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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에 이들을 찾아 나선 까닭

평택·아산·울산 투쟁 현장 방문기…교회, 이념의 함정 피하고 내몰린 사람 품어야

구권효 기자   기사승인 2013.01.05  23:4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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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시대다. 지난 10월과 11월, 각각 울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두 명과 평택 쌍용자동차 노동자 세 명이 회사 인근 고압 송전탑에 올라갔다. 아산 유성기업 노동자 한 명도 10월 회사 근처 굴다리 위로 올라가 천막을 쳤다. 그들은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에서 짧게는 48일, 길게는 76일을 버티고 있었다.

사람이 목숨을 내놓고 진실과 정의를 외치는 판에 정작 교회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두 팔 걷어 부치고 농성자 위로에 나선 교회는 극히 소수다. 대부분 교회는 성탄절과 송구영신 예배 준비에 바쁘다. 이전에 내가 다녔던 교회는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얘기를 불편해했다. 교회는 줄곧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가르쳤지만, 막상 그런 곳에는 성경을 잘 적용하지 않았다. 몇몇 목사와 장로들은 나의 사상을 심각하게 걱정하기도 했다.

   
▲ 노동자들이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있다. 평택 쌍용차와 울산 현대차 노동자들은 회사 인근 송전탑에 올라갔다. 아산 유성기업 노동자는 굴다리로 올라갔다. 왼쪽부터 평택, 아산, 울산 고공 농성장. ⓒ마르투스 구권효

하지만 고공 농성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으로서 일종의 부채 의식을 느꼈다. 내가 할 일을 남이 하고 있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늘 있었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정의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앞장서야 한다. "함께 살자"는 외침은 성경의 메시지가 아니던가. 특별히 해 줄 수 있는 건 없지만 "잊지 않고 있었다", "미안하다", "응원한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극심한 추위에 사람의 체온이라도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2012년의 마지막 날, 나는 고공 농성 현장을 방문하기로 했다. 평택과 아산을 거쳐 울산에서 송구영신 예배를 기획한 CBS 기독교 시사 프로그램 '크리스천 NOW' 팀을 따라나섰다. 함께여는교회 방인성 목사를 비롯한 교인 4명과 촛불교회 최헌국 목사, 무지개교회 박성진 목사도 함께했다.

   
▲ 크리스천 NOW 팀과 함께여는교회 등 참석자들은 출발하기 전 농성자들을 위해 격려·응원의 메시지와 목도리, 장갑 등 기본적인 방한 용품을 준비했다. ⓒ마르투스 구권효
   
▲  처음에는 무슨 말을 써야 할 지 몰라 망설였지만, 이내 하고 싶은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마르투스 구권효

위태로운 농성자들, "우리 얘기를 들어 달라!"

고공 농성 현장은 처절했다. 평택 쌍용차와 울산 현대차 노동자같이 송전탑에 올라간 경우는 철탑 중간에 쇠파이프와 합판, 플랜트로 바닥을 만들고 천막을 쳤다. 지상으로부터 25m 정도 떨어진 곳이다. 아산 유성기업 노동자는 특이하게 굴다리 옆에 쇠파이프로 앵글을 짜고 천막을 쳤다. 가로 1m 세로 2m 높이 1m 정도의 작은 공간이다. 음식, 씻을 물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은 지상에 있는 조합원들이 밧줄을 통해 올려 준다. 변도 이런 식으로 내린다.

   
▲ 평택 쌍용자동차 농성장에 도착했다. "송전탑 농성 42일째"라는 현수막과 함께 벌판에 우뚝 솟은 철탑이 위압감을 줬다. ⓒ마르투스 구권효
   
▲ 아산 유성기업 노조는 회사 정문으로 통하는 길 굴다리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마르투스 구권효
   
▲ 울산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도 공장 인근 송전탑에 올라갔다. 12월 31일, 76일째였다. ⓒ마르투스 구권효

여기에 찬바람이 불고 얼음이 얼면 잠도 제대로 못 잔다. 12월 31일 아침 기온은 영하 13도였는데, 이 정도면 고공에서는 체감 온도 영하 20도 이하다. 고공 농성자들은 감기를 달고 산다. 평택 송전탑같이 전류가 흐르는 곳에서는 이명을 앓기도 한다. 울산 송전탑은 바다가 앞에 있어 쉬지 않고 바람이 분다. 아산 굴다리 옆은 4차선 도로다. 차가 지나가면서 몰아치는 후폭풍이 매섭다.

   
▲ 유성기업 노조가 투쟁 중인 굴다리 위는 4차선 국도다. 차가 쌩쌩 달리면서 몰아치는 바람이 매섭다. 고공 농성 중인 홍종인 지회장은 차가 지나가는 소리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고 했다. ⓒ마르투스 구권효
   

▲ 쌍용차 노조가 고공 농성 중인 철탑 아래에는 쌍용차 노조 조합원들의 천막이 있다. 이곳에서 조합원이 10여 명씩 돌아가며 숙식을 한다. ⓒ마르투스 구권효

   
▲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은 밧줄에 올려 보낸다. 조합원들은 고공 농성자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마르투스 구권효

이들이 높은 곳에 올라가는 이유는 한 가지다. 우리의 얘기를 좀 들어 달라는 거다. 이들은 모두 회사로부터 정리 해고를 당하거나 탄압을 받은 노동자다. 회사는 경영상의 이유를 들며 수천 명의 밥줄을 끊었지만, 몇몇 자본가들은 오히려 배를 불렸다. 거기에 용역과 공권력을 통한 폭력, 부당한 사법 판결, 정부의 방치, 언론 조작, 국민의 무관심은 이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다.

수년 간 수십 명이 죽어 나가고 분신을 했다. 그래도 권력자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모든 걸 잃은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고공 농성은 어쩌면 이들의 위태로운 상태를 잘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농성자들은 스스로 허공에 몸을 맡겼지만, 정확히 말하면 이들은 사회로부터 '내몰린' 것이다.

   
▲ 크리스천 NOW 팀은 평택 고공 농성자들과 직접 통화를 하기도 했다. 한상균 전 지부장은 "영하 20도의 추위도 견딜 수 있다"며 "조합원들과 잊지 않고 찾아 주는 분들이 우리의 힘이고 희망이다"라고 말했다. ⓒ마르투스 구권효
   
▲ 멀리 그들을 해고한 쌍용차 공장이 보인다. 철탑 위 사람들은 매일 공장을 바라다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마르투스 구권효

한국교회여, 이념의 노예가 되지 말라

하지만 슬픈 자들을 위로하고, 권력자의 부당함에는 저항해야 할 교회의 방문은 뜸하다. 지금은 그나마 연말이라 몇몇 교회들이 농성 현장을 방문했지만,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교회는 없다.

   
▲ 평택, 송전탑을 바라보며 예배를 드렸다. 오산이주동자센터와 한국기독청년연합회(한기연) 사람들이 몇몇 찾아 왔다. ⓒ마르투스 구권효
   

▲ 하루빨리 문제가 해결되어 농성자들이 무사히 내려올 수 있도록 기도했다. 신자이든 비신자이든 예배를 함께 드렸다. ⓒ마르투스 구권효

   
▲ 평택 쌍용차나 울산 현대차 노조 투쟁에 비해 아산 유성기업 노조 투쟁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함께 살자"는 이들의 외침을 굽어 살피시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마르투스 구권효
   
▲  울산 농성장에서 드린 예배. 울산 농성장에는 지역 교회의 관심이 필요하다. ⓒ마르투스 구권효
   
▲ 함께여는교회 방인성 목사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이념적으로 보지 말라고 했다. "예수님이 이 시대에 오셨으면 이런 자들과 함께 우셨을 것"이라고 방 목사는 말했다. ⓒ마르투스 구권효

평택은 2006년 대추리, 2009년 쌍용차 사건을 겪으면서 주민들이 오히려 보수 성향을 띄게 됐다. 지역 정서상 교회가 노동자들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어렵다. 쌍용차 노조의 한 조합원은 열심 있는 신자였는데, 교회가 사 측 편을 들면서 마음이 힘들어 교회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한 대형 교회에는 쌍용차 경영진도, 노조 조합원도 다닌다. 교회는 가끔 조합원에게 위로금을 건네기도 하지만 거의 회사 측 입장을 대변한다. 지역 정서에 성경의 메시지가 침묵을 강요당한 셈이다.

울산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의 한 조합원은 "울산 지역 교회의 99%는 보수 성향일 것"이라고 말한다. 고공 농성 77일을 맞았지만 교회에서는 한두 번밖에 오지 않았다. 그 조합원은 한동안 울산 지역에 노동자들을 위로하는 민중 교회를 다녔는데, 지금은 그곳도 그냥 보통 교회와 똑같아졌다며 아쉬워했다. 요즘도 가끔씩 교회를 찾는다는 그는 "기독교가 너무 기복 신앙이 되었다"며 오히려 교회를 걱정하고 있다.

평택 쌍용차와 울산 현대차에 비해 덜 알려진 아산 유성기업 농성 현장은 찾는 사람이 적어 외로움이 크다. 그래도 교회의 참여는 다른 곳에 비해 많은 편이다. 아산 지역 목회자들이 만든 아산인권선교위원회가 "정당한 요구를 힘으로 밀어붙이는 회사의 만행이 너무 잔인하고 악하다"며 유성기업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이들은 돌아가면서 농성장을 찾아 기도회를 열고 있다.

 

 

 

 

 

 

 

 

 
▲ 촛불교회 최헌국 목사는 "성서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평등하고 공평하게 정규직으로만 살아가야 할 존재라고 가르친다"고 말했다. ⓒ마르투스 구권효

아직도 한국교회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이념적으로 보는 성향이 강하다. 일부 교회는 이들을 위로하기는커녕, '빨갱이'로 규정짓는데 앞장서기도 했다. 함께여는교회 방인성 목사는 평택 농성장에서 "이들의 요구는 '함께 살자'는 것인데 한국교회가 노동자의 투쟁을 너무 이념적으로만 보고 있다"며 "예수님이 이 시대에 오셨다면 이런 자들과 함께 우셨을 것"이라고 탄식했다.

한국교회가 자꾸 이데올로기의 함정에 빠지는 이유는 사회구조의 문제를 인식하는 데 취약하기 때문이다. 농성자들이 거칠게 시위하는 모습만 보고 무조건 비난할 게 아니라 무엇이 그들을 고공으로 내몰았는지를 인지해야 한다. '크리스천 NOW' 진행자인 김응교 교수(숙명여대)도 이를 지적했다. 김 교수는 "노동자들이 부당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며 "기독교가 구제에만 힘을 쏟지 말고, 농성자들과 함께 사회구조 변혁에도 함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투쟁 현장을 찾아다니며 희망의 불씨를 이어 가고 있는 촛불교회 최헌국 목사는 비정규직 제도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울산에서 드린 송구영신 예배에서 그는 "성서 어느 곳을 보더라도 비정규직이라는 제도는 없다"며 "성서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평등하고 공평하게 정규직으로만 살아가야 할 존재들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천명했다.

   
▲ 유성기업 노조 시위 현장. 함께여는교회 교인들이 준비한 메시지와 선물을 전달했다. 홍종인 지회장이 받은 응원 메시지를 펼쳐 보이고 있다. ⓒ마르투스 구권효
   
▲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홍 지회장을 응원했다. 반드시 승리해서 몸 건강히 내려올 수 있기를 빈다. ⓒ마르투스 구권효

고공 농성, 정의로운 세상에 '새잎' 되길

   
▲ 송전탑 중간에 쇠파이프와 합판으로 바닥을 만들고 천막을 쳤다. 한상균 전 전국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장, 문기주 정비지회장, 복기성 비정규직수석부지회장이 고공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마르투스 구권효
   
▲ 홍종인 유성기업 노조 아산지회장이 굴다리 옆에 한 평 남짓 되는 공간에서 고공 시위를 벌이고 있다. 홍 지회장은 사 측이나 공권력에 의해 끌려 내려가지 않고, 스스로의 의지를 다잡기 위해 목에 밧줄을 두르고 있다. ⓒ마르투스 구권효
   
▲ 철탑에는 전국금속노조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 소속 천의봉 사무국장과 최병승 조합원이 올라가 있다. 바다에서 부는 바람이 뼈에 스민다. ⓒ마르투스 구권효

고공 농성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서려 있다. 기독교인들이 이들의 투쟁에 무관심한 건 어쩌면 고공 농성 자체가 너무 험하고 위태로워, 마주 보기가 불편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미련해 보이는 것과 거리끼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요 능력이었다는 성경의 말씀을 알고 있다. 마음의 불편함을 바로 보고, 미안한 마음이 들거든 찾아가 기도하자.

부디 이 추위가 가시기 전에 이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져 농성자들이 무사히 내려올 수 있기를 바란다. 이들의 요구는 회사가 거짓말을 그만하는 것,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 불안한 일자리를 없애는 것, 2013년 연말은 가족과 함께 맛있는 저녁을 먹는 것이다. 모두가 인간답게 '함께 사는' 세상이 오는 것이다.

   
   
▲ 유성기업 노조 홍 지회장의 아내와 아들이 저녁 식사를 챙기러 들렀다. 아내는 홍 지회장을 생각하며 한 자 한 자 눌러 쓴 편지를 읽어 주기도 했다. 편지를 읽어 내려가는 아내의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이내 목이 메였다. ⓒ마르투스 구권효

울산 현대차 노조의 한 조합원은 송구영신 예배를 마치고 철탑 위 동지들을 생각하며 노래를 불렀다. 고공 농성의 몸짓이 정의로운 사회의 새잎이 되길 빈다.

저기를 보아라 새잎이 돋아온다
고목에 새로 새로 새잎이 돋아온다
따사로운 봄볕에 실눈을 부비면서
아가의 여린 손 마냥 새순이 돋아온다

하! 연둣빛 새 이파리
네가 바로 강철이구나
엄혹한 겨울도 두터운 껍질도
자신의 힘으로 보드라움으로 이겼으니

썩어가는 것들 크게 썩은 바로 그곳에서
분노처럼 불끈불끈 새싹이 돋는구나
부드러운 만큼 강하게 여린 만큼 우람하게
아! 썩어진 고목에 새록새록 새잎이 돋는구나

강철 새잎이 돋는다

- 강철 새잎(박노해 시, 조민하 곡) 

   
▲ 악수와 포옹으로 작별 인사를 했다. 특별히 해 줄 수 있는 건 없지만 사람이라면 체온이라도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마르투스 구권효

구권효 / <마르투스> 기자
본보 제휴 <마르투스>(www.martus.or.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BS 크리스천 NOW 농성장 로드다큐, '2013 철탑에 오른 노동자'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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