혁명이 아닌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 앞에 더욱 책임적 사회를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와 같은 입장은 1954년 에버스턴 총회에서도 견지되었는데 이 대회 역시 공산주의의 전제주의적 통치를 배격하는 동시에 교조적인 반공 주의를 동시에 비판하였다.

한편 1966년 <교회와 사회> 제네바 대회는 이데올로기를 그리스도교의 관점에서 불의한 현실을 더욱정의로운 세상으로 변혁시키기 위한 힘으로 간주함으로써 처음으로 긍정적으로 해석하였다. 이는 그 동안의 제삼세계에 전개된 해방 운동과 사회 변혁 운동에 영향을 받은 결과이다. 1960년대에 해방신학은 자본주의가 야기한 구조적 가난과 억압적 상황에 놓여 있는 민중을 해방시킬 수 있는 혁명과 사회주의에 대해 호의적으로 평가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에도 사회주의는 신학적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삶,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 사건의 견지에서 평가되고 재해석되는 과정을 통하여 수용되었다.

그럼에도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주의를 가장 그리스도적인 이념으로 평가하고 선호하는가 하면,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몸서리치며 사회주의를 거부하기 때문에 교회 분열의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

기독교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세상은 하느님나라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한 복음의 핵심은 "하느님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이다. 하느님나라가 무엇인지,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루가복음 4장 등 복음서에 다양한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느님나라에서는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 죄인들이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인정받고 그들의 삶이 회복된다.

이러한 하느님나라는 노동계급이 권력의 주체가 되어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 대로 소비할 수 있다는 이상적인 공산주의와 어느 정도 유사성이 있지만, 현실에서의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공산주의는 혁명을 위한 폭력을 정당화함으로써 폭력의 악순환과 반공주의라는 증오를 낳았고, 공산 국가들은 결국 소수의 당 관료와 최고 권력자만을 위한 독재국가로 전락하고 말았다. 마침내 20세기 말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붕괴한 공산주의 체제는 공산주의 이론이 인간의 죄성과 욕망을 간과한 허구적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지난 역사를 통해 입증되었다.

물론 자본주의 역시 인간에게 이루 열거할 수 없는 많은 고통을 안겨다 주었고 오늘날 신자유주의 시대의 금융 자본주의 체제는 더욱 소수에게 부의 집중을 가져다주고, 인구의 상당수를 기아와 질병의 질곡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이런 점에서 하느님나라는 결코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를 통해서 완성되지 않는다. 하느님나라는 자본주의 혹은 공산주의에 예속되지 않는다.

그런데 일부 기독교인들은 하느님을 인정하는 자본주의는 기독교, 무신론에 기반한 공산주의는 반기독교라고 단순화시켜 자본주의 입장을 대변하여 반공 이데올로기 투쟁에 앞장선다. 이번에 1. 13 공동선언문에서 공산주의 반대를 표명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섬기는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돈이다. 성서는 곳곳에서 하느님 대신 금을 섬기는 것이 곧 우상숭배이며 하느님에 대한 배신임을 증언하고 있다. 공산주의의 이론적 토대인 과학적 유물론이 무신론인 것처럼, 자본주의의 물신숭배도 심각한 하느님에 대한 도전이며 불신앙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이 특정한 이데올로기의 무비판적인 신봉자가 되어 다른 이념을 반대하는 일에는 신중해야 한다. 하느님나라의 지평은 자본주의보다 더 넓고 공산주의보다 더 높기 때문이다.

2. 동성애

교회 안의 동성애 문제는 서구와 북미 교회에서 심각한 현안이다. 주로 두 가지 문제인데, 하나는 동성애자를 교회 공동체가 어떻게 수용, 혹은 단죄할 것이냐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동성애자의 성직 수임 문제이다. 전통적으로 동성애는 교회 안에서 끔찍한 죄악으로 단죄되어 왔다. 동성애자임이 드러나면 불명예스럽게 제거되거나 추방되었다. 전제주의 국가도 때때로 동성애자에 대한 탄압이 가해졌다. 히틀러에 의해 가스실로 보내진 사람들의 두 번째 큰 부류는 동성애자였다. 그들은 동성애자라는 식별 표시로 분홍 삼각천을 달아야 했으며 약 50만 명이 처형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동안 WCC는 동성애에 관한 윤리적, 신학적, 교회론적 문제를 직접 발표하지는 않았으나, 1961년 WCC 뉴델리 총회에서 서유럽과 북미의 회원 교단들의 요청에 의하여 인간의 성(human sexuality)문제가 세계 교회의 의제로 최초로 등장하게 되었다. 1968년 WCC 제4차 총회가 스웨덴의 웁살라(Uppsala, Sweden)에서 개최되었을 때 총회 대표들은 일부다처·결혼·독신·피임·이혼·낙태 그리고 또한 동성애 등의 문제점들에 대한 진지한 연구를 하여, 교회들이 책임 있는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지침을 만들었다. 1991년 제6차 캔버라 총회는 교회를 향해 동성애자에 대한 목회적 책임을 강조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 검토하고 연구하도록 제안했다.

이에 따라 WCC 교육국은 동성애를 포함한 전반적인 인간의 성 윤리와 관련된 교회의 입장을 수렴하여 교회가 인간의 성과 관련된 정의에 대한 목회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연구 지침서를 만들기 시작하여 1990년에는 <계약 안에서 하느님과 이웃과 더불어 살기 : 성과 인간 관계에 관한 연구 지침, Living in Covenant with God and One Another : A Guide to the Study of Sexuality and Human Relations(Geneva : WCC, 1990)>이 출판되었다. 이어서 계속된 연구는 <투명성을 위한 질문, A Quest for Clarity (Birgitta Larsson, The Ecumenical Review, Vol. 50/1, WCC Publications, Geneva, 1998)이란 보고서로 출판되었다.

여기에서는 오늘날 아주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는 가족 형태 및 라이프 스타일은 교회로 하여금 인간의 성(Human Sexuality)에 대한 더욱 폭넓은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는데 혼전 성관계, 단기간의 결혼 혹은 혼외 성관계, 일부다처제, 결혼과 독신주의, 동성애 등의 문제들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으며, WCC는 소속 회원 교회들의 요청에 응답하여 다양한 연구를 통하여 인간의 성 문제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고자 하며, 이 연구는 서로 다른 처지에 놓여 있는 회원 교회들의 문화적 상황을 사려 깊게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캔버라 총회 이후 동성애 문제는 가장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주요 의제가 되었다. 캔버라 총회에 방문한 게이와 레즈비언 단체 대표들은 중앙위원회 의장에게 제출한 문서를 통해 성적 취향의 의제는 가정-생활-교육국이 아닌 정의국에서 논의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1994년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중앙위원회에서는 특별히 여성 동성애자에 대한 폭력에 관한 보고서는 뜨거운 논쟁을 불러 왔다. 1998년 제 8차 WCC 총회가 짐바브웨에서 열리게 된다는 발표가 있자 네덜란드의 한 언론인은 기자회견을 통해 짐바브웨에서 자행되고 있는 독재자 무가베 대통령의 동성애자에 대한 무자비한 억압과 처벌 사례를 보도하였고, WCC는 총회 준비 기간 내내 짐바브웨에서 멈추지 않는 동성애자에 대한 비인권적 탄압으로 인해 동성애자 단체로부터 강력한 항의를 받기도 하였다.

이러한 분위기는 총회로 계속 이어져 성적 취향(Sexual orientation)의 자유에 대한 찬반 논쟁이 격렬하였고, 동성애를 수용하는 유럽과 북미의 자유주의적 교회들과 이를 죄악시하는 보수 진영 및 아시아 아프리카 교회들의 대립이 첨예화되었다. 하라레 총회 이후 WCC는 회원 교회들이나 회중들이 서로 상반된 견해를 더욱 차분하고 사려 깊은 대화를 통해 해결하도록 권유하였으나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진 것으로 보인다. 2006년 WCC 남미 브라질의 포르토알레그레(Porto Alegre)에서 개최된 제9차 총회에서는 개인의 성적 취향(Sexual Orientation)에 대한 더욱 폭넓은 지지가 표명되었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도 북미에서 동성애에 대해 관용적이거나 동성애 성직자를 수용하는 교회들은 점점 더 늘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성공회가 동성애자 성직 인정으로 격렬한 논쟁과 분열의 위기를 겪고 있다. 또한 미국장로교(PCUSA) 총회에서 동성애 우호적 결의를 통과시키자 교단에 소속된 약 800여 교회들은 교단을 탈퇴하고, 새로운 교단(ECO, The Evangelical Covenant Order of Presbyterians)을 창립하기도 하는 등 동성애는 오늘날 교회의 뜨거운 감자이다. 동성애 문제에 대한 시각에 있어서 북미와 유럽의 교회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교회가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다.

물론 성서에 따르면 동성애는 죄악으로 묘사되어 있다. (창 18:20~21, 19:4~5, 레 18:22, 롬 1:24~32, 고전 6:9~10) 하지만 오늘날 주류 심리학 및 의학의 관점에서 동성애는 육체적 질병이나 정신병리학적 문제로 분류되지 않는다. 통계에 따르면 인구 중 최소한 3% 내지, 많게는 10% 정도가 동성애자 혹은 그러한 경향을 지닌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는 어느 장소에나, 어느 집단이나 자연스럽게 동성애자가 포함되어 있음을 의미하며 당연히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동성애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도 아니다. 한때 에이즈를 전파하는 원흉으로 지목되기도 했으나 현대 의학적으로 별로 근거가 없음이 밝혀지기도 했다. 동성애를 죄악시할 경우 집단 동성애자로 타고난 교회와 사회 안의 일부 구성원들을 죄인으로 규정하고 소외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만일 동성애 현상이 본인의 의지로 바꿔지지 않는 천성적으로 타고난 성적 취향이며 자연스러운 현상의 일부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동성애는 단죄받아야 할 죄악이 아니라 소수자의 문제로 보는 것이 상식적 접근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기석 / 성공회대 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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