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이들을 포용했던 고 강원용 목사. ⓒ뉴스앤조이 신철민
▲ 모든 이들을 포용했던 고 강원용 목사. ⓒ뉴스앤조이 신철민

브로커와 정치인이 갖춰야 할 요건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말을 잘해야 하는 것이다. 조리 있음과 주제의식이 선명한 것은 기본이다. 거짓말도 그럴 듯이 할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둘째, 포커페이스의 달인이어야 한다. 누가 와서 자기 얼굴에 침을 뱉어도 미소를 잃지 않는 비위가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표정 관리가 탁월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내 사람 만드는 은사'가 있어야 한다. 이는 '사람을 많이 안다', '친한 사람이 여럿이다'는 말과 통한다. '법조계·경찰의 큰 손'으로 통하는 윤상림 씨 같은 경우 법원·검찰청·경찰청·국회에 두루두루 '형님'을 많이 심어놓은 인물이다. 국가 요직 중에 '형님'이 하도 많아 그를 일컬어 '국민동생'으로 부르는 경우도 있다니 말 다했다. 그의 친화력은 그런 의미에서 특허감이다.

강원용 목사의 친화력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그는 군계일학群鷄一鶴에서 학이다. 그가 그 친화력을 이용해 오용誤用했거나 사취詐取했다는 소문은 듣지 못했다. 정치권에 한 발짝도 들이지 않았다. 누구처럼 교회 만들 때 땅 불허 받고 통치자금 끌어다 쓰지 않았다. 실력자 좀 안다는 사람치고 이런 '맹물 같은 처신'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할 수 있다.

강 목사의 삶은 그래서 '적이 없는 삶'이었다. 그의 소천은 사회적으로 적잖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진보적인 기독교계는 말할 것도 없다. 천주교 추기경이 달려오고 불교계에서 애도 성명이 발표됐다. 기독교계의 보수적 정서를 대변하는 <국민일보>는 아예 추모관을 사이버 상에 만들어놓기까지 했다. 교리로, 교세로, 이념으로 사람 판단하고 재단하는 종교계에서 이 같은 덕망 있는 인격, 다시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 고 강원용 목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내란죄 누명을 쓰고 사형되기 직전에 구명 운동에 나서는 등 올곧은 소리를 하는 어른이었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 고 강원용 목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내란죄 누명을 쓰고 사형되기 직전에 구명 운동에 나서는 등 올곧은 소리를 하는 어른이었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그렇다고 그를 남들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 안 하는 우유부단한 인물로 정의해서도 안 된다. 야당 지도자인 김대중 씨가 1980년 5월 17일 미명微明에 신군부에 의해 끌려가 내란죄라는 터무니없는 죄목을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시점이었다. 강 목사는 전두환 씨를 찾아가 "광주(5.18민중항쟁) 때문에 한국이 국제적으로 지탄당하고 있는데 김대중 씨까지 죽이면 한국은 완전히 고립될 것"이라며 유일하게 DJ의 석방을 주장했다. 대세는 '영도자 전두환'에게 쏠리는 마당인데, 사회적 위치나 명예를 고려해서 가릴 말을 가려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말에 설탕 좀 칠만도 하련만 목숨을 건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대화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것 같았다. 김규식, 여운형 등과 만나 청년대표로 좌우합작운동에 참여하면서 건국운동에 참여한 일로부터 1950년대에 도미해 폴 틸리히와 라인홀드 니버를 만나 이원론을 벗어난 신학을 터득하고, 대화문화아카데미(옛 크리스챤아카데미)를 열어 '열린 기독교'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나만 옳다'라는 독선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반한다는 믿음 아니고서는 가늠하게 어려운 행보였다.

▲ 강원용 목사의 빈소에는 보수 기독교계 인사들의 조문도 끊이지 않았다. 사진은 김준곤 목사가 조문하는 모습. ⓒ뉴스앤조이 신철민
▲ 강원용 목사의 빈소에는 보수 기독교계 인사들의 조문도 끊이지 않았다. 사진은 김준곤 목사가 조문하는 모습. ⓒ뉴스앤조이 신철민

그는 모든 이들의 입장과 처지를 존중했다. 일전에 보수적 성향의 교계 인사가 이런 말을 한 기억이 있다. "강원룡 목사가 나를 보더니 '목사님처럼 복음적인 분을 뵈면 제가 배울 것이 많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 이것을 보라. 과거 운동권에 있던 목사들도 결국은 우리의 길이 옳다고 말 한다"라고 말이다. 듣고는 실소를 금하기 어려웠지만, 그 말을 한 목사의 시덥지 않은 허세까지도 둥글게 품은 강 목사의 인격은 두고 두고 빛이 났다.

강 목사의 일생은 국론이 분열되고 계층 간에 갈등이 커지며 종교 간의 경쟁과 대립이 심화될 때 종교 지도자가 가야할 길을 보여줬다 판단한다. 타 종교문화권을 폄하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정벌'하러 다니는 '선교 헌터들'의 안목으로는 도무지 가늠이 안 될 포용의 모본이다. 그가 제시한 평화의 공식은 간단하다. 내 목소리를 줄이고 내 의견과 다른 이들과 흉금 없는 대화의 자리를 얻고 그렇게 해서 다져진 신뢰를 통해 합일된 대안을 찾자는 것이다.

▲ 조문객 중에는 김선도 목사도 눈에 띄었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 조문객 중에는 김선도 목사도 눈에 띄었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강 목사를 필자는 군계일학이라 했다. 필경 강 목사가 보던 성경과 찬송가과 똑같은 것을 쓰는 이들일 텐데 후배라는 목사들의 포맷은 갈수록 구형이다. 광주 양민들이 총칼에 비명횡사할 때 독재자 옆에 가서 축복해주던 자들. 민주주의가 위기를 만났을 때 '세상 권력에 복종하라' 했다가 민주주의가 보장된 오늘에 와서는 '비상구국' 운운하는 자들. 이라크의 양민을 학살했던 전범과 동맹 안 한다고 안달이 난 자들, 자기들 기득권 침해당한다며 국민들 대부분이 공감하지 않는 개정 사학법 폐지를 목 놓아 외치고 있는 후안무치한 자들. 이 자들을 두고 소천하는 강 목사의 심정은 어떨까. (참고로 여기서 '자'란 놈 '자'자를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 강 목사는 생존해 있다면 그들의 장점을 추켜세우며 대화를 시도하려 했을 것이다.

▲ 이종석 통일부장관이 조문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 이종석 통일부장관이 조문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고건 전 서울시장도 조문을 와 유족들에게 애도의 뜻을 전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고건 전 서울시장도 조문을 와 유족들에게 애도의 뜻을 전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본디 종교 지도자들은 분열 구도, 적자생존의 원리, 기득권에의 집착논리, 물량주의에 젖어있는 현대인들에게 정서적 순화 작용을 담당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간판급 목사들 특히 일부 교회 연합단체의 수장들의 모습을 보면, 그들은 성직자의 본령을 잊은 채 현세적 이해당사자의 자리에 서 있음을 보게 된다. 달리 욕을 먹는 것이 아니다. 이것 때문에 '삯군' 소리를 듣는 것이다.

환자를 치유하고, 교세를 단기간에 급속하게 불리고, 화려한 입담으로 교인들을 흡인하는 그런 목사들에 비해 강 목사의 '목회 경쟁력'(?)은 떨어졌는지 모른다. 따라서 교계 내부에서 강 목사의 소천이 갖는 파장이 크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강 목사는 역사가 기억해줄 인물이다. 이 시대는 주일 강단에서만 설교하는 얼치기들이 아니라 온 몸으로, 역사를 향해 설교하는 참 목사가 그립다. 곧고 푸른 이러한 참 목사를 서둘러 철수시키는 하나님의 뜻이 필자는 솔직히 두렵다. 주한미군 철수보다 더 걱정이다.

김용민 /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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