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 유화 2863, 콜트콜택 2154, 재능교육 1830, YTN 1538, 유성 586, 영남대의료원 455, 현대자동차 68. 이명박 정부 아래서 파업을 시작한 사업장과 일인 시위나 고공 시위 등으로 12월 24일 현재까지 노동자들이 버틴 날짜다. 지난 12월 19일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된 후 이 땅의 노동자 현실을 보여주는 숫자가 하나 더 늘었다. 3. 바로 박 후보가 당선된 뒤 목숨을 끊은 노동자들 숫자다.

2009년 시작된 쌍용자동차 사태는 이명박 정부가 노동자를 어떻게 대우하는지 극명하게 보여 주는 사건으로 4년이 흐른 지금도 진행 중이다. 지난 11월 20일에는 한상균 전 전국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장, 문기주 정비지회장, 복기성 비정규직수석부지회장이 평택 쌍용자동차 앞 송전탑에 올라 고공 농성을 시작했다. 김정우 지부장이 쌍용자동차 국정 조사와 정규직 전환,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41일간 단식하다 병원에 실려 갔으나, 사 측도 정부도 침묵하는 상황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 쌍용자동차 노동자 3명은 송전탑 위에서, 20여 명은 송전탑 아래에서 시위하며 싸우고 있다. 기도회가 열리자 송전탑 위에 있는 노동자들은 천막에서 나와 손을 흔들며 참석자들을 반겼다. ⓒ뉴스앤조이 김은실

노동자들이 삶보다 죽음을 택하는 이 땅에서 개신교 단체들이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말씀을 들고 노동자들을 만났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목회사회학연구소·새벽이슬·평화누리·IVF사회부는 12월 24일 평택 쌍용차 송전탑 고공 농성 현장을 찾았다. 각 단체 회원들과 쌍용차 문제에 관심 있는 개신교인 50여 명이 동행했다.

▲ 지상 20m 높이의 송전탑에서 세 명의 노동자는 쇠파이프 몇 개와 합판에 의지해 버티고 있다. 송전탑 전기를 끊을 수도 없어 15만 4000볼트 전기도 그대로 흐르는 상태다. ⓒ뉴스앤조이 김은실

세 명의 노동자가 오른 송전탑은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불과 400m 떨어져 있다. 걸어서 5분 거리지만 노동자들은 20m 상공에 올라 제 일터를 바라만 보는 처지가 됐다.

송전탑 위를 지나는 굵은 전기선에는 15만 4000볼트 전기가 흐른다. 울산 현대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오른 송전탑은 전기를 차단하고 전기를 다른 전선으로 우회해서 흘려보내고 있지만, 평택 송전탑은 그럴 형편이 되지 못한다. 아래서 지켜보는 조합원들은 눈이나 비가 내리는 날 감전 위험에 더 가슴 졸인다. "송전탑이 사람 몸에 좋지 않다잖아요. 오래 있을 곳이 못 돼요. 저기는. 오래 있을 곳이…." 송전탑을 바라보던 양현근 조직실장은 말끝을 흐렸다.

"노동을 축복하는 하나님, 정의와 평화를 주십시오"

"하나님은 거룩한 노동을 통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마지막 날 안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선한 창조물인 자연계를 보살피고 지키는 일꾼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노동을 통해 개인과 가족의 필요를 채우고 이웃의 필요를 채워 주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지금 노동을 통한 하나님의 축복이 심각히 훼손되고 왜곡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오직 더 많은 부의 증진과 탐욕을 위해 실업이 정당화되고 해고가 정당화되고 있습니다. 노동을 향한 폭력적 지배가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송전탑 위에서 허공을 딛고 선 노동자와 송전탑 아래 도로변에서 천막을 치고 버티는 노동자들이 함께하는 기도회가 시작됐다. 최욱준 평화누리 국장은 노동의 가치가 회복되길 기원하며 "하나님처럼 거룩한 노동을 하시고 스스로 목수 노동자가 되셨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다.

"교회는 약자 편을 들어야 합니다. 약자의 변호사 역할을 대신해야 합니다. … 평화의 밭에 평화를 심으면 정의로 나타납니다. 평화는 약자들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가 평화를 심을 수 있는 하나의 텃밭입니다. 여기서 평화를 기원한다면 노동자 마음부터 평화가 시작되고 약자가 인간답게 사는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조성돈 기윤실 교회신뢰운동본부장은 설교에서 평택 농성 현장에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했다. 이번 기도회를 처음 발의한 사람이 조 본부장이다. "성탄절에 어려운 분을 만나고 싶어 왔다. 아픔이 있는 곳이 밥 한 끼 나누는 의미 깊은 성탄을 보내고 싶었다." 조 본부장은 외투와 장갑을 벗고 "메리 크리스마스"로 인사하며 설교를 시작해 평화를 빌며 설교를 마쳤다.

"한상균 님, 힘내세요. 문기주 님, 힘내세요. 복기성 님, 힘내세요."

기도회 시작과 끝은 송전탑에 올라간 노동자들을 위한 단체 인사였다. 참석자들은 일어나 송전탑을 향해 목청껏 응원을 보냈다. 세 노동자는 양팔을 머리 위로 올려 흔들면서 인사를 받아 주었다. 얼어붙어 지저거리는 마이크를 통해 세 사람이 당부한 것은 "우리 모두 건강하게 내려가도록, 파업하고 있는 노동자 모두가 따뜻한 마음으로 일터에 돌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는 것"이었다. 기도회 참석자들은 온라인으로 모금한 153만 원과 현장에서 모은 헌금 42만 2000원을 노조원들에게 전달했다.

소통이 노동자를 살린다

투쟁 현장을 찾아 함께 예배하는 종교 단체는 많지만, 평택 지역 교회 중에 이들을 찾는 곳은 없다. 김남오 총무부장은 개신교인이지만 파업을 시작한 이후 교회에서 예배할 수 없었다. 현장을 떠나면 자기 대신 고생할 동지들 얼굴이 눈에 밟혔고, 복직해서 교회를 다니는 '살아남은 동지들'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던 탓이다. 회사 안에서도 매주 수요일 예배가 열린다. "노동자들과 예배하려고 쌍용자동차 공장으로 들어가는 목사들을 보면 (마음이) 그렇죠." 그래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변함없다.

점심시간에는 기도회 참석자와 노동자들이 이름을 소개하고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서석문 대외협력부장은 지속적인 관심과 소통을 호소했다. "사람 대부분이 다음에 다시 오겠다고 하고 다시 오지 않습니다. 약속을 지키는 분들이 0.5%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찾아왔다 가시면 힘이 나지만 떠나고 나면 정말 외롭습니다. 기다리다가도 힘이 빠집니다. 관심과 대화가 꾸준히 이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정부와 경찰도 두려워합니다." 서 부장은 버스가 평택을 떠나는 직전까지 버스에 올라 감사 인사를 전하고 소통을 요청했다.

▲ 해고 노동자들이 시위하고 있는 장소는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불과 5분여 거리에 있다. 기도회 참석자들 머리 위로 쌍용자동차 공장 모습이 보인다. ⓒ뉴스앤조이 김은실

"고공 농성을 시작한 뒤로 이곳에 오는 많은 분이 첫 방문자이십니다. (상황을 설명할 때마다) 많이 지치지만 즐겁습니다." 김득중 수석부지부장은 함께 점심을 먹은 후 찾은 회사 정문 앞에서 투쟁 과정과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내년은 더 힘든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 김득중 수석부지부장은 "회사 측이 노조원 개인을 상대로 240억 원 손해 배상을 제기할 것 같다"고 했다.

눈물을 나누려 찾아간 곳에서 참석자들은 진심 어린 환대를 받고 연대 의지를 얻었다. 이종혁 간사(사교육걱정없는세상)는 "우리가 중보 기도하러 왔다지만, 이분들이 우리를 맞아 주시고 기도할 수 있는 장을 허락해 주셨네요"라며 오히려 고마워했다. 평소 쌍용차 문제에 관심이 없었지만, 대선 전후로 사회 정치 문제에 관심이 생겨 기도회에 오게 되었다는 대학생 이은정 씨는 "노동자의 70%가 비정규직인 상황에서 이분들의 싸움은 우리 세대가 살아갈 때 해고와 비정규직이 당연시되는 것을 막는 일이에요. 우리 세대를 위해 싸워 주어 고맙습니다"고 전했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은 서울 대한문 앞에서도 투쟁하고 있다. 성탄절에는 '고난함께'가 대한문 앞에서 함께 예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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