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 4일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에큐메니컬 신학 심포지엄이 열렸다. 생명평화마당이 주최한 심포지엄에는 신학대 교수들이 발제자로 나서, WCC 공동선언문 4개 조항에 반박했다. (사진 왼쪽부터 ) 이영미‧김경재‧강원돈‧이치만‧김은규‧김정숙‧김기석 교수. ⓒ뉴스앤조이 이용필

생명평화마당이 에큐메니컬 신학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WCC 공동선언문 4가지 조항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2월 4일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심포지엄에는 신학생부터 노교수까지 100명 이 넘는 인원이 참석했다

사회를 맡은 강원돈 교수(한신대)는 "WCC 공동선언문을 신학적으로 검토하고, 교계 이슈들에 대한 신학자들의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신학 심포지엄에는 김기석(성공회대)·김은규(성공회대)·이정배(감신대)·이영미(한신대)교수가 참석해 차례로 '공산주의·인본주의 및 동성애, '개종 전도 금지 반대', '종교 다원주의', '성서무오설'에 대해 발제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독교는 이념 초월한 하나님나라 지향…동성애 상식적 접근 필요

▲ 김기석 교수는 "WCC 에큐메니컬 운동과 신학은 특정 정치사상 또는 사회체제 구성 원리로서의 이데올로기를 신봉하지 않는다. 오히려 늘 그 한계를 지적해 왔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김기석 교수는 한국의 보수 신학자들이 흔하게 문제 삼는 이념 문제에 대해 발제했다. 발제에 앞서 김교수는 "주로 '종교와 과학의 대화'를 다루는데, WCC 공동선언문의 심각성을 깨닫고 이번 주제를 맡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보수 기독교인들은 WCC가 용공주의를 옹호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김 교수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WCC 에큐메니컬 운동과 신학은 특정 정치사상 또는 사회체제 구성 원리로서의 이데올로기를 신봉하지 않는다. 오히려 늘 그 한계를 지적해 왔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한편으로 WCC가 사회주의의 관점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측면은 존재한다고 했다. 회원 교회 일부가 사회주의 체제 안에 있고, 에큐메니컬 운동에 영향을 끼친 사회정의와 사회 평등 운동에 기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WCC가 자본주의를 차별하는 것도 아니다. WCC는 1948년 암스테르담 총회에서 공산주의와 자유방임적 자본주의 이념을 모두 배척하고 독자 노선을 추구했다.

김 교수는 기독교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세상은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하나님나라'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자본주의가 섬기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돈이다. 성서는 곳곳에서 하나님 대신 금을 섬기는 것이 우상숭배라고 증언하고 있다"고 했다.

동성애와 관련해 김 교수는 오늘날 교회의 '뜨거운 감자'라고 표현할 만큼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김 교수는 동성애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도 아니며, 한때 에이즈 전파 원흉으로 지목됐지만 현대 의학에서 근거 없음으로 밝혀졌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김 교수는 "동성애를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적 취향으로 인정한다면 단죄받아야 할 죄악이 아닌 소수자의 문제로 보는 게 상식적인 접근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개종 전도, 이웃 종교에 대한 폭력

▲ 개종 전도와 관련해 김은규 교수는 폭력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이 벌인 봉은사 땅 밟기는 이웃 종교에 대한 매우 유치한 공격적인 폭력이다"고 예를 들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김은규 교수는 '2012년 WCC 선교와 전도 확언을 위한 제안'에 나온 '변혁적 영성과 투쟁, 저항으로서의 선교' 조항을 근거로 '개종 전도'를 비판했다. 김 교수는 "과거와 현재도 기독교의 선교는 진리의 우월함을 내세워, 이웃 종교와 문화를 제압하고 파괴하는 방식이다"면서도 "문서에서 제시한 선교 동력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의 변혁 운동이며 상생하는 삶이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또 '진정한 전도' 조항에서 기독교의 식민지적 선교 방식에서 나온 부작용이 현재 전도 방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고 했다. 이에 김 교수는 기독교가 식민지적 선교 방식을 탈피하고 전도의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전도는 세상의 구원이며, 하나님의 영광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고난과 부활을 중심으로 하면서 전도 대상들에 대한 상호 존중과 종교의 자유, 공공의 선을 위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개종 전도와 관련해 김 교수는 폭력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이 벌인 봉은사 땅 밟기는 이웃 종교에 대한 매우 유치한 공격적인 폭력이다"고 예를 들었다. 또 외국인 근로자가 120만 명이나 되고 각자 고유한 종교가 있는데, 많은 교회가 이들을 개종하는 데 주력한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한국교회가 정작 이들을 위한 열악한 노동환경이나 저임금 문제에 관심 갖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오늘날의 선교‧전도 정책은 과거 유럽 기독교 국가가 식민지 시대에 패권주의를 구가하던 시절과 다르다고 했다. 과거 기독교는 우월적·배타적·공격적인 선교와 전도로 개종에만 관심을 가졌다고 했다. 김 교수는 "선교‧전도 정책은 다원화 된 세계에서 인종·체제·이념을 극복하고 종교 간 상호 존중의 자세로 정의·평화·생명을 이루는 공동의 목표를 이루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고 했다.

▲ 에큐메니컬 신학 심포지엄에는 신학생부터 노교수까지 100명 넘게 참석했다. 참석자 대다수가 WCC 공동선언문에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었으며, 반대 의견은 없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종교 다원주의, 종교 혼합주의로 매도해서는 안 돼

▲ 종교다원주의를 발제한 이 교수는 "기독교 신학자치고 어느 누가 혼합주의를 바라겠느냐. 종교다원주의를 종교혼합주의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세 번째 발제자로 나선 이정배 교수는 시작과 함께 WCC 공동선언문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같은 성서를 보고도 (어떻게) 이런 공동선언문을 만들어 낼 수 있느냐"며 씁쓸해했다. 이 교수는 오히려 WCC가 시리아에서 열렸어야 했는데, 한국교회의 허영주의로 인해 한국에서 열리게 됐다고 했다.

종교다원주의 발제를 맡은 이 교수는 타 종교란 말 대신 이웃 종교라는 표현을 썼다. "WCC는 타 종교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이미 우리나라 7대 종단이 모여 타 종교란 말 대신 '이웃 종교'란 말을 쓰기로 협의했다"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이 교수는 "1989년 샌안토니오에서 열린 CWME(세계선교와복음위원회)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어떤 다른 구원의 길도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 구원 능력을 제약할 수도 없다'고 했다. 이런 시각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WCC가 기독교와 이웃 종교 간의 긴장을 유지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이 명제는 이웃 종교 안에서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교수는 그렇다고 이를 종교혼합주의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 교수는 "기독교 신학자치고 어느 누가 혼합주의를 바라겠느냐. 종교 다원주의를 종교 혼합주의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했다.

"성경 오류 비평은 하나님의 숨은 뜻 밝혀내는 것"

WCC 공동성명서 마지막 조항에는 '성경 66권은 하나님의 특별 계시로 무오하며 신앙과 행위의 최종적이고 절대적인 표준임을 천명한다'는 문구가 들어 있다. 이영미 교수는 이 조항에 대해 "성경무오설이라는 근본주의적 교리를 통해 자신들의 신앙을 절대화하는 한편 특정 교회나 개인의 신앙과 행동을 비복음주의적·반복음주의적인 것으로 매도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비판했다.

▲ 성경무오설과 관련해 이영미 교수는 "일점일획의 오류도 없는 성경은 불행하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교수는 현재 우리가 가진 성경은 성경 복사본의 복사본을 가지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이 교수는 "성경 안에는 과학적, 연대기적 오류나 내용 간의 모순이 존재한다. 창세기 6장 12~22절과 7장 1~5절은 같은 사건을 묘사하면서 전자는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을 후자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방주로 데려올 것을 명령한다. 또 창세기 5장의 족보로 시작해 연대를 따져 가면 천지 창조부터 약 6000년이 되는데, 이 사실은 과학적 사실과 정면 배치한다"고 예를 들었다.

그러나 이 교수는 성경 안의 오류를 지적할 때 '주장'과 '설명'의 차이를 잘 구별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성경의 오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안에 오류가 포함돼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들춰내 '설명'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이어 "성경에 오류가 없다는 주장은, 근본주의 교리에 대한 지지를 성경의 무오성에서 끌어내려는 무모한 노력"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성경이 하나님의 선한 의도와 계시의 온전성을 인간의 언어적·문화적·사회적 한계를 책 안에 담아내지 못했다고 했다. 아울러 인간적 오류와 편견이 성경 안에 함께 보존된 채 전승됐다고 했다. 이 교수는 "성경의 오류를 인정하고 비평하는 것이 하나님 말씀 자체를 비판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책으로 담은 인간이라는 도구의 편견과 오류를 지적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편 이날 공동선언문 폐기 선언과 함께 WCC 한국준비위원회 집행위원장직을 사임한 교회협 김영주 총무 이야기도 논의됐다. 참석자들 다수가 김 총무의 사퇴를 반기는 분위기였다. 에큐메니컬 진영 선두에 서서 WCC 공동선언문 폐기를 주장해 온 김희헌 목사는 "늦은 감이 있지만 김 총무가 책임 있는 행동을 보였다"고 했다. 반면 김기석 교수는 집행위원장이 공석이 되면서 교회협 내부에서 WCC를 실제로 이끌어 갈 주체가 사라졌다며 우려하기도 했다. 이정배 교수는 특정 대형 교회 목사가 WCC를 이용해 자신의 업적을 쌓으려 한다며 비판했다. 이 교수는 "WCC 한국준비위원회를 재개편하고 WCC 회원 교단과 교회협 중심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WCC 공동선언문 사태는 에큐메니컬 진영의 반발을 불러왔고, 신학 심포지엄으로 이어졌다. 한 참석자가 발제문을 보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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