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을 펼쳐 온 원로목사들이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독재자의 딸'로 규정하며, 박 후보와 유신 잔당에게는 국정을 못 맡긴다고 선언했다.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목정평·임광빈 상임의장) 전 의장단이 '정권 교체를 위한 시국 선언문'을 12월 10일 서울 연지동 기독교회관에서 발표했다. 전 의장단은 많은 이들에게 고통을 준 세력에게 국정을 다시 맡길 수 없으며, 이명박 정권의 실정을 바로잡고 무너진 민주주의를 다시 살리기 위해 정권 교체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목정평 전 의장단은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지금이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하고 긴박한 분기점이라고 생각해 정권 교체 선언을 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전 의장단은 먼저 1945년 일제 식민 해방의 감격을 만끽하기도 전에 분단이 된 한반도의 역사부터 언급했다. 이어 이들은 분단 이후 이승만 정권의 무능과 부패를 지적하고,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에 대해 총으로 만든 권력이라고 쓴소리를 냈다. 또한 군부 쿠데타, 유신 잔재 세력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것을 참회하며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며 함께하는 인사들이 청산해야 할 세력이기 때문에 염려된다고 전했다.

선언문에는 이명박 정권에 대한 평가도 실렸다. 전 의장단은 이 정권에 대해 정의·평화·생명·인권의 가치를 훼손하고, 양극화를 심화시켰고, 대북 관계를 단절 상태에 이르게 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 정권의 한나라당이나 박 후보의 새누리당이 서로 뿌리가 같다"며 "국민 위에 군림해 국민의 인권을 유린했던 과거 세력의 등장을 막는 것은 필수"라고 주장했다.

끝으로 전 의장단은 이번 대통령 선거와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민주 세력으로 정권 교체를 이뤄야 한다고 호소했다.

아래는 목정평 전 의장단이 발표한 시국 선언 전문이다.

정권 교체를 위한 목정평 증경 의장단 시국 선언문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목정평)는 1984년 7월, 군부독재의 폭압이 이어지던 한국 사회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보다 온전히 증언하기 위해 출발한 목회자들의 모임입니다. 그동안 목정평은 굴곡의 한국 현대사 속에서 기독교 신앙의 예언자적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올곧은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것은 곧 정의, 평화, 통일, 민주, 인권, 생명, 공동체 등 이 시대가 갈급히 요청하는 가치를 복음을 통해 선언하고 온 삶으로 증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증언으로 우리는 때로 불순한 정치 목사, 좌파 목사, 선동적 투쟁 목사 등으로 왜곡되기도 했고, 실제로 고문, 투옥, 감금 등 직접적인 신체적 억압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고난의 역정이 십자가를 통해 구원을 이루신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는 것이기에 주님의 은총이요 영광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어언 창립 30주년을 바라보는 목정평의 전임 회장들이 오늘 한자리에 모여 같은 뜻을 결연하게 선언하는 것은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지금의 시점이야말로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긴박한 분기점이라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1945년 해방의 감격은 곧이어 생겨난 분단으로 산산조각나 버렸습니다. 첫 남한 대통령이 된 이승만 정권은 갖은 부패의 연속으로 국민에 의해 단죄되었습니다. 무능하고 부패한 자유당 독재정권을 종식시키기 위해 학생들을 중심으로 맨몸으로 싸웠던 4·19 혁명은 우리 역사에 길이 남을 민주주의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많은 희생을 치르고 얻어낸 민주주의는 채 꽃을 피우기도 전에 박정희의 5·16 군사 쿠데타에 의해 잔인하게 짓밟혔습니다. 5·16 쿠데타야말로 국민의 안전을 위해 존재하는 군의 일부 그릇된 군인들이 정권욕에 사로잡혀 국민에게 총을 겨누었던 가장 악독한 죄악의 근원입니다. 이후 박정희 군사 정권은 유신헌법을 선포하며 장기 독재를 꿈꾸었지만 결국 총으로 만든 권력은 총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우리 역사는 1990년대까지 5·16 쿠데타를 이은 군부독재의 어둠 속에 갇혀있었고, 그 상처와 상흔은 앞으로도 당분간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진정한 민주주의의 가치를 부정하는 요소로 작용할 것입니다.

박정희의 뒤를 이은 전두환은 또 다시 12·12 군사 쿠데타를 자행하여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국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민주주의를 향한 갈망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광주민주화운동의 불씨는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졌고 우리는 결국 민주주의의 새 길을 열었습니다. 그것은 무수한 학생, 노동자, 종교인, 시민, 정치인의 희생으로 일궈낸 민주화의 꽃이었습니다. 마침내 군부독재를 이겨내고 새로운 민주 시대를 열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만들어냈을 때 우리는 얼마나 큰 감격을 함께 나누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는 청문회를 통해 5공화국 군사 쿠데타 주역들을 일정 정도 청산했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군부독재에 대한 의미 있는 역사적 정리였습니다.

그러나 냉철히 돌아보면, 우리는 80년 군부 쿠데타의 뿌리이며 그들을 길러낸 유신 세력에 대한 청산과 정리에는 소홀히 한 실수를 뼈아프게 자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군부 쿠데타 세력과 유신 잔재 세력이 권력을 등에 업고 역사를 왜곡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5공 세력의 폭력이 너무나 강력하여 그 억압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그랬다 하더라도 우리는 좀 더 깊고 긴 안목에서 잘못된 역사를 청산했어야 했건만 그리하지 못한 우리의 어리석음에 뒤늦게나마 가슴을 치며 참회합니다. 이러한 우리의 참회를 아프게라도 하듯이 이번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한국 민주주의를 총으로 부정한 '독재자의 딸'이 유신 잔재세력을 등에 업고 너무나 당당하게 후보로 서 있습니다. 우리는 이 비극적 현실에 몸서리치며 분노합니다.

대통령 중심제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은 국가의 상징이자 실질적인 권력자입니다. 대통령은 누구든지 개인이 아니라 그를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세력의 집합체입니다. 우리가 염려하는 것은 단순히 박근혜 후보가 '독재자의 딸'이어서가 아닙니다.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고 그 권력에 참여하는 인사들의 뿌리야말로 우리가 반드시 청산하여 역사 정의를 세워야 하는 바로 그 세력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유신 시대는 과거가 아니라 명확한 현재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대통령 선거는 우리가 과거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미래로 나아갈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지난 5년 이명박 정권은 정의·평화·생명·인권의 가치를 훼손하고, 양극화를 심화시켜 사회적 약자들을 더 고통스럽게 만들었으며, 대북관계는 경색을 넘어 단절 상태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이명박 정권의 한나라당이나 박근혜 후보의 새누리당은 사실 뿌리가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후보는 자신이 이명박 정권과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참으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어이없는 발상입니다. 이제 우리 다시 일어서야 할 때입니다. 이명박 정권의 실정을 극복하고 한반도에 새로운 비전을 열어야 합니다.

오늘은 어제의 열매이고 오늘은 내일의 씨앗입니다. 급변하는 한국사회에 산적한 국내·외적 과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국민 위에 군림하여 국민의 인권을 유린했던 과거 세력의 등장을 막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오늘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뜨거운 사명이라고 확신합니다. 이 절박함이 이미 목정평 회장을 지내고 일선에서 물러난 우리들을 다시 이 자리에 서게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비통한 심정으로, 그리고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한국의 그리스도인들과 국민 여러분께 호소합니다. 12월 19일 꼭 귀중한 한 표를 행사하여 주십시오. 여러분의 한 표가 이 나라를 희망의 미래로 이끌 것입니다. 한국 현대사를 어둠으로 뒤덮고 우리에게 쓰라린 고통을 주었던 유신 잔재 세력에게 다시 국정을 맡길 수는 없습니다. 이명박 정권의 실정을 바로잡고 무너진 민주주의를 다시 살리기 위해서는 이번 선거를 통해 정권 교체를 꼭 이뤄야 합니다.

저희의 간곡한 요청을 경청하셔서 이번 대통령 선거와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민주 세력의 부활을 선택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12년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 64돌 기념일에,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증경 회장 일동

지지 선언자 명단

장성룡 목사 이명남 목사 박영모 목사 이해학 목사 김정웅 목사 원형수 목사 윤길수 목사 백남운 목사 정지강 목사 유원규 목사 노영우 목사 허원배 목사 문대골 목사 김근상 주교 김광수 목사 이근복 목사 정명기 목사 권오성 목사 김병균 목사 김영주 목사 나핵집 목사 박덕신 목사 서일웅 목사 정진우 목사 김성복 목사 임광빈 목사 박승렬 목사 -이하 27인-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