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을 넘긴 할아버지 한 분이 지난 6월 9일 아름다운마을 공동체를 방문했습니다. 속리산 자락에 사사는 분이라 아침 일찍 출발해 수유동 북한산 밑까지 세 시간 넘게 걸렸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오자마자 공동체에 대한 궁금증을 쏟아냈습니다.

"아이 업고 마실 다닐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모여 산다는 얘기에 솔깃했습니다. 어떻게 사는지 배울까 해서 왔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50년 동안 풀무원(지금은 평화원) 공동체를 이끌며 한국의 공동체 운동과 유기농업의 산 증인 원경선 원장님을 이렇게 만나게 될 줄 몰랐습니다. 원 원장님은 93세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셨습니다.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은 젊은이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산다는 소문을 듣고 몸소 찾아오는 '청년'의 열정을 여전히 품고 계신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젊은이, 공동체를 논해보세"

원 원장님은 자신이 벽에 부딪혔다고 털어놓으셨습니다.

"공동체를 하는 것은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다. 자기들끼리만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모인 것은 집단 이기주의다. 자급자족하고 남은 것은 이웃을 위해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자급하기가 그렇게 어려울 수 없다. 이천에서 공동체를 할 때는 겨우 자급했지만 사업을 확장하려다가 실패했다. 다 접고 몇 년 전에 속리산 자락으로 내려가 6천 평 땅을 일구며 살고 있다. 우리만 먹고 사는 게 아니라 이웃을 도우며 사는 일이 쉬운 게 아니다. 어떻게 공동체가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

산전수전 다 겪은 원로가 손자뻘 젊은이들에게 "내 문제가 이거요" 하며 자신의 삶과 공동체에 대해 진솔하게 고백하고 "한번 얘기 좀 해보자" 하시는 모습에서 '어른'의 무게가 느껴졌습니다. 원 원장님은 우리가 사는 모습을 듣고 싶으셨지만, 원 원장님을 맞이한 우리 공동체 식구들은 원 원장님이 살아온 이야기가 궁금했습니다. 어떻게 풀무원을 하시게 되었는지, 왜 지금은 이름을 평화원으로 바꾸셨는지, 평화원은 어떤 곳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원 원장님이 잘 풀어주셨습니다.

공동체 운동과 유기농업의 산 증인 '원경선'과 풀무원

1955년 미군이 고아들을 맡아달라고 부탁해서 풀무원을 시작했다고 하셨습니다. 쇠를 달구듯이 인간을 풀무질하는 곳이라는 뜻에서 이름을 풀무원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당시 원 원장님은 이들과 함께 오전에는 공부, 오후에는 일하며 지냈습니다.

원 선생님은 풀무원이 우선 자급해야 한다는 생각에 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사람을 살리는 먹을거리여야 한다는 믿음에 당연히 유기농으로 지었습니다. 한국에서 유기농이라는 농사법을 개척한 덕분에 UN이 환경 기여자에게 주는 상도 받았습니다. 찾아오는 이는 누구나 받아줘서 한 때는 50명이 넘게 생활할 때도 있었습니다. 대신 밥을 먹으려거든 일을 하라는 원칙만은 지켰습니다.

풀무원은 성경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려고 애를 썼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예수님이 가르쳐준 기도에 나오는 이 말씀을 붙들고 실천하기 위해 생활 원칙도 정했습니다. 원 원장님은 농사꾼에게 일용할 양식이란 다음 추수 때까지 먹을 식량을 뜻하는 것으로 보고, 그 식량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른 이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소유하지 않으니 참 자유로워요"

한 때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대천덕 신부가 이끌던 예수원에서 쫓겨난 사람이 풀무원을 찾아왔다고 합니다. 왜 쫓겨났냐고 물으니, 이 남자는 도둑질을 하다가 들켰다고 했답니다. 두  번은 용서해주었는데 세 번째 발각되었을 때는 떠날 수밖에 없었다며 받아달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을 받아줄지 마을에서 회의가 열렸습니다. 원 원장님은 공동체 지체들에게 여기서도 도둑질하는 버릇을 못 고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가져가라지요" 하더랍니다. 집마다 현금도 얼마 없고 당시 라디오 하나 정도 놓고 살던 시절이라 잃어버릴 걱정이 없었던 겁니다.

"소유하지 않으니 참 자유로워요. 언제든지 누구에게든지 열려있어요."

이 대목에서 원장님이 이야기는 군대를 없애야 한다는 쪽으로 나아갔습니다. 군대란 곡식을 쌓아두고 이를 도둑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다며, 먹고 남는 음식을 나누면 군대를 유지할 필요가 뭐가 있겠냐는 견해셨습니다. 원 원장님은 이러한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역사학자, 철학자, 신학자, 목사, 언론인 등 평소 교류하는 다양한 이들에게 자문을 구한다고 합니다.

먹을거리 나누는 게 평화다

하여튼 풀무원이 추구한 가치는 자급하고 남는 것은 이웃에게 나눠주자는 것이었고, 원 원장님은 이것을 통해 세계의 평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믿으셨습니다. 양주에서 속리산으로 내려가시면서 공동체의 이름도 아예 평화원으로 바꾸신 겁니다.

대략 다섯 가정이 원 원장님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원 원장님은 나이가 많지만 "아직까지 내 밥벌이는 하고 산다"고 하셨습니다. 굴착기를 능숙하게 다룬다고 하십니다. 백발이 선한 분이 굴착기 운전석에 앉아 땀 흘리는 모습이 마음에 그려졌습니다.

네 시간 가까이 이어진 대화에서 원 원장님은 '우선 자급하고 후에 나눠야 한다'는 말씀을 거듭 강조하셨습니다. 자급하는 공동체가 드문 현실을 생각하면서 원 원장님의 말씀을 들으며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원 원장님은 공동체를 주제로 토론하는 자리에 대천덕 신부, 김진홍 목사(두레교회)와 함께 초청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때 두 사람에게 자급하느냐고 물었더니 모두 60% 정도만 스스로 생산하고 나머지는 후원을 받는다고 했답니다. 자급이 그만큼 힘들다는 겁니다.

'선 자급, 후 나눔'이라는 말씀이 자급만 중요하다는 말씀은 아니었습니다. 정농회 고문으로 활동하는 원 원장님은 나눔의 문화가 잘못된 생협의 현실을 꼬집었습니다. 지금 유기농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먹을 거 짓고 남는 것을 파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팔기 위해 자기에게 필요 없는 것들을 가져다가 농사짓는데, 이러한 정신이 문제라고 하셨습니다. 저희 공동체가 서울에 있기 때문에 농촌에서 유기농을 하는 생산 공동체가 교제를 하기 원한다는 말에는 "돈을 벌기 위해 유기농을 하는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은 시간 낭비다"고 충고했습니다.

공동체 얘기에서 세계 평화, 국가 정책 비판까지

원 원장님은 우리 공동체가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하는지 물으면서 평화원은 대학 교육을 시키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땅 파서는 대학 교육 시키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면서. 대신 농한기에 교수들을 초청해 공동체 지체들에게 필요한 공부를 한다고 합니다. 한 학기에 배울 분량을 일주일 밤낮으로 공부하면 모두 소화한다고 합니다. 평소 일하며 궁금했던 것들이라  흡수력이 뛰어나다고 합니다.

저희 공동체가 공동체적 삶에 대한 신앙적, 이론적인 공부를 기독청년아카데미에서 하고 있다는 말을 들으시고 무척 부러워하셨습니다. 공동체 구성원이 정신적인 통일이 되어 있으니 한결 수월하겠다는 겁니다. 그러시면서 평화원은 그게 고민이라고 하셨습니다. 누구든 거절하지 않고 받기에 같은 뜻을 갖기가 무척 힘들다는 겁니다.

또 평화원이 속리산 자락으로 내려가면서 어린 아이들을 가르칠 생각이었는데, 막상 가보니 아이들이 없어서 비참한 농촌의 현실을 다시 실감했다고 합니다. 대화를 나누는 도중 저희 공동체가 하고 있는 공동육아 어린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들렸는데 보시기에 좋았나 봅니다.

이러한 원 원장님의 생각은 그저 농촌 현실을 푸념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왜 농촌이 가난할 수밖에 없었는지, 왜 지금 농촌에는 노인들밖에 없는지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정확히 짚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농업 정책의 문제도 날카롭게 꼬집었습니다. 품팔이해서 돈을 버는 일(가공업-편집자 주)을 나라의 근간으로 삼았기에 노동자가 많아야 하고, 농촌이 잘 살면 사람들이 도시로 나오지 않으니 농촌을 못 살 게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도 자꾸 더 많이 생산해야 한다고 경기가 어렵다고 국민들을 세뇌하지만 속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한국이 이정도면 먹을 만하지. 제대로 나누는 게 문제입니다. 물질을 나누지 않으면 테러가 없어지지 않습니다. 기독교가 세계 평화의 근본적인 해결을 제시해야 됩니다. 그런데…."

"입으로만 예수 따르는 교회여!"

원 원장님은 일평생 공동체 운동을 바른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먹고 남은 것은 이웃과 나눠야 한다는 신념까지 가졌습니다. 그리고 먹을거리를 가난한 이들과 나눌 때 진정한 평화가 온다고 생각하십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주기도문의 한 구절이 바로 진정한 평화를 뜻한다고 원 원장님은 확신합니다. 그런데 "그 누구보다 주기도문을 잘 알고, 자주 외우고 한국교회가 한번도 이 일을 실천해보자고 말하지 않는다"고 한탄하셨습니다. 예수는 너만, 네 가족만 먹지 말고 나눠 먹으라고, 그게 하나님나라라고 주기도문으로 가르쳐주셨는데, 교회는 입으로 외우기만 할 뿐 실천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렇게 남과 나누기 위해 공동체를 시작했고, 지금도 어떻게 하면 남과 잘 나누며 살 수 있을지 고민하는 원 원장님. 가까운 지인이 서울 북한산 자락에 이런 공동체가 있다더라 하는 소리에 단숨에 달려왔습니다. 50년 넘게 공동체를 이끌었지만 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다른 공동체가 실천하는 걸 보고 배우려는 '학생심'(學生心)으로 똘똘 뭉쳤습니다.

이야기가 마무리될 즈음 젊은이들이 공동체를 이루겠다며 모이는 게 기특하셨나 봅니다. 그래서 충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원 원장님은 그동안 무수히 많은 공동체들이 생겼다가 사라졌는데, 이론 습득과 몸 수련을 조화롭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머리만 키우고 자기 몸과 공동체를 살릴 농사는 전혀 모르면 오래갈 수 없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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